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일본·독일은 헌법에 "불가" 못박았다…'위헌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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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8·15 해방이나 4·19 때처럼 혁명기라고 생각하니 명백히 위헌이라도 밀어붙이는 것 아닙니까.”

대법원 법원행정처(처장 천대엽 대법관)가 12일 여권이 추진 중인 내란특별재판부 설치를 주요 의제로 전국 법원장 회의를 소집한 가운데 현직 부장판사가 탄식하며 한 말이다. 이 법관의 말대로 특별재판부는 1948년 건국 직후 반민족행위자 처벌과 4·19 혁명 직후 3·15 부정선거 가담자, 1961년 5·16 쿠데타 직후 반혁명행위자 처벌 등을 명분으로 세 차례 설치됐다. 당시엔 삼권분립 위반 논란에도 불구하고 그때마다 제헌헌법 부칙 등 헌법에 근거 조항을 마련했었다.

지금 더불어민주당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위에 회부한 내란특별재판부 설치 법안(12·3 비상계엄의 후속조치 특별법)은 헌법에 근거없이 헌법상 법원에 속하는 사법권(헌법 101조)·법관임명권(104조)을 침해한다는 점에서 위헌 논란이 거세다. 특정인, 특정사건을 놓고 특별재판부를 설치한다는 점에서 내란사건 피고인들의 평등권, 헌법·법률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등 기본권 침해 소지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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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12월 8일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 산하 반민족행위특별재판부의 재판광경. 사진 국회도서관 제공

與 추진 내란전담재판부…대법원 “사법독립 침해”

정청래 민주당 대표가 뒤늦게 9일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내란‘특별’재판부를 내란‘전담’재판부로 표현을 바꿨지만 입법부가 사법부 구성에 관여한다는 내용은 동일하다.

내란전담재판부는 1심은 서울중앙지방법원에, 2심은 서울고등법원에 설치하고 특별영장전담법관은 서울중앙지법 소속으로 두는 것이 골자다. 국회·법원 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변협)가 각 3명씩 추천한 인물로 구성된 9인의 ‘특별재판부후보추천위원회’가 이들 판사를 2배수로 추천하면 대법원장이 그중에서 임명하는 구조다.

법원행정처가 법사위 제출 의견서에서 내란 특별재판부 및 특별영장전담법관에 대해 ‘위헌성’을 지적한 대목은 크게 4가지다. ▶국회와 대한변협이 추천한 위원으로 특별재판부 법관과 영장전담법관을 임명하는 것은 개별 사건 재판에 영향을 미쳐 그 자체로 사법권 독립(헌법 103조)을 침해하고 ▶특정 사건 심판할 법관을 별도 임명해 특별재판부에 이관할 경우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재판받을 권리(27조)를 침해하며▶후보자 추천 구성 및 추천 구조로 인해 개별 재판의 정치적 중립성·독립성·객관성 논란으로 사법 신뢰가 우려되고 ▶피고인들의 위헌법률심판 제청이 있는 경우 재판이 정지되는 등 신속한 내란 재판이란 입법 목적에 반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며 향후 특별재판부 설치 요구가 반복될 것 등이다.

한 고법판사는 “수많은 시민들을 학살한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재판 때도 특별재판을 하지 않았다”며 "향후 특별재판부에 대해 위헌 판단이 나면 오히려 내란 재판이 다 재심 판단 대상이 되고, 무죄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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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29회 국회(정기회) 제2차 본회의에서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하고 있다. 뉴스1

국내, 해방 직후 등 세 차례…독일·일본, 헌법서 ‘특별법원 금지’

헌정사 첫 특별재판소 설치를 놓고 제헌국회에서도 사법권 침해와 삼권분립 원칙 위반을 놓고 논란이 컸다. 1948년 8월 21일 서우석 당시 한민당 의원은 “특별법이라고 특별재판소를 설치한다면 앞으로도 무엇이든지 특별재판소를 설치하게 될 것”이라며 “그러면 사법재판소(법원)는 ‘무용의 장물’(무용지물)이 될 뿐”이라고 반대했다. 이에 김웅진(무소속) 의원은 “이런 법령은 또 생겨선 안 될 것”이라며 “특별재판소를 두는 것은 이번 한번이고 특별법 제정도 이것 하나가 될 것”이라고 다짐하며 찬성론을 폈었다.

하지만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3·15 부정선거 관련자 특별재판소(1960)와 반국가적·반민족적·반혁명적 행위자혁명재판소(1961)가 있었다. 두 번째는 5·16 쿠데타 지휘부(국가재건최고회의)가 하위 법률로 특별재판소를 먼저 설치한 뒤 2년 뒤 개헌을 통해 헌법에 근거를 뒀다. 이에 당시 혁명재판소는 문자 그대로 5·16 쿠데타에 비판(반혁명)적인 인사를 처벌하는 권력 수호용 기구로 쓰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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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원 기자

법원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혁명적 상황에서나 쓰일 특별재판소를 두겠다는 것은 국격을 깎아내리는 것”이라며 “5·16 혁명재판소처럼 반정부 인사를 처벌하려는 것이란 정치적 논란만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특별재판 금지는 시민혁명 이후 근대 법치주의 기본 원리이기도 하다. 15~17세기 절대왕정의 도구였던 영국 성실청(Star Chamber)의 폐해 이후 자리잡은 것이다. 2차 세계대전 패전국으로 국제전범재판소가 설치됐던 독일과 일본은 아예 헌법에 각각 “특별법원은 허용되지 않는다”(101조 1항), “특별재판소를 설치할 수 없다”(76조 2항)고 못 박았다.

이와 관련 독일 헌법 주석서는 “특별법원은 행정부가 법적 관할권과 달리 특별히 구성하고 개별적으로 지정된 사건을 판결하도록 부름 받은 법원을 의미한다”며 “이는 법원 구성원이 특정 성향을 가지고 선출될 위험이나 의혹을 수반한다. (설치 금지 조항은) 법관이 (정부가) 조작하는 방식으로 임명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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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준홍 기자

국회 법사위 국민의힘 간사인 나경원 의원은 지난 5일 “나치는 사법과 수사권을 장악해 독재를 완성했다”며 민주당의 내란전담재판부를 나치 정권의 인민법원(Volksgerichtshof)에 비유해 비판하기도 했다.

김대환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오로지 내란 척결 목표만 밀어붙인다면 역사 속에서 확립한 법 원칙과 시스템이 망가질 수 있다”며 “힘 있으면 다 할 수 있다는 우격다짐 대신 부작용 등을 고려한 깊이 있는 토론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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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전 대통령. 사진은 지난 7월 9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치고 법원을 나서는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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