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핵무기 완전히 없애야" 북한 형제국 쿠바는 달랐다 [더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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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디오 몬손 초대 주한 쿠바 대사 

해변 카페에 앉아 쿠바산 시가를 물고 칵테일 다이키리를 홀짝거리는 모습을 상상해보자. 파도 너머에선 조각배를 탄 노인이 상어 떼와 혈투를 벌이는 장면이 보이는 듯하다. 역동적인 쿠바 살사 리듬에 몸이 절로 들썩거린다. 머릿속에 이런 이미지가 떠오르는 나라가 바로 쿠바공화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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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디오 몬손 주한 쿠바 대사가 태극기와 반데라 데 라 에스트레야 솔리타리아(쿠바 국기·왼쪽) 사이에서 진지한 표정으로 서 있다. 쿠바는 지난해 2월 한국과 수고했고, 몬손 대사는 지난 1월 서울에 부임했다.우상조 기자

하지만 현실의 쿠바는 몽환적이고 낭만적 인상과는 많이 다르다. 미주 대륙의 유일한 사회주의 국가이며, 북한의 오랜 우방국이 쿠바다. 이런 쿠바가 지난해 2월 14일 대한민국의 193번째 수교국이 됐다. 그리고 지난 1월 7일 클라우디오 라울 몬손 바에사(40) 대사가 초대 주한 쿠바 대사로 부임했다. 지구 반대편 먼 나라에서 태평양을 건너온 낯선 외교관을 만났다.

주한 쿠바 대사관은 서울역이 내려다보이는 빌딩에 지난 6월 둥지를 텄다. 로비 서가에 쿠바 혁명 동지인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의 책이 꽂혀 있었다. 공관원은 몬손 대사와 1등 서기관(대사 부인) 등 달랑 2명뿐이다. 부부가 같은 공관에서 근무하는 경우가 쿠바에서 흔하다고 한다.

라틴 아메리카 특유의 열정적인 인사를 기대했지만, 몬손 대사는 차분한 분위기로 맞아줬다. 쿠바의 우방인 북한이 적대하는 자본주의 국가의 기자가 낯선지 조심스러워했다. 미리 준비한 답변지를 보면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북한·쿠바 관계 관련 이슈 등 민감한 질문엔 직답을 피했다. 새삼 쿠바가 사회주의 국가라는 사실을 자본주의 국가의 기자가 깨달았다. 그러나 야구 얘기를 나눌 땐 몬 대사의 눈빛이 확연히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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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디오 몬손 주한 쿠바 대사가 22일 서울 세종대로 쿠바 대사관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했다. 우상조 기자.

서울의 첫인상은.
그동안 한국과 외교 관계가 없었기 때문에 쿠바엔 한국에 대한 참고 자료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한국은 내게 도전적이면서 동시에 흥미로운 부임지다. 아직 1년이 안 돼 경험이 적지만, 앞으로 많은 것을 발견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서울의 여름 날씨를 아바나와 비교하면.
서울도 아바나만큼 더웠다. 겨울이 더 인상적이었다. 1월 도착했을 때 너무 추워 힘들었다. 여러 나라에 가봤지만 이렇게 추운 곳은 처음이었다.

쿠바에는 일제 식민지 시대인 1921년 멕시코를 경유해 이주한 한인(한국인)들이 사상수수 농장에서 일하며 항일독립운동 성금을 보냈고, 후손들이 지금도 다수가 거주하고 있다. 쿠바는 1949년 7월 12일 신생 독립국 대한민국을 승인했고, 6·25전쟁 때 물자를 원조한 인연도 있다. 1958년 당시 쿠바의 중화민국(대만) 대사가 주한 공사로 겸임발령을 받아 1959년 1월 한국에 신임장을 낼 계획이었다. 그러나 1959년 1월 1일 카스트로가 이끄는 쿠바 혁명으로 없던 일이 됐다. 쿠바는 북한과 1960년 8월에 수교한 뒤 서로를 ‘형제의 나라’로 부를 만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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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디오 몬손 라울 바에사 주한 쿠바 대사가 쿠바 대사관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했다. 우상조 기자

쿠바는 2022년 이태원 참사 때 미수교국인데도 이례적으로 애도를 표했다.

