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쪼개지는 금감원 ‘검은옷’ 시위, 한수원 노조는 용산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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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감독원 노동조합원과 직원들이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금감원 로비에서 금감원 공공기관 지정 및 금융소비자보호원을 분리하는 정부 조직 개편안을 규탄하는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주요 부처와 산하 공기업들이 정부 조직 개편안의 후폭풍에 휘말렸다. 직원들 동요가 커지고, 관련 산업 경쟁력이 휘청인다는 우려에 반발이 본격화되고 있다.

한국수력원자력 노동조합은 9일 대통령실과 국회 앞에서 정부 조직 개편안에 반대하는 1인 시위를 시작했다. 이번 조직 개편으로 원전 수출은 산업통상부가, 원전 건설과 운영은 기후에너지환경부로 쪼개지게 됐다. 원전 운영과 수출을 동시에 하는 한수원은 ‘시어머니’가 2명이 생기는 등 혼선을 빚을 수밖에 없다. 강창호 한수원 노조위원장은 “원자력을 탈원전주의자 김성환 장관에게 맡기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꼴”이라며 “이번 정부 조직 개편안이 정기국회를 통과해 현실화되면 국민만 전기요금 급등 등으로 수년간 고통을 받다가 다시 원상복귀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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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호 한수원 노조위원장이 9일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예산 뺀 기재부 “정책조정 역할 할지 의문”
정책 분야의 혼선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개편안대로라면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재생에너지·원전 위주의 에너지 정책과 전력 관련 정책을 가져간다. 국내 에너지 소비의 약 90%를 차지하는 석유·천연가스·석탄 등 화석연료 정책은 산업부에 남는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는 “가스와 전력을 나눠서 관리하는 국가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며 “부처 간 칸막이 등으로 인해 안정적인 에너지 수급 등에 문제가 생길 소지도 많다”고 말했다. 한국원자력학회는 이날 성명을 내고 “기후에너지환경부 신설은 원전 생태계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구조적 모순을 안고 있다”며 “국내 사업과 해외 사업의 주무부처를 분리하는 것은 스스로 수출 경쟁력에 족쇄를 채우는 어리석은 결정”이라고 밝혔다.

공직사회도 요동치고 있다. 9일 오전 8시 금융감독원 직원 700여 명은 서울 여의도 금감원 1층 로비에서 검은색 옷을 맞춰 입고 조직 개편 반대 시위를 벌였다. 금감원 전체 2200여 명 중 3분의 1에 달하는 대규모 인원이 모였다. 금감원은 금융소비자 기능이 분리돼 금감원과 금융소비자보호원(금소원)으로 쪼개진다.

안재훈 금감원 선임조사역은 “옵티머스 펀드가 사기적으로 운영됐다고 금감원 검사로 확인이 되면서 (소비자들이) 100% 분쟁 조정을 받은 것”이라면서 “감독과 소비자 보호는 별개의 것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연결되는데, 금소원 분리는 안 된다”고 했다. 금감원은 인사교류를 당근책으로 내세웠지만 금소원이 내부적으로 기피 부서로 이뤄진 데다, 신설 공공기관으로 지방에 설립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더해지면서 젊은 직원들을 중심으로 반발이 크다.

대규모 수술을 받게 된 금융위원회 역시 동요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2008년 금융위 출범 후 공직생활을 시작한 행시 50기 이후 사무관들의 동요가 심하다. 금융위 관계자는 “세종으로 옮기는 것과 별개로, 재정경제부로 가게 되면 금융 분야에서 전문성이 떨어지게 되는 점을 우려하는 분위기”라며 “재정경제부로 가면 금융 외에도 경제정책, 국고 관리 등 여러 업무를 순환해야 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로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금융위는 그간 세종으로 가지 않고, 서울에 남은 데다 금융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을 수 있어 인기 부처로 통했다. 다른 금융위 관계자는 “조직이 해체 수준이 되면서 금융회사들이 협조해 줄지 의문이고, 일부 사무관은 관두겠다는 의사도 밝혔다”고 전했다.

금융위 대수술에 “금융사들 협조하겠나”
기획예산처와 재정경제부로 나눠질 기획재정부는 정책 ‘컨트롤타워’ 역할 등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기재부 국장급 공무원은 “예산이 빠진 만큼 과거처럼 정책 조정 등의 기능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인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부처 이동을 앞두고 내부 인사도 시작됐다. 기재부는 전날 선임 국장인 예산총괄심의관을 제외한 국장급 직위 4명이 모두 교체됐다.

산업부는 박탈감이 심하다. 에너지 분야는 한국전력·한국수력원자력·발전회사 등 덩치가 큰 공공기관이 많다. 한 산업부 과장급 직원은 “에너지실 이관으로 산업부의 조직이 축소되고, 역할이 줄어들면서 부처의 위상이 떨어질 수 있을 것이란 불안감이 있다”고 말했다.

조직 개편 대상은 아니지만, 부산으로의 이전이 결정된 해양수산부 역시 동요가 이어지고 있다. 해수부는 최근 부산에 갈 수 없는 직원들에 대한 ‘일방 전출’을 허용했다. 통상 부처 간 이동은 1대1로 자리를 바꾸지만 이번엔 상황의 특수성을 고려해 타 부처에 수요만 있으면 직원의 전출을 허용하고 있다. 최근까지 약 10명이 일방 전출을 신청했고, 1대1 인사 교류는 20여 명이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는 “조직 개편 후 조직이 안정되기 위해 1년 이상의 기간이 필요한 만큼 업무 성과 저하 등의 사회적 비용이 발생한다”며 “최선의 결과를 내면 좋겠지만 기재부나 산업부의 기능 조정은 정밀한 고려 없이 여당의 정치적 입장만 많이 반영돼 후폭풍이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공무원의 집단행동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박진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세종행 등에 따른 반발은 공무원이라면 장기적인 관점에서 수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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