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부정거래' 저지르고도 호화생활…피해자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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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30일 서울 영등포구 한국거래소에서 주가조작 근절 합동대응단 현판식이 열렸다. 맨 왼쪽은 권대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연합뉴스
‘청담동 주식부자’로 알려진 A씨는 2000억원대 주식 이용 범죄(사기적 부정거래 등)를 저지른 혐의로 2020년 징역 3년 6개월을 확정받았다. 하지만 A씨는 출소 뒤 900억원 규모의 유사 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2023년 다시 재판에 넘겨졌다. 그 사이 A씨는 서울 강남의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를 사고 수퍼카를 몰며 호화 생활을 이어간 반면, 피해자 230여명(1차 사건 범행기간 2014~2016년)은 10년가량 동안 고통을 겪고 있다. 피해자 모임 대표인 박봉준 씨는 “이런 시장을 누가 믿고 투자할 수 있겠느냐”라고 하소연했다.
정부가 내건 ‘코스피 5000’ 목표를 달성하는 데 주요 장애물 가운데 하나는 시장 내 만연한 불공정거래 행위다. 솜방망이 처벌로 범죄자가 재범률이 30%에 육박(금융위원회 조사)하고, 이는 개인투자자들의 시장 불신으로 직결된다.
실제로 지난 11일 중앙일보·오픈서베이가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 결과 국내 주식시장에 투자 중인 868명 가운데 36.4%(316명)가 투자의 걸림돌로 불공정거래(시세조종, 사기적 부정거래, 미공개 정보 이용)를 지목했다. 투자자 상당수가 관련 피해를 볼 수 있단 우려에 소극적으로 투자하거나 시장에서 등을 돌릴 수 있다는 이야기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연간 불공정거래(3대 불공정거래+지분보고 의무 위반 등) 조사 건수는 2021년 80건에서 지난해 133건으로 증가세다.
이에 정부는 지난해 1월부터 3대 불공정거래에 대한 과징금(행정처벌) 제도를 도입했다. 수사와 재판을 통한 형사처벌에 앞서 신속하게 제재를 가해 범죄 확산을 조기에 막는 게 목적이다. 그러나 이 제도는 사실상 무용지물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위에 따르면 제도 도입 뒤 12일 현재까지 관련 사건으로 과징금을 부과한 건수가 0건인 것으로 나타나서다.
금융당국은 관계법령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현행 자본시장법 시행령 380조에 따르면 주식시장 3대 불공정거래에 대한 과징금은 원칙적으로 검찰의 수사·처분 결과를 확인한 뒤 통지하게 돼 있다. 수사가 끝나기를 기다리느라 과징금 부과가 지연되고 있다는 얘기다. 앞서 검찰이 “수사 전에 과징금을 부과하면 증거인멸 우려가 크다”는 의견을 냈고, 그대로 시행령에 반영됐다.
그러나 금융위와 달리 공정거래위원회가 담합 등의 범죄를 조사하고 과징금을 매길 때는 검찰 수사를 기다려야 한다는 조항이 없다. 공정위는 지난해 시장지배적지위 남용 등의 혐의로 124건(4227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이 때문에 이정수 서울대 로스쿨 교수는 “경미하거나 위법 사실의 소명이 충분히 이뤄진 사건은 검찰 수사를 기다리지 않고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정연 이화여대 로스쿨 교수는 “공정위 과징금과 형평성을 맞추기 위해 해당 조항을 아예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한국거래소는 지난 7월 30일 ‘주가조작 근절 합동대응단’을 출범했다. 관련 범죄에 신속하고 강력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다. 이를 두고 김유성 연세대 로스쿨 교수는 “전문성과 인력 규모를 키우기 위해 경찰도 함께 하도록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형사 처벌 강도를 높여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이민석 금융피해자연대 고문변호사는 “검찰이 관련 범죄를 기소할 때 자본시장법 위반 외에 사기 혐의를 적극적으로 적용하고 법원도 양형기준을 높여야 한다”며 “관련 범죄를 저지르면 대통령 사면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피해자의 실질적인 회복에도 신경 써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윤웅걸 LKB평산 대표변호사는 “현재는 정부가 범죄자로부터 벌금이나 추징금을 거두면 국고로 들어가는데, 그 일부를 피해자에게 지원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윤 변호사는 “단타성 투자를 지양하고 충분한 시장 공부를 바탕으로 장기 투자하는 문화를 뿌리내리는 것도 중요하다”고도 했다.
한편, 불공정거래까진 아니더라도 주가 디스카운트를 초래하는 상장사 행태 역시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와 관련해 중앙일보가 최근 인터뷰한 기관투자가 60곳 중 23.3%(14곳)가 관련 규제 강화를 주장했다. “무분별한 쪼개기 상장과 형식에 그치는 기업가치 제고 공시 등에도 페널티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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