[문화] 이수만과 매기 강이 잇는 K팝…현실에서 가상으로의 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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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만은 SM을 창업하고 지금의 케이팝 시스템의 기초를 만든 '케이팝 창시자'로 불린다. 현재 A2O 엔터테인먼트에서 키프로듀서로 활동한다. 사진 연합뉴스.
“케이팝(K-POP)은 단순한 음악이 아니다.”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창립자(A2O 엔터테인먼트 키 프로듀서)가 수십 년간 강조해온 말이다. 그는 1995년 SM을 창립하고 연습생 시스템과 아이돌 그룹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하며 케이팝을 하나의 산업으로 만들었다.
이수만-매기 강, 중앙일보 창간 60주년 '글로벌 미디어 컨퍼런스' 참석
그로부터 꼭 30년 뒤, 애니메이션 감독 매기 강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통해 케이팝을 또 다른 세계로 확장했다. 케이팝에 한국 문화의 전통과 현대를 창의적으로 결합해 글로벌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매기 강 감독은 한국 문화와 K팝의 독특한 결합으로 전 세계가 공감하는 작품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진 연합뉴스
두 사람은 17·18일 서울 중구 명동 롯데호텔에서 열리는 중앙일보 창간 60주년 기념 ‘글로벌 미디어 컨퍼런스’에서 연설자로 나서, 자신들의 경험을 공유하고 미래 전략을 제시한다. 현실 산업을 만든 창시자와 이를 서사와 상상력으로 재해석한 창작자가 세대를 넘어 같은 흐름 위에서 만나는 순간이다.
이수만이 일군 ‘상장 1호 엔터사’
이수만은 케이팝의 생산·소비 구조를 새롭게 정의했다. 1989년 현진영 발굴과 함께 당시로는 획기적이었던 캐스팅, 트레이닝, 마케팅, 매니지먼트 등이 하나로 움직이는 K팝 사업 체계를 설계했다. 1995년 SM을 설립한 후에는 본격적으로 한국형 관리 시스템(연습생)을 케이팝에 접목했고, ‘SMP(SM Music Performance)’라 불린 음악·안무·무대의 삼박자 시스템을 구축해 SM표 아이돌 그룹의 전형을 만들었다.
글로벌 전략으로는 ‘현지화’를 전제로 했다. ‘아시아의 별’ 보아를 필두로 한 일본 진출, H.O.T.와 동방신기로부터 시작된 중국몽(夢), 슈퍼엠으로 본격화된 미국 시장 공략 등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맞춤형 콘텐트 기획은 케이팝을 엔터 산업으로 확장하는 계기가 됐다. SM은 2000년 3월 코스닥에 입성한 첫 번째 엔터사로 이름을 올렸다.

이수만은 "프로듀서는 음악만 하는 것이 아니고 춤, 퍼포먼스, 영상 등 하나의 종합 예술을 만들어내는 역할"이라고 말했다. 뉴스1
그는 2022년 알 아라비야 인터뷰에서 “케이팝이 발전하는 역사의 현장에 있었다. 한류가 시작되기 전에도 이 자리에 있었고, SMP가 케이팝이 되고 전 세계에 달려지면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K팝과 함께해 왔다”며 “한류와 K팝은 혁신의 역사”라고 강조했다.
혁신을 향한 이수만의 발걸음은 2023년 2월 SM을 떠나기 직전까지 이어졌다. SM에서 그가 마지막으로 했던 프로젝트로 알려진 걸그룹 에스파와 세계관 SMCU(SM Culture Universe)는 가상세계로 발상의 전환을 시도한 사례다.
에스파는 이수만이 프로듀서로 있을 시절, ‘현실 세계와 가상세계의 하이브리드 걸그룹’이란 수식어로 활동했다. 현실에선 카리나, 윈터, 지젤, 닝닝 네 명이 활동하지만 메타버스 속 아바타 멤버(아이-카리나, 아이-윈터, 아이-지젤, 아이-닝닝)까지 합치면 8인조가 된다.

