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정부 "10일 뜬다"던 전세기 무산…기업선 전날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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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현지시간) 미국 이민당국의 무차별 단속으로 체포돼 수용시설에 구금된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공장의 한국인 근로자들의 석방이 돌연 불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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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현지시간) 미국 당국의 이민단속으로 체포된 현대차-LG엔솔 배터리공장 건설 현장 직원들이 수감돼 있는 조지아주 포크스턴의 이민세관단속국(ICE) 구금시설 안에 버스가 세워져 있다. 이 버스가 한국인들을 태우려던 버스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외교부는 이날 미국 이민당국에 구금된 한국인들을 데려오려던 전세기 출발이 미국측 사정으로 어렵게 됐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정부는 당초 구금된 근로자들 대부분이 10일 오전 석방돼 ‘자진출국’ 형식으로 전용기편으로 귀국시키기로 미국측과 협의했다고 밝혔지만, 예정됐던 석방 시점 직전 구체적 설명 없이 “미국측의 사정으로 10일 (전용기)출발이 어렵게 됐다”는 짧은 공지를 냈다. 이에 따라 공장 건설 현장에서 장갑차까지 동원한 이민당국의 급습으로 끌려간 한국 근로자들의 구금 기간은 7일을 넘어서게 됐다.

“확정”이라더니…한밤 통보된 ‘불발’ 공지

정부는 9일(현지시간)까지도 한국인 근로자들이 이날 오전 1시께부터 미국 조지아주 포크스턴에 위치한 수용시설에서 나와 버스 편으로 4시간 30분가량 떨어진 애틀랜타 공항으로 이동해 전세기편으로 10일 오후 2시 30분경 귀국길에 오를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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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현지시간) 미국 당국의 이민단속으로 체포된 현대차-LG엔솔 배터리공장 건설 현장 직원들이 수감돼 있는 조지아주 포크스턴의 이민세관단속국(ICE) 구금시설에 직원들이 출근하고 있다. 외교부는 이날 미국 이민당국에 구금된 한국인들을 데려오려던 전세기 출발이 미국측 사정으로 어렵게 됐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이를 앞두고 수용시설엔 오후 들어 대형 버스가 들어가는 등 석방을 준비하는 듯한 움직임이 포착되기도 했다. 엘라밸 공장에선 검거 작전에서 체포되지 않은 직원들이 동료들의 짐을 포장해 미리 공항으로 보내는 작업도 진행됐다. 현장을 지휘한 조기중 워싱턴 총영사는 “최대한 빨리 돌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전세기 일정에 차질이 없을 거라고 밝혔다.

그런데 오전 1시께로 예고됐던 근로자들의 석방 시점이 계속 늦어졌다. 그리고는 오전 3시께 서울 외교부 대변인실을 통해 “구금된 국민들의 10일(현지시간) 출발은 미측 사정으로 어렵게 됐다”는 공지가 나왔다. 구체적 설명은 없었고, 조정된 귀국 시점에 대해서도 “가급적 조속한 출발을 위해 미측과 협의를 유지하고 있다”고만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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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중 워싱턴 총영사가 9일(현지시간) 미국 당국의 이민단속으로 체포된 현대차-LG엔솔 배터리공장 건설 현장 직원들이 수감돼 있는 조지아주 포크스턴의 이민세관단속국(ICE) 구금시설 인근에서 통화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긴급 방미했지만…국무장관 첫날 면담 불발 

정부가 구체적 경위를 밝히지 않은 가운데 ‘자진출국’ 형식으로 근로자를 일괄 귀국시킨다는 계획과 관련한 이상 기류는 이날 오후부터 감지되기 시작했다. 먼저 하루라도 빨리 협상을 마무리하기 위해 지난 8일 긴급하게 미국을 방문한 조현 외교장관은 이날 카운터파트인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을 만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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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 인근 식당에서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 JD 밴스 부통령과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들어가기 전 기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전날 긴급 방미한 조현 외교장관은 루비오 장관과 이날 만나지 못했다. AP=연합뉴스

조 장관은 방미 일정을 앞당기기 위해 직항 노선이 아닌 경유 노선 항공편을 이용해 미국에 도착했지만, 공개된 루비오 장관의 이날 일정엔 조 장관과의 면담은 없었다. 루비오 장관은 조 장관의 면담 대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백악관 인근 식당에서 저녁을 함께 하는 자리에 나타났다. 군 병력을 동원한 불법 이민자 단속으로 워싱턴의 치안이 개선됐다는 점을 과시하기 위한 자리였다.

외교부와 주미대사관은 이날 양국 외교장관 면담과 관련한 언급을 하지 않다가 오후 들어서야 “조 장관은 10일 오전 루비오 장관과 회담할 예정”이라는 짧은 입장문을 냈다. 여기에도 회담 불발 이유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예고 없던 간담회…국무장관 면담 대신? 

