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보스턴·중관춘 같은 혁신창업기지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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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60년 기획 - 혁신창업국가 국제포럼 2025

중앙일보와 KAIST, 서울대가 공동으로 개최한 ‘2025 혁신창업국가 대한민국 국제포럼’이 10일 대전 KAIST에서 열렸다. ‘혁신창업 클러스터의 길’을 주제로 열린 포럼에서 시상식이 끝난 뒤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앞줄 왼쪽 넷째부터 김영식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이사장, 이광형 KAIST 총장,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 유홍림 서울대 총장, 이주한 대통령실 과학기술연구비서관, 구혁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1차관, 노용석 중소벤처기업부 차관. 김경록 기자
“기초 연구개발(R&D)과 투자를 위한 인프라, 한국은 이미 다 갖추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요소들을 새로운 성장 엔진(혁신창업)으로 연결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10일 대전시 한국과학기술원(KAIST) 본원 KI빌딩에서 열린 ‘2025 혁신창업국가 대한민국 국제포럼’에서 기조연설자로 나선 요하네스 프루에하우프 랩센트럴(LabCentral) 회장은 한국 기술 창업 생태계의 문제점을 이같이 지적했다. 그는 미국 보스턴에 있는 바이오 클러스터 ‘캔달스퀘어(Kendall Square)’를 세계적인 바이오산업 허브로 키워낸 주역이다.
캔달스퀘어는 도보 15분 거리에 연구, 사업화, 투자 등 창업 생태계에 필요한 기업·기관·대학들이 모두 밀집해 있어 ‘지구상에서 가장 혁신적인 1제곱마일’로 불린다. 매사추세츠공과대(MIT)와 하버드대 등 대학부터 모더나 본사 등 바이오 테크 기업, 1000여 개 이상의 신생 바이오 스타트업이 자유롭게 교류하며 혁신을 만들어내고 있다.
프루에하우프 회장은 연구자와 기업, 투자자가 한 공간에 밀집해 긴밀히 협력하는 유기적 순환 구조가 ‘연결’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바이오 과학자들의 창업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는 랩센트럴에서는 과학자들이 커피를 한 잔 마시면서 투자자 등 잠재적 협업자들과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게 한다”고 말했다. 또 기술사업화를 위해선 기술이전 전담조직(TLO)을 키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프루에하우프 회장은 “한국에선 연구자들이 경영 노하우가 부족하거나 관료주의로 인해 창업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TLO는 지식재산과 시장의 연결고리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은 국내총생산(GDP)의 5% 가까이 연구개발(R&D)에 투자하고 있지만, 이 성과가 창업과 사업화로 이어지지 않는 ‘R&D 패러독스’에 빠져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정부 R&D 성과 기술을 기업에 이전한 비율은 30%에 머물고 있고, 전체 보유 기술 중 실제 사업화에 성공하는 비율도 2~3%에 불과하다. 정부가 내년 국가 주요 R&D 예산을 역대 최대 규모인 35조3000억원으로 책정했지만, ‘연구를 위한 연구’에 머무는 상황이 지속되면 신성장 엔진을 만들기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앙일보와 KAIST, 서울대가 ‘혁신창업 클러스터의 길’을 주제로 연 이번 포럼에서도 이 같은 ‘R&D 패러독스’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이 논의됐다.
가장 혁신적 1제곱마일, 그곳에 한국 R&D역설 해법 있다
중국의 최대 혁신클러스터 중관춘 부흥에 핵심적 역할을 한 류더잉 베이징대 혁신창업센터 원장은 “대학에서 R&D 단계부터 시장 수요를 고려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중관춘은 베이징대, 칭화대를 중심으로 한 대학가와 기업, 연구소 등이 모여 형성한 클러스터다. 류 원장은 “연구자가 성과를 공급하는 측면만 고려해선 사업은커녕 논문으로 끝난다”며 “베이징대에서는 R&D 단계부터 민간과 시장 수요를 고려하도록 교육한다”고 전했다.
한국 역시 혁신창업 가속화를 위한 ‘1제곱마일’을 육성해 왔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을 중심으로 바이오 클러스터로 탈바꿈하고 있는 서울 홍릉과 KAIST 등 30여 개가 넘는 대학·정부출연연구기관이 모여 있는 대전시 대덕이 대표적이다. 이곳에선 한국을 이끄는 딥테크 기업들이 나오고 있지만 아직 보스턴과 중관춘만큼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지는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오상록 KIST 원장은 “한국도 과학기술 중심 클러스터 생태계를 구축해 왔지만, 인프라 조성 등 하드웨어 측면만 강조해 왔다”며 “격식 없는 교류를 통해 지식을 자유롭게 공유하고, 실패를 포용하는 문화 등 소프트웨어 측면을 더 발전시켜야 클러스터가 가진 가치를 더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공 R&D 기술을 기업 수요자와 이어주는 플랫폼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지훈 강원대 교수는 “기술사업화의 구조적 병목을 해결할 해법은 실험실 창업과 혁신클러스터”라며 “기술사업화 통합 플랫폼을 구축해 공공 기술의 등록과 평가, 이전과 투자 과정을 단일 창구에서 처리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홍림 서울대 총장은 “혁신은 혼자서는 불가능하고, 한 번으로 끝나서도 안 된다”며 “인재가 R&D를 이끌고 이 성과가 창업과 산업으로 확장되는 선순환 구조는 정부와 기업, 대학이 함께 뜻을 모아 노력할 때 실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광형 KAIST 총장은 “대한민국은 세계 수준의 연구 역량을 보유하고 있지만, 여전히 R&D 패러독스라는 구조적 한계에 직면해 있다”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세계적으로 성공한 보스턴이나 중관춘처럼 한국도 제대로 된 창업 혁신클러스터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은 “‘중국의 실리콘밸리’라 불리는 항저우에는 ‘6소룡’이라 이름 지어진, 세계가 주목하는 혁신 스타트업들이 있다”며 “머지않은 미래에 이곳 대덕과 서울 홍릉이 세계가 주목하는 혁신클러스터로 변신해 미국과 중국의 미디어들이 ‘홍릉 6청룡’ ‘대덕 6황룡’을 앞다퉈 취재하는 날이 오리라 믿는다”고 밝혔다.
올해 4회째인 포럼은 해마다 그 규모와 위상이 커지고 있다. 올해는 이재명 대통령이 축사를 전해왔고, 기술사업화 관계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산업통상자원부·중소벤처기업부가 후원사 겸 시상 기관으로 참여했다. 이 대통령(이주한 대통령실 과학기술연구비서관 대독)은 이날 축사에서 “정부는 기술 주도 성장을 경제성장 전략의 나침반으로 삼아 R&D, 창업 그리고 성장으로 이어지는 혁신 창업 생태계가 보다 튼튼해지도록 전방위 지원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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