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현장에서] 반쪽짜리 KOVO컵…행정력은 아마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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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막전만 치른 뒤 남자부 일정을 전면 취소했다가 다시 개최로 선회하는 등 혼란을 빚은 한국배구연맹(KOVO) 컵대회가 결국 파행 운영하게 됐다. 국제배구연맹(FIVB) 제재로 뛸 선수가 없는 ‘디펜딩 챔피언’ 현대캐피탈이 컵대회 불참을 선언했다. ‘반쪽’ 컵대회를 치르게 된 KOVO는 15일 “가용선수 부족을 이유로 컵대회 중도 하차를 결정한 현대캐피탈의 남은 경기(15일 삼성화재전, 17일 KB손해보험전)는 부전패 처리하고, 나머지 일정은 변동 없이 진행한다”고 발표했다.

이런 블랙 코미디가 없다. KOVO는 앞서 컵대회 개막일인 지난 13일 오후에 돌연 “FIVB로부터 대회 개최를 승인받지 못했다”며 남자부 일정 취소 가능성을 알렸다. 이어 14일 새벽에 “대회 전체를 취소한다”고 결정했다가, 같은 날 오후 “FIVB의 조건부 승인을 받았다”며 대회 개최로 번복했다. 끝이 아니었다. FIVB는 “세계선수권대회(12~28일) 등록 선수(예비 엔트리 포함)는 컵대회에서 뛸 수 없다”고 결정했다. 이에 현대캐피탈은 “아포짓 스파이커와 리베로가 아예 없다”며 컵대회 불참을 결정했다. 당초 외국 초청팀(태국 나콘랏차시마) 등 8개 팀으로 치러질 예정이던 KOVO컵 남자부는 6개 팀만 남았다.

매년 열린 KOVO컵이 왜 올해 이런 논란에 휩싸였을까. 주요 결정을 손바닥처럼 연거푸 뒤집은 KOVO의 빈곤한 행정력이 표면적 원인이다. 하지만 그 기저에는 지난 10년간 세계선수권에 나가지 못한 한국 남자배구의 초라한 현실이 있다. 세계선수권 종료 후 3주 이상 휴식기를 보낸 뒤 각국 리그를 시작하라는 게 FIVB 방침이다. 한국은 지난 10년간 세계선수권 무대를 밟지 못했다가 올해 모처럼 출전하게 됐다. 관련 규정을 확인 못 한 KOVO는 올 시즌 V리그 남자부 개막전을 다음 달 18일에 열기로 했다. 뒤늦게 ‘3주 이상 휴식’ 규정을 확인한 뒤 개막전 한 경기만 뒤로 미루는 편법을 썼다. 세계선수권 기간에 열리는 KOVO컵은 생각조차 못 했다.

KOVO 실무진은 외국인 선수의 국제이적동의서(ITC) 발급도 간과했다. 일부 구단이 “상금이 걸린 대회인 만큼 ITC를 발급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KOVO는 ITC 발급 없이 대회를 추진했다. 배구계 한 관계자는 “KOVO가 세계선수권와 관련한 여러 규정의 중요성을 관행이라는 이유로 쉽게 봤다. FIVB에서 그립감을 높이려고 KOVO를 강하게 압박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KOVO는 스폰서에 대한 보상은 컵대회를 마친 뒤 논의하겠다는 방침이다. ‘돈 문제’야 ‘돈’으로 해결할 테지만, 세계선수권 관련 규정도 모를 만큼 국제적으로는 ‘갈라파고스’가 된 한국 배구 현실과 수준의 민낯을 드러낸 KOVO의 행정력, 그로 인해 상처받게 된 팬심 문제 등은 어떻게 해결할까. 공교롭게도 올해 V리그는 출범 20년째를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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