외교부는 조 장관의 면담 일정이 늦춰진 사실을 공지한 뒤 “조 장관이 9일 워싱턴에 주재하는 기업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개최하고 조지아주 배터리 공장 단속과 관련한 비자 문제를 포함한 기업의 애로사항과 건의사항을 청취했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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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 외교부 장관이 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미국 진출 기업인 간담회에 참석해 있다.외교부

보도자료에 따르면 조 장관은 기업들을 만나 “구금된 국민들을 신속하고 안전하게 귀국시키고, 향후 이들이 미국에 재입국할 때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최우선적으로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들은 한국인 전문인력 대상 별도 비자(E-4 비자) 쿼터 신설, 대미 투자 기업 고용인 비자(E-2 비자) 승인율 제고 노력과 함께, 현재 주로 사용하고 있는 단기 상용 비자(B-1 비자)에 대한 미 정부의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조속히 수립될 수 있도록 협의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대해 조 장관은 “기업인들이 제기한 내용을 이미 미국 측에 전달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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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시간 6일 미국 조지아주 포크스턴에 위치한 불법 체류자 구금 시설에서 지난 4일 체포된 한국인 근로자 300여명이 30여명씩 그룹을 나눠 추가 조사를 받기 위해 줄을 서 있다. 30도가 넘는 무더위 속에 이들은 푸른색 죄수복 하의를 착용했고, 손에는 서류를 한장씩 들고 있다. 포크스턴=강태화 특파원

그런데 간담회에 참석했던 기업 관계자들은 간담회가 끝난 뒤 언론을 통해 근로자들의 귀국 일정이 확정적으로 보도되자 오히려 취재진에게 “정말 전세기가 10일에 출발하는 것이 맞느냐”는 문의를 하기 시작했다. 익명을 요청한 기업 관계자는 “간담회 내용은 확인해줄 수 없다”면서도 “이번 기회를 놓치면 전문인력 비자 쿼터는 영원히 확보하기 어려울 거란 공감대가 있었다”고 전했다.

귀국인원 불명확…“자진출국 거부 있을 것”

당초 “전원 또는 대부분 자진 귀국에 동의했다”던 정부의 입장도 흔들렸다. 미 당국이 체포한 현지 직원 475명 가운데 한국인 근로자는 300여명으로 알려져있다. 그러나 정부는 전세기 이륙을 앞뒀던 이날까지 체포된 한국인 근로자가 정확히 몇명인지, 또 자진출국 형식으로 귀국한 인원이 몇명인지 등을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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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조지아주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 합작 공장 건설 현장에서 구금된 한국인들을 태울 대한항공 전세기가 10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2터미널 계류장에서 이륙을 준비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기중 총영사도 “모두 한국에 가시는 것을 바란다”면서도 ‘귀국을 거부한 인원’ 등에 대해선 확답하지 않았다. 구금된 근로자 중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는 비자 소지자가 있었냐는 질문에도 “비자에 대해 말씀드릴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라고만 답했다.

한인들 사이에선 “근로자 중 이민법 위반 사실을 인정할 경우 미국 재입국을 장담할 수 없다는 점 때문에 자진귀국을 거부한 사례가 있을 것”이란 말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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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현지시간) 미국 당국의 이민단속으로 체포된 현대차-LG엔솔 배터리공장 건설 현장 직원들이 수감돼 있는 조지아주 포크스턴의 이민세관단속국(ICE) 구금시설. 외교부는 이날 미국 이민당국에 구금된 한국인들을 데려오려던 전세기 출발이 미국측 사정으로 어렵게 됐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익명을 요청한 현지 법률사무소 관계자도 “근로자 중에 영주권 신청 상태에서 체포된 사례가 있다”며 “불법체류를 인정하고 출국할 경우 재입국 거부는 물론 영주권 심사에까지 악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미국에 남은 가족들과 생이별 하거나 자칫 가족들이 불법 체류자 신분이 될 수 있다는 걱정을 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했다.

백악관 “국토안보부와 상무부가 공동 대응”

다만 이번 사태를 계기로 백악관에선 한국 등 대규모 투자를 지원하기 위한 비자 제도 개선을 검토할 뜻을 내비쳤다.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이번 사태와 관련 “국토안보부와 상무부가 이 문제를 공동으로 검토 중”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은 매우 미묘하면서도 책임 있는 입장을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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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이 9일(현지시간) 백악관 브리핑에서 이번 사태와 관련 국토안보부와 상무부가 공동대응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EPA=연합뉴스

이번 사태를 계기로 트럼프 행정부 정책의 핵심 축으로 불리면서도 상호 모순적 관계라는 지적을 받아온 강경한 이민 단속과 대규모 대미 투자를 주관하는 두 부처간의 업무 조율을 강화할 가능성을 내비친 말로 해석된다.

레빗 대변인은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대미 투자)기업이 고도로 숙련되고 훈련된 근로자들을 (미국으로) 함께 데려오기를 원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며 “특히 그들이 반도체와 같은 매우 특수한 제품이나 조지아에서처럼 배터리 같은 것을 만들 때는 더욱 그렇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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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이민 단속 당국이 홈페이지를 통해 지난 4일(현지시간) 조지아주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현장에서 벌인 불법체류?고용 단속 현장 영상을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했다. ICE 홈페이지 영상 캡쳐=연합뉴스

그러나 익명을 요청한 현지 이민 변호사는 “한국 근로자들과 기업들이 미국의 이민법을 위반한 것은 틀림 없는 사실”이라며 “아무리 트럼프 대통령이라도 향후 제도 개선과 별개로 법치국가인 미국에서 근로자들이 자진출국을 위해 직접 서명해 위법을 했다고 확인한 사안을 한국 정부가 요청하는 것처럼 완전히 ‘없던 일’로 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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