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터질게 터졌다" 與투톱의 충돌…'추미애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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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와 김병기 원내대표가 12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최고위원들 발언을 듣고 있다. 임현동 기자
더불어민주당의 투톱인 정청래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의 이례적 공개 충돌을 놓고 당내에서 리더십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강성 지지층 반발이 거세지자 여야 원내대표의 3대 특검법 개정안 합의를 정 대표가 하루 만에 뒤집은 이른바 ‘14시간 파동’이 향후 민주당 지도부의 역할 공간을 더 좁게 만들 것이란 이유에서다.
민주당 원내 지도부 출신 중진 의원은 12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우리는 앞으로도 사안마다 강성 지지층의 항의 문자를 잔뜩 받을 것”이라며 “당이 그런 상황을 관리하지 못하는 건 아마추어적”이라고 지적했다. 현 원내 지도부 소속 의원은 “의원들 생각이 다 옳을 수 없는 것처럼 당원들 생각이 늘 옳은 건 아니다”며 “뜻이 다를 땐 당원들에게 설명하고 설득해야지, 원내 지도부가 한 협상을 뒤집어엎는 (정 대표의) 리더십이 맞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전날 오전 정 대표는 불과 14시간 전 김 원내대표가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와 타결한 특검법 개정안을 합의를 원점으로 되돌렸다. 여당이 특검 수사 기간을 연장하지 않는 대신 야당이 금융감독위원회 설치 법안에 협력한다는 게 합의의 골자였지만 정 대표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정 대표는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도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며 “(합의 내용을 알고) 많이 당황했다”고 했다. 지난 10일 오후 여야 합의 내용이 알려진 직후 여당 강성 지지층이 모인 온라인 게시판에선 “수박이냐”“사퇴하라” 등 원내 지도부를 향한 공격이 쏟아졌다. 이후 당내 강성 의원들도 “합의가 필요치 않다”(추미애 국회 법제사법위원장)고 공개 반발하는 등 분위기가 끓어오른 끝에 정 대표가 이튿날 오전 합의 번복을 선언한 것이다.
“당황했다”는 정 대표 발언으로 독단 행동을 한 셈이 된 김 원내대표는 분노했고, 여야 협상 타결 전 투톱의 사전 논의 여부를 둘러싼 진실 공방은 12일까지 이틀째 이어졌다. 전날 의원총회에서 “과정이 매끄럽지 못한 부분은 본인의 부덕의 소치”라고 사과한 정 대표가 이날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원팀’을 강조하며 봉합을 시도했지만, 회의장에 바로 붙어 앉은 두 사람은 정면만 응시한 채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이런 투톱의 공개 충돌에 대해 민주당 일각에선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 나온다. 그동안 공개적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역할 분담을 둘러싼 두 사람 사이의 미묘한 긴장감은 이미 계속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정 대표 취임 직후인 지난달 6일 차명 주식 거래 의혹으로 민주당에서 제명당한 이춘석 의원을 대신할 법사위원장으로 6선 추미애 의원이 내정된 사실을 공개하는 과정에서 두 사람은 미묘한 신경전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 최고위에서 정 대표는 “김 원내대표가 발표하겠다”며 법사위원장 발표 기회를 양보하는 듯한 모양새를 취했다. 이에 대해 원내지도부 측 인사는 “비장의 카드였던 추 의원 선임은 원내에서 다 논의한 건인데 마치 발언 기회를 주는 듯하는 게 맞느냐”고 불쾌감을 보였다.
지난 8일 정 대표가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 나선 걸 두고도 일각에선 뒷말이 나왔다. 교섭단체 대표 연설은 원내 20석 이상을 가진 교섭단체의 대표에게 주어지는 만큼 보통 원내대표가 한다. 현역 의원인 대표가 새로 뽑히거나 하는 경우 원내대표가 아닌 대표가 하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 대표와 원내대표가 미리 얘기를 해 정하는 게 여의도의 관례로 통한다. 이번에 정 대표가 연설한 것 자체가 이례적이진 않지만 지난 6월 취임한 김 원내대표가 한 번도 연설한 적 없다는 점에서 당내에선 “김 원내대표가 아쉬웠겠다”는 반응이 나왔다. 김 원내대표와 비슷한 시기에 취임한 송언석 원내대표는 정 대표 다음 날인 지난 9일 직접 연설을 했다.
수도권 중진 의원은 “대표는 민생·경제·안보 같은 국가적 이슈에 대한 기조를 정하고 원내대표는 야당과의 협상자로서 역할 분담과 존중이 매우 중요한데, 아직 그런 팀워크가 갖춰지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대표가 당의 1인자지만 원내대표도 의원들의 대표”라며 “‘지시’ 같은 말로 원내대표의 입지를 좁히는 건 당에 좋지 않다”고 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민주당 대표이던 시절 원내대표를 지낸 홍익표 전 의원은 12일 페이스북에 “민주당은 이제 당원의 뜻을 거스르기는 어렵다”면서도 “때로 당원의 뜻과 다르거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선택을 할 경우에는 용기있게 상황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적었다. 정 대표가 압도적 당심을 업고 대표에 당선됐지만, 사안에 따라 당심을 설득하는 리더십도 필요하단 취지다. 곽현 국회의장 정무수석비서관은 페이스북에 “김 원내대표와 문진석 원내수석의 협상전략은 매우 적절했다”며 “협상을 엎은 이유를 아직도 납득하기 어렵다”고 썼다.
일각에선 이재명 대표 체제와 달리 압도적 리더십이 사라진 상황에서 다른 최고위원의 역할이 아쉽다는 의견도 나왔다. 한 지도부 의원은 “예전엔 이재명이라는 워낙 강한 리더가 있었다”며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최고위원들이 중요한 결정 과정에서 격론을 벌이고 총대 멜 수도 있어야 하는데 대체로 수수방관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런 분위기에선 목소리 큰 당원의 입김에 모든 의사결정이 쓸려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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