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가해자들도 정규직 되길”… '故 오요안나 1주기' 단식하는 어…

본문

17579351427692.jpg

14일 오후 5시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사옥 앞에서 기상캐스터 故 오요안나씨의 어머니 장연미(59)씨가 8일째 단식하며 딸의 분향소를 지키고 있다. 오소영 기자

하늘이 너무 예쁘죠,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파이팅!

전 MBC 기상캐스터 故 오요안나씨가 생전 힘차게 외치던 말들이다.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바지런히 새로운 걸 배우던, 누구보다 밝고 재능 많던 아이. 어머니 장연미(59)씨가 알던 딸의 본모습이다. 지난해 9월 15일 직장 내 괴롭힘을 호소하며 숨진 오씨의 1주기를 맞아 14일 오씨가 생전 자주 방문했던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사옥 근처 카페에서 장씨를 만났다. 지난 8일부터 곡기를 끊은 그는 맹물을 조금씩 삼키며 힘겹게 입을 뗐다.

“제발 자고 싶다” 엄마가 기억하는 딸의 마지막

17579351429627.jpg

故 오요안나씨의 유명 예능 프로그램 ‘유퀴즈온더블럭’ 촬영날 모습. 사진 tvN 방송화면 캡처

2022년 10월. 오씨는 유명 예능 프로그램 ‘유퀴즈온더블럭’ 촬영날에도 땅만 쳐다봤다. 한 선배가 “네가 가서 무슨 말을 할 수 있어?”라며 오씨에게 책가방을 던지고 비난한 뒤였다고 한다. 일일 매니저로 촬영장에 갔던 장씨는 “풀이 죽은 딸의 고개가 자꾸만 떨어졌다”며 “나중에 욕먹을까봐 ‘아시겠지만’을 연신 덧붙이며 자신감 없이 말하는 게 가슴이 아팠다”고 했다.

선배들의 ‘근무 대타’도 자주 섰다. 장씨는 오씨가 늘 입에 “제발 자고 싶다”는 말을 달고 다녔다고 했다. 쉴 명분을 만들기 위해 운전하고 가다가 차에 치이고 싶다는 말도 종종 했다. 사망 3주 전쯤부턴 불쑥 가족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고, 만취해 회사 숙직실에서 “나 너무 억울하다”며 울부짖었다. 장씨는 문밖에서 이를 들으며 조용히 눈물만 삼켰다고 했다. 그는 “차라리 다른 일을 했다면…”이라며 눈물지었다. 고용노동부 또한 2021년 오씨의 입사 후 선배들로부터 반복적인 업무 지도를 받는 과정에서 직장 내 괴롭힘으로 볼 수 있는 행위가 반복돼왔고, 이로 인해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고 지난 5월 판단한 바 있다.

사람이 죽어도 바뀌지 않았다

17579351431565.jpg

지난 5월 19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MBC 기상캐스터였던 고(故) 오요안나씨 특별감독결과 규탄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이날 회견에서 오씨의 어머니 장연미(59)씨는 오씨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고용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 결과에 대해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하지만 오씨는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대상이 아니어서 결론적으로 변한 것은 없었다. 기상캐스터들은 프리랜서 계약을 맺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에 장씨는 8일째 오씨의 근로자성 인정과 기상캐스터 정규직 전환 등을 요구하며 MBC 사옥 앞에서 단식농성 중이다. 장씨는 “1년이 지났는데도 MBC는 프리랜서란 이유로 딸의 죽음을 외면하고 있다”며 “분명 회사로부터 직접 지시를 받고 일했던 직장인인데, 어떻게든 근로자성을 인정받아 딸이 헛되게 죽지 않았단 걸 증명하고 싶다”고 했다. 한편 장씨는 “괴롭힘 문화도 구조와 무관하지 않다”며 “고용이 불안정하다보니 서로 응원하기보다 싸우고 경쟁하는 환경”이라고 말했다.

”가해자들도 정규직 되길”

17579351433739.jpg

지난해 9월 숨진 전 MBC 기상캐스터 故오요안나씨의 방송 모습. 사진 인스타그램 화면 캡처

딸을 떠나보낸 지 1년, 장씨는 같은 죽음이 더 이상 반복되지 않길 바란다. 진상규명보다도 시급하게 원하는 것은 방송계에 있는 모든 ‘무늬만 프리랜서’의 처우 개선이다. 오씨뿐만 아니라 선·후배 기상캐스터들도 데스크로부터 원고를 수정받고 출근 지시를 받는 등 구체적인 지휘감독 하에서 일하지만,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취지다. 장씨는 “모든 캐스터를 한번에 정규직으로 바꿔달란 것도 아니고, 어떤 기준으로든 정규직화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해달란 거다”며 “MBC가 공식적인 협상 테이블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장씨는 괴롭힘 가해자로 지목된 선배 기상캐스터도 ‘우리 ㅇㅇ’라고 불렀다. 그는 “내리 갈굼이 당연한 세상 속에서 살아온 그 애들을 미워하지 않는다”고 했다. 사람이 아니라, 사회를 바꿔야 한단 것이 장씨의 마음이다. “제2, 제3의 오요안나가 나오지 않도록 보호의 울타리를 만들어주길, 우리 딸의 죽음이 그 시작이 되길 바랄 뿐입니다.”

MBC, 프리랜서 기상캐스터 폐지…기상·기후 전문가제 도입

MBC는 15일 저녁 프리랜서 기상캐스터 제도를 폐지하고, 정규직 기상 기후전문가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올해 연말 또는 내년 초 일반 공개 채용을 통해 선발하겠다는 방침이다. 기상·기후·환경 관련 전공자 또는 자격증 소지자, 관련 업계 5년 이상 경력자가 지원할 수 있다. 정규직으로, 기존 프리랜서 기상캐스터도 지원할 수 있다고 MBC는 설명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 또는 자살예방 SNS상담 ‘마들랜’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0
로그인 후 추천을 하실 수 있습니다.
SNS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53,668 건 - 1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