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납골당 유골 1800구 훼손될 판"…유족들 삭발 투쟁, 무슨 일 [이슈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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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인현씨 “아내 유골 지키기 위해 1인 시위”

전북 전주에 사는 직장인 송인현(47)씨는 지난 7월 6일부터 매주 전북도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사설 납골당에 안치한 아내 유골을 지키기 위해서다. 백혈병을 앓던 송씨 아내는 13년간 투병하다 송씨와 딸(16)을 남겨두고 2022년 2월 12일 먼저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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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옷을 입은 전주 자임추모공원 유족들이 지난 1일 전북도청 앞에서 집회를 열고 ″유골의 안전과 추모권을 보장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사진 자임유가족협의회

자임추모공원 봉안당 소유권 자임→영취산

송씨를 포함해 유족 1000여명이 전북특별자치도와 전주시를 향해 “유골의 안전과 추모권을 보장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송씨 아내 등 1804명의 유골이 안치된 전주 자임추모공원이 소유권 분쟁에 휘말리면서다. 유골 훼손을 우려한 유족은 조문·청소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게 되자 거리 투쟁에 나섰다. 도대체 이들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날벼락 같은 일이 벌어진 건 지난해 6월 10일이다. 지하 1층·지상 3층 규모 건물인 자임추모공원 1층에 있는 봉안당 소유권이 재단법인 자임에서 부동산 관리 전문 유한회사 영취산으로 넘어가면서다. 자임이 최소 35억원 이상 채무를 갚지 않자 영취산 측이 강제 경매를 통해 봉안당을 낙찰받았다.

전북도에 따르면 2011년 3월 재단법인을 설립한 자임은 2020년 6월 유골 6100구(추정)를 수용할 수 있는 봉안당을 설치했다. 납골당 사용료(분양가)는 안치단(유골 봉안함) 위치 등에 따라 400만~1300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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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오전 전북 전주시 효자동 전주 자임추모공원 전경. 김준희 기자

2주간 봉안당 통제…“사기 분양 방지 목적”

송씨는 15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이번 사태가 있기 전까지 일주일에 두 번은 추모관에 들렀다”며 “소유주가 바뀌면 관리비만 더 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시설까지 폐쇄하니 너무 화가 나 다른 유족과 함께 집단 행동을 하게 됐다”고 했다. 유족들은 지난 1일 전북도청 앞에서 집회를 열고 “사랑하는 가족을 모신 납골당이 두 민간업체 간 분쟁으로 인해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했다”며 “전북도와 전주시는 법적 분쟁이 지속된다는 이유로 책임을 외면, 아무 잘못 없는 고인과 유족이 피해를 보고 있다”고 규탄했다. 송씨 등 유족 6명은 “고인들의 존엄을 지켜 달라”며 삭발했다.

자임추모공원 사태는 금전 문제와 법적 다툼으로 얽히고설킨 자임-영취산 간 갈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영취산 측은 지난 5월 업무방해·사기 혐의로 자임 관계자를 전주 완산경찰서에 고소했다. 전주지검은 업무방해 혐의로 자임 측을 약식 기소했고, 납골당 사기 분양 의혹에 대해선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이에 자임 측은 영취산 관계자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해 경찰이 조사 중이다.

이 때문에 현재 봉안당 소유권은 영취산이, 유골함 관리 등 봉안당 운영 권한은 자임이 갖는 이원화된 구조가 됐다. 이 과정에서 영취산 측은 지난 5월 27일부터 2주간 봉안당 출입을 제한했다. 유족은 “봉안당 폐쇄”라고 반발했지만, 영취산 측은 “재산권 행사”라고 맞섰다. 재개방 이후에도 추모 시간은 오전 10~12시, 오후 2~4시로 제한됐다. 유족 측은 “봉안당 폐쇄 기간에 전기 공급이 끊겨 냉난방기와 항온·항습기가 작동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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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자임추모공원 1층 봉안당 입구 방화문에 영취산 측 안내문이 붙어 있다. 김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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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영취산 재단법인 설립 불허…“트집 잡기” 반발 

