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오락가락 정책에 K증시 '불신의 벽'…대만은 22년 한우물 [코…
-
3회 연결
본문

이재명 대통령 취임 후 100일 만에 코스피가 사상 최고점인 3395.54을 찍었다. 지난 12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에서 직원들이 증시를 살피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25.8%. 이재명 대통령 취임 후 100일간 코스피 상승률이다. 코스피는 100일 동안 2698.97(6월 2일 종가)에서 3395.54(9월 12일)로 뛰어오르며 역대 최고 기록을 갈아 치웠다. 새 정부가 ‘코스피 5000’을 국정 과제로 내걸고 부동산에 쏠린 자금을 주식시장으로 옮기겠다고 나서면서 어느 때보다 K증시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기대가 큰 만큼 불안도 큰 걸까. 국내 주식 시장은 정부의 말 한마디에 냉탕과 온탕을 오가며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코스피는 이 대통령 취임 후 한 달 만에 3200을 돌파하며 ‘허니문 랠리’를 이어가다 7월 31일 세제개편안 발표에 상승세가 꺾였다. 한 달 넘게 박스권에 갇혀있던 코스피는 9월 11일 이 대통령이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주식 양도세 요건 확대가) 주식 활성화에 장애가 된다면 굳이 고집할 필요 없다”고 말하자 다시 최고점을 뚫으며 3400 코 앞까지 올랐다.
조홍종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세금 부담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증시를 활성화하겠다던 정부의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큰 것”이라며 “정책의 효과는 시장에 얼마나 정확한 시그널을 주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만큼 어느 때보다 정책 일관성이 중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김영옥 기자
실제 중앙일보가 리서치업체 오픈서베이를 통해 금융상품에 투자하는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두 차례 설문해 보니 세제개편안 발표 전후로 ‘정책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이 커지는 모습이 뚜렷했다. 세제개편안 발표 직전인 7월 29일 설문 당시엔 국내 주식 시장에 투자하지 않는 이유로 정책 불확실성을 꼽은 응답자가 26.9%에 불과했지만, 한 달 반 만인 9월 11일 설문에선 38.6%로 늘었다. 같은 기간 ‘정부의 코스피 5000 공약이 실현 가능하다’는 응답은 32.3%에서 28.5%로 줄었고, 부동산에서 주식으로 투자처를 변경했거나 변경할 계획이 있다는 응답도 34.1%에서 33.4%로 감소했다.
중앙일보가 기관투자가 60곳을 대상으로 설문(주관식)한 결과도 비슷하다. 이들에게 K증시가 계속 상승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을 물었더니 “정부나 유관기관이 동일한 목표의식과 방향성을 갖고 (정책을) 추진하는 것” “정부의 지속적 정책 추진에 대한 신뢰” “단기적·단발적 시행에 대한 유도보다 긴 호흡으로 선도” “주주환원 유도를 위한 일관성 있는 정책 추진” 등의 답이 주를 이뤘다.
주가를 올리는 실질적 주체인 기업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중앙일보와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가 코스피·코스닥 상장사 200곳을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한 결과 기업들은 대부분 자사의 주가 수준이 기업 가치 대비 저평가(77.5%)됐다고 봤다. 주가 저평가 이유로는 기업 실적 대비 시장 신뢰 부족(37.4%), 주주환원정책 부족(23.2%)과 함께 정부 정책 불확실성(13.5%)이 상위에 올랐다.
기업 10곳 중 7곳은 정부의 증시 활성화 정책을 긍정적(67%)으로 봤지만, 증시 활성화를 위해선 세제 혜택 같은 강력한 인센티브(38%), 기업 자율에 맡기는 것이 아닌 합리적 의무 조항 도입(25.5%)과 함께 장기적 관점에서 일관된 정책 추진(14%)이 필요하다고 봤다.

정근영 디자이너
그간 한국은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다양한 증시 활성화 정책을 내놨지만 지속하는 힘은 약했다. ‘정권에 따라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불확실성이 투자 심리를 위축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반면 아시아 주요국가 가운데 대만은 22년, 일본은 12년간 일관성 있게 증시 친화 정책을 유지했다.
대만의 경우 증시 저평가의 해결책으로 ‘기업지배구조 개선’에 집중했다. 2003년 ‘회사지배구조 강화를 위한 정책강령 및 행동방안’을 제정한 뒤 다섯 차례에 걸쳐 단계적으로 기업 지배구조 개선 로드맵을 내놨다. 독립이사(사외이사)제도 도입, 상장기업 정보공개 강화, 상호주 소유 금지, 주주행동주의 촉진 같은 방안이 담겼다.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한국 증시가 구조적인 선순환에 들기 위해서는 국제 금융 시장과 외국인 투자자들의 인정을 받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한국은 지난 20년간 일관성이 떨어지는 정책으로 ‘불신의 벽’이 높다”며 “자본시장과 부처 간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기업 거버넌스 개선의 사령탑 역할을 할 전담기구를 만드는 것도 검토해볼 만 하다”고 말했다.

정근영 디자이너
한편 기업들은 주가 레벨업을 저해하는 양대 장애 요인으로 ‘기업가치보다 단기 테마에 쏠리는 투자 문화’(70%)와 ‘과도하고 경직적인 자본시장법·상법 규제’(56%)를 꼽았다. 또한 ‘세제 혜택 등 강력한 인센티브 제공’(38%), ‘백기사(우호적 투자자) 유치에 대한 간접지원’(21%) 등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수원 대한상의 기업정책팀장은 “기업들이 기업 가치를 제고하려는 공감대와 의지가 있지만, 최근 상법 규제 강화로 혁신 투자 결정이 어려워진 만큼 배임죄 개선이나 경영권 방어 제도 도입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세완 자본시장연구원장은 “정부재정 등 공적기금과 함께 연기금, 발행어음, 종합투자계좌(IMA), 기업성장집합투자기구(BDC) 같은 민간 자금을 투트랙으로 운영해 기업이 보다 쉽게 자금을 조달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며 “결국 신성장 기업, 혁신 기업들이 많이 나와야 한국 증시도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