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기내에서 비빔밥 두 그릇 먹었다”…‘미국 다시 갈 거냐’엔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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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조지아에 구금됐던 한국인 근로자 316명을 포함한 330명을 태운 전세기가 14시간 40분의 긴 비행을 마치고 12일 오후 3시 24분경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 문이 열리자 며칠간의 구금 생활로 수척해진 근로자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긴장된 표정 속에서도 입가에는 안도감이 묻어났고, 일부는 웃음을 지으며 연결 통로를 빠져나왔다. 대부분 구금 당시 옷차림 그대로였다. 손에는 휴대폰 등 간단한 물품을 담은 비닐 봉지를 쥐고 있었다. 일부는 여권도 챙기지 못해 법무부 출입국 심사를 따로 받는 모습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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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집으로' (영종도=연합뉴스) 이진욱 기자 = 미국 이민당국에 의해 조지아주에 구금됐던 한국인 근로자들이 12일 영종도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입국장을 나서고 있다. 2025.9.12 xxxxxxxxxxxxxxxxx (끝)〈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집에 오니 살 것 같다.”

이날 입국장을 향하던 한 근로자가 짧게 현재 심경을 밝혔다. 옆에 있던 또 다른 이는 “가족이 제일 먼저 생각났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한 중년의 근로자는 “아이 얼굴이 계속 생각났다. 다시 (애를) 품에 안을 수 있게 돼서 다행”이라고 말하며 목이 메인 듯 고개를 떨궜다.

또 다른 근로자는 억류 생활이 어땠는지 묻는 질문에 “하루하루가 길었다. 좁은 공간에 여러 명이 지내며 거의 말도 못 하고 버텼다”고 전했다. 잠은 제대로 잤느냐는지 묻자 “잠은커녕 (밤낮) 시간 개념도 없었다. 언제 풀려날지 몰라 더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제대로 씻지도 못해 가장 힘들었다"고 덧붙였다.

임신한 동료에 대한 걱정도 전해졌다. 한 근로자는 “구금된 사람 중에 임신한 직원도 있었다. 모두가 괜찮을까 걱정이 많았다”며 당시 불안했던 심정을 털어놨다. 임산부였던 여성 직원 1명은 귀국 비행기에서 1등석에 앉도록 배려했다고 정부 측은 밝혔다.

“다시 미국에 갈 생각이 있느냐”는 취재진 질문에는 대부분 고개를 숙인 채 침묵했다. 잠시 머뭇거리던 한 근로자는 “회사에서 가라고 하면 가야 하지 않겠나”라고 답했지만, 얼굴에는 복잡한 심경이 읽혔다. 또 다른 이는 “솔직히 무섭다. 가족이 말려서라도 다시는 못 갈 것 같다”고 했다.

이번 귀국은 이달 4일(현지시간) 미국 조지아주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발생한 대규모 단속 사태의 후속 조치다. 당시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은 475명을 체포했으며, 이 중 한국인 근로자 317명이 구금됐다 풀려났다. 사건 직후 한국 정부와 회사 측은 긴급 협의를 거쳐 대한항공 전세기를 투입해 귀국 지원에 나섰다. 한국인 중 1명은 현지에 영주권자인 가족이 있어 체류를 희망했다고 한다. 김윤주 외교부 1차관에 따르면, 개인 변호사를 통해 보석 신청을 할 예정이다.

전세기 안 풍경도 전해졌다. 대한항공은 귀국자들을 기내식 메뉴의 90% 이상을 비빔밥으로 구성했고, 부족할 것을 대비해 평소보다 120% 분량을 준비했다. 씻지 못한 채 억류 생활을 이어온 근로자들을 위해 물티슈도 넉넉히 제공했다고 대한항공은 설명했다. 한 귀국자는 “비빔밥을 두 그릇이나 먹었다. 한국 음식이 이렇게 맛있는지 새삼 알았다”며 웃었다. 다른 근로자도 “같이 있던 동료들이 한 숟갈 뜰 때마다 ‘이제 살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입국장까지 가는 길에도 짧은 인터뷰는 이어졌다. 한 근로자는 “집에 가면 바로 가족 얼굴부터 보고 싶다. 그게 제일 큰 힘이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근로자는 “이제 당분간은 아무 데도 가고 싶지 않다. 그냥 가족 곁에 있고 싶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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