이태원 참사는 정말 큰 비극이었기에 쿠바 국민은 진심 어린 뜻을 전했다. 그 당시 이미 양국 사이에 일정한 소통 창구가 있었다. 다자 분야를 포함한 일부 협력을 진행하고 있었다.
한국·쿠바의 역사적 관계 정상화를 이룬 요인은.
1898년 쿠바 독립전쟁과 미국·스페인 전쟁이 끝났지만, 쿠바는 곧바로 독립하지 못했다. 쿠바 혁명 이전의 쿠바가 진정으로 독립했다고 여기지 않기 때문에 쿠바엔 따로 ‘독립 기념일’이 없다. 국경일은 1월 1일인데, 이는 쿠바 혁명의 승리를 기념하는 날이다. 미국의 군사 점령은 1902년까지 이어졌다. 그 이후 등장한 쿠바는 사실상 주권 국가가 아니었다. 바티스타 정권은 정당성이 없었고, 결국 쿠바 혁명으로 무너졌다. 양국의 외교 관계 수립은 역사적 요인의 결과라 생각한다. 단순히 ‘실용주의 대 이념’로 분석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념이나 정치적 입장의 유사성이 외교의 조건은 아니기 때문이다. 쿠바는 미국 등 191개국(전체 유엔 회원국 193개)과 외교 관계를 맺고 있다.

1962년 미국은 소련이 쿠바에 몰래 핵미사일 기지를 세우고 있는 사실을 포착했다. 그해 10월 16일부터 29일까지 미·소는 핵전쟁을 불사하면서 강경대치했고, 3차 세계대전 우려까지 제기됐다. 결국 서로 한 발짝씩 물러나면서 사태는 극적으로 진정됐다. 그 사건이 바로 ‘쿠바 미사일 위기’다.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인류는 핵전쟁과 절멸의 위기를 간신히 모면했다. 그런데도 지금 북한은 핵·미사일을 개발하고 있다.
세상에 핵무기가 존재하는 한 모든 인류가 위험에 놓여 있다. 특정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아시다시피 쿠바는 핵 군축에 확고히 전념해왔다. 쿠바는 헌법에서 핵무기의 존재·확산·사용을 거부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유엔은 매년 9월 26일을 ‘국제 핵무기 완전 폐기의 날’로 지정했는데, 이는 쿠바가 주도한 결과다. 쿠바는 핵무기금지조약(TPNW)을 비준한 다섯 번째 국가다. 쿠바는 핵확산금지조약(NPT) 회원국이기도 하다.

미국·러시아·중국·영국·프랑스 등 핵무기 보유국과 북한·인도·파키스탄·이스라엘은 TPNW에 반대하고 있다. 미국이 핵우산을 포함해 확장억제를 제공하는 한국도 TPNW에 참가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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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4일 쿠바 아바나 한인후손회관에서 열린 한식 클래스에 아르코르 회원들이 한식을 요리한 뒤 맛보고 있다. 주쿠바 한국 대사관

쿠바의 한국 문화 커뮤니티인 아르코르(ARTCOR)는 회원 수가 1만 명이 넘었다.
K팝은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으며, 쿠바에서도 마찬가지다. 춤과 음악은 다양하지만, 인간의 본성에 뿌리를 두고 있다. K팝 팬들은 이런 차이점과 유사점을 동시에 발견했을 것이다. 쿠바의 독창적이고 깊이 있는 문화도 수많은 사람의 관심과 열정을 끌어내고 있다. 수교를 계기로 한국 대중이 쿠바 문화 전반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발견하길 바란다.