다큐멘터리에 등장한 이수만 아바타. 이수만은 케이팝의 새로운 미래가 AI에 있다고 생각했다. 사진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에스파의 등장은 이수만이 설계한 SM의 미래 먹거리인 콘텐트 세계관 SMCU(SM Culture Universe)의 시작점이기도 했다. SMCU는 당초 ‘CAWMAN’(이수만의 영어 별명에서 따왔다)이라 불린 새로운 장르 결합 프로젝트와 맞물려 있었다. 카툰(Cartoon), 애니메이션(Animation), 웹툰(Webtoon), 모션 그래픽(Motion Graphic), 아바타(Avatar), 노블(Novel)을 조합해 하나의 거대한 세계관으로 확장하려는 시도였다. 이수만은 아이돌의 음악과 무대에 머물지 않고, 가상의 스토리텔링과 캐릭터 콘텐트까지 결합해 케이팝을 마블 유니버스 급의 종합 엔터테인먼트 산업으로 키우려 했다. 그러나 그의 퇴진 이후 SM 안에서는 이러한 실험이 본격적으로 추진되지 않고 있다.
‘악귀돌’ 사자보이즈의 등장
흥미롭게도 이 구상은 다른 곳에서 현실화됐다. 한국계 캐나다인인 매기 강 감독이 연출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바로 그 사례다. 기와지붕 위 전투, 설렁탕집 풍경, 팬 사인회와 시상식 무대까지, 현실과 판타지가 교차하는 공간에서 ‘무당 걸그룹’ 헌트릭스와 ‘악귀 보이그룹’ 사자보이즈가 맞서는 내용이다. 이는 이수만이 꿈꾸던 SMCU와 CAWMAN의 청사진을 다른 방식으로 구현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매기 강 감독은 지난달 내한 기자간담회에서 “헌트릭스와 사자보이즈를 구현하기 위해 여러 케이팝 그룹을 찾아보고 많은 아이돌의 레퍼런스를 찾아봤다. 나도 K팝의 팬이다. 서태지와 아이들, H.O.T.를 정말 좋아했다”고 밝혔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보이그룹 사자보이즈가 춤과 노래로 사람들을 유혹하는 장면. 사진 넷플릭스
헌트릭스와 사자보이즈의 인기는 현실 아이돌 못지않다. 헌트릭스가 부른 ‘골든’은 세계 양대 싱글 차트인 미국 빌보드 핫100과 영국 오피셜 싱글 차트 1위를 휩쓸었다. 극 중 사자보이즈가 ‘소다 팝’을 부르며 등장하는 부분은 넷플릭스 모멘트(사용자가 원하는 장면을 저장·공유하는 기능)에서 최고 인기 장면으로 꼽혔다.
무궁무진한 케이팝의 미래
케이팝은 이제 현실 아이돌과 가상 아이돌, 무대와 애니메이션, 산업과 서사가 교차하는 거대한 흐름 속에 있다. “음악이 멜로디와 가사로만 이루어졌던 시대에서 춤·영상·스토리까지 결합한 ‘컬처 테크놀로지’로 확장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던 이수만의 꿈은 현실이 됐다.
현재 이수만은 중국에서 걸그룹 A2O MAY(에이 투 오 메이)를 프로듀싱하고 중국 시장 확장의 꿈을 펼치고 있다.

이수만 A2O엔터테인먼트 키 프로듀서 겸 비저너리 리더(SM엔터테인먼트 창립자)는 지난 6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음악 행사 '프랑스 뮤직 위크 서밋'에서 "미래에는 누구나 프로듀서가 될 수 있다"고 발언했다. 사진 A2O엔터테인먼트
인공지능(AI)과 아바타 등 미래 기술에 대한 관심 또한 여전하다. 그는 지난 5월 아마존 프라임에서 공개한 다큐멘터리 ‘이수만: 케이팝의 대부’에서 이수만 아바타를 등장시키고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것들이 이루어질 수 있는 미래를 맞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수만은 본인의 외형뿐만 아니라 기억과 경험을 공유한 아바타를 통해 “인공지능이 아티스트를 프로듀싱할 세상”을 꿈꾸는 중이다. 이수만은 18일 열리는 ‘글로벌 미디어 컨퍼런스’에서 ‘문화 운영체제의 탄생: 케이팝, 다음 문명을 디자인하다’라는 주제로 케이팝의 비전을 제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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