이에 대해 영취산 측은 “경매 이후에도 자임 측이 현금 할인 등을 조건으로 6억3000만원 규모(봉안함 170~180개) 사기 분양을 계속해 왔다”며 “사기 분양 피해와 유골함 도난, 화재 발생 등을 막기 위해 봉안당에 방화문과 폐쇄회로(CC)TV 카메라 8대를 설치할 때까지 출입을 통제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자임 측은 “소유권이 바뀌기 전 선계약한 건에 대해 유골을 안치했고, 신규 안치는 없다”며 “일부 봉안함의 경우 중개 역할만 했을 뿐 직접 영업을 한 건 아니다”는 취지로 반박했다. 그러면서 “분양된 봉안함에 대해서는 성실히 관리할 것”이라고 했다.

전북도에 따르면 영취산 측은 지난해 11월부터 지난 5월까지 세 차례에 걸쳐 재단법인 설립을 허가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전북도는 불허가 처분을 내렸다. 폭 5m 진입로 확보와 기본 재산 안정성 담보 등 장사시설에 필요한 법적 기준을 갖추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영취산 측은 전북도를 상대로 법인 설립 불허가 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행정심판을 청구했지만, 최근 기각됐다. 행정소송은 진행 중이다.

영취산 관계자는 “애초 봉안당 압류는 채권 회수가 목적이었다”며 “유족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어 도의적 차원에서 봉안당을 운영하려 했지만, 전북도가 사소한 트집을 잡아 재단법인 설립 허가를 거부한 건 공익을 외면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장사 등에 관한 법률(장사법)에 따르면 유골 500구 이상을 안치할 수 있는 사설 봉안시설을 설치·관리하려면 재단법인을 설립해야 한다. 자임추모공원도 여기에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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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자임추모공원 유족들이 지난 1일 전북도청 앞에서 집회를 열고 ″전북도와 전주시는 법적 분쟁이 지속된다는 이유로 책임을 외면, 아무 잘못 없는 고인과 유족이 피해를 보고 있다″고 규탄하며 머리를 깎고 있다. 사진 자임유가족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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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삭발식에 참여한 전주 자임추모공원 한 유족이 눈물을 훔치고 있다. 사진 자임유가족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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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도 “유골 관리와 추모권 최우선 보장”

유족 측은 행정 간 책임 떠넘기기가 이번 사태를 키웠다고 본다. 실제 종교 법인 설립 허가는 전북도 유산관리과, 봉안당 관련 재단법인 설립 허가는 전북도 고령친화정책과, 봉안당 신고 수리와 감독은 전주시 노인복지과가 각각 맡고 있다.

유족 내부에선 “전북도·전주시 중재 아래 제3의 민간업체가 자임추모공원을 인수해야 한다” “추모공원을 폐쇄하고 전주시가 유골을 시립 봉안당으로 옮겨야 한다” 등의 의견이 나온다. 시립 봉안당이 전주시와 완주군 주민만 이용할 수 있다는 규정은 걸림돌이다. 이에 대해 김재홍 전주시 노인시설팀장은 “실내 봉안당은 다 찼고, 실외 봉안원은 여유가 있다”며 “현재까지 시립 봉안당 이전 방안을 논의한 적 없지만, 유족 측이 공식적으로 요청하면 조례 개정을 포함해 검토해 보겠다”고 했다.

사태가 장기화하자 전북도는 자임의 재단법인 설립 허가 취소를 검토 중이다. “법인 설립 허가 당시 자임 측은 불교 관련 교육 사업을 하겠다고 했을 뿐 납골당 얘기는 없었다”는 게 전북도 설명이다. 이성철 도 유산관리과장은 “지난 7월 두 차례 자임 측에 증빙 자료 제출과 함께 목적 사업대로 법인 운영을 정상화할 것을 요구했다”며 “청문 절차를 통해 시정할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줬는데도 계속 답변이 없으면 도가 조사한 결과를 근거로 법인 설립 허가를 취소할 수 있다”고 했다. 성이순 도 고령친화정책과장은 “유골이 안전하게 관리되고 추모권이 최우선으로 보장될 수 있도록 전주시 등 관련 기관과 긴밀히 협의 중”이라며 “유족을 중심에 두고 해결책을 찾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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