몬손 대사의 첫 공공외교는 야구에서 시작했다. 그는 지난 4월 22일 한국야구위원회(KBO)를 방문했을 정도로 야구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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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2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야구 대표팀과 쿠바 대표팀의 평가전 2차전에서 송성문이 3루타로 출루하고 있다. 뉴스1

야구는 쿠바에서 가장 사랑받는 스포츠인가.
쿠바엔 배구 팬도 많고, 요즘은 축구 팬도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야구가 쿠바에서 제일 인기 있다. 지금 현역은 없지만 한국 프로야구리그에서 뛴 쿠바 선수들도 많았다. 한국과 쿠바에서 야구는 아주 중요한 스포츠다. 야구 전통을 공유하고, 팬들이 자국 리그를 열렬히 지지하며, 이미 과거에도 협력한 경험이 있다. 야구야말로 두 나라가 꼭 함께 협력해야 할 분야다. 내가 응원할 한국 야구팀을 찾는 중이다.
쿠바는 한국인이 꼭 가보고 싶어하는 관광지다.
매우 긍정적 현상이다. 쿠바는 관광객에게 독특한 경험을 제공한다. 역사적 유산, 아름다운 자연, 풍부한 문화, 맛있는 음식이 한데 어우러진 곳이 쿠바다. 무엇보다 따뜻한 환대라는 가치를 갖고 있다. 쿠바를 방문해 이런 것들을 충분히 즐기고 경험하길 바란다.
관광 명소를 추천한다면.
식민지 시대의 건축과 풍부한 역사를 담고 있는 아바나 역사 지구는 1982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아바나 동쪽의 바라데로는 세계적 해변 휴양지로 꼽힌다.
얼마나 많은 한국인이 쿠바를 찾고 있나.
한국인이 쿠바를 가장 많이 방문했던 해는 수교 이전인 2018년(2만 명)이었다. 그 이후 점차 줄었고, 코로나19 때문에 아직 그 규모를 회복하지 못했다. 올해 수천 명이 방문할 것으로 예상한다.

쿠바에 가려면 비자 성격의 '여행자 카드'를 받아야 한다. 미국이 2021년 쿠바를 테러 지원국으로 재지정한 뒤 쿠바 방문자의 미국 입국이 까다로워졌다.

한국과의 경제협력 전망은.
잠재력이 아주 크다고 본다. 한국산 자동차와 전자기기는 주로 제3국을 경유해 수입됐지만, 쿠바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인들이 흥미를 느낄 쿠바 상품도 많다. 커피·꿀·시가·럼주다. 쿠바는 전 세계 니켈 매장량 5위, 코발트 매장량 3위다. 바이오 분야에서도 상당한 발전을 이뤘다. 쿠바가 개발한 허버프롯(Heberprot)-P는 당뇨 합병증 치료제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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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17일(현지시간) 쿠바 아바나에서 열린 주쿠바 한국 대사관 개관식, 한국 정부를 대표하여 이주일 외교부 중남미국장과 쿠바 외교부 양자총국장 카를로스 페레이라 등 쿠바측 인사들도 참석했다. 외교부

어떻게 수준 높은 의료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나. 
‘의료는 비즈니스가 아니라 국민의 권리’라는 쿠바 혁명 철학과 관련이 있다. 쿠바는 ‘가정의사 제도’를 운영한다. 일정 구역마다 주민을 전담하는 의사를 배치한다. 가정의사는 주민의 건강 상태를 파악하고, 정기적으로 상담하며, 식습관·질병 예방법을 교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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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디오 몬손 라울 바에사 주한 쿠바 대사가 쿠바 대사관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했다. 우상조 기자

쿠바의 외국인 투자 환경은.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려고 절차를 간소화하고, 세제 혜택도 제공하고 있다. 쿠바 외교통상부가 매년 투자 포트폴리오를 발간해 인터넷에 공개한다. 미국의 쿠바 제재에도 많은 외국 기업인들이 쿠바를 찾고 있다.

몬손 대사는 “쿠바 인구는 1098만(2024년)인데 숙련 인력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며 “한국과는 이제 막 본격적인 교류를 시작했으니 앞으로 함께 할 일이 더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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