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30분 넘게 홀로 바다와 사투 벌였는데…분노 부른 해경 폭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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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인천 서구 인천해양경찰서에서 '해양경찰관 고(故) 이재석 경사 영결식'이 엄수되고 있다. 연합뉴스
인천 영흥도 갯벌에서 고립된 노인을 홀로 구조하다 순직한 인천해양경찰서 영흥파출소 소속 이재석 경사 이재석의 사망 당시 통신 기록과 드론 영상 등이 공개되며 사고 대응이 미흡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또 이 경사의 팀원들이 ‘은폐 의혹’을 제기하며 추가 논란이 일자 해경은 즉각 지휘부를 전면 교체하는 등 조치에 나섰다.
문대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해양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사고 당시 재난안전통신망 녹취록 등에 따르면 이 경사는 11일 오전 2시42분쯤 “요구조자 확인했고, 입수해서 들어가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바로 1분 뒤에는 “혼자 가능하겠냐, 누구라도 깨워서 보내줄까”라는 질문에 “물이 차올라 (인원이) 조금 필요할 것 같긴 하다”고 회신했다. 44분쯤부터는 “물이 한 발목정도(까지) 차오르는데 일단 가서 상봉하고 보고하겠다”고 했고, 팀장은 “어 조심해서 가”라고 회신했다. 이어 57분에는 “물이 제 허리정도 차고 있다”며 “(요구조자)구명조끼로 이동시키도록 하겠다”고 무전한 뒤 연락이 두절됐다.

고(故) 이재석 경장이 11일 인천 영흥도 갯벌에서 고립된 70대 중국인에게 구명조끼를 벗어주고 있는 모습. 사진 인천해양경찰서
이어 약 12분 뒤인 오전 3시9분, 드론순찰대 조종사가 “바다에 떠 있는 경찰관이 위험해 보인다”고 신고했고, 파출소에서는 이보다 5분이 더 지난 3시14분쯤에야 이 경사에게 “교신 가능하면 아무 때나 연락하라”고 했다. 드론에는 이 경사가 오전 3시27분까지 두 손에 장비를 쥔 채 생존수영을 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이후 드론이 배터리 교체를 위해 잠시 복귀했다가 10여 분 뒤 이 경사를 찾으러 갔지만, 그 사이 고인의 모습은 사라져 더 이상 보이지 않았고 결국 사고로 이어졌다.
이 경사가 바다 위에서 30분 넘게 사투를 벌이는 동안 해경의 대응은 직원 2명을 현장에 보낸 게 전부였다. 5분 뒤인 오전 3시32분쯤 현장에 출동한 한 팀원이 “무동력으로 할 게 아니다. 동력 서프보드(모터가 장착된 보드로 수심이 얕은 곳에서 구조 활동을 펼칠 때 활용하는 장비)구조에라도 필요할 것 같다”고 요청했지만, 파출소에서 무전을 받은 다른 팀원은 “이제 이동할 건데 예비키를 못 찾겠다”고도 했다. 해경 측이 다수의 규정을 어긴 정황이 드러난 데 더해 현장 대응이 늦은 부분도 나타난 셈이다.
이에 대해 함께 당직을 섰던 동료들은 15일 오전 8시쯤 인천 동구 한 장례식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휴게시간이 끝나고 복귀했는데, 팀장이 상황에 대해 전혀 알려주지 않았다”며 “드론업체의 전화를 받은 뒤에야 상황을 파악했고, 팀장과 서장은 이를 묵인하라고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실제 영흥파출소 상황보고서와 녹취록을 보면 이 경사가 2시43분에 요청한 현장 지원 내용이 상황보고서에 기록되지 않기도 했다. 이에 대해 해경 관계자는 “이 경사와 팀장이 사용한 통신망은 파출소 직원들만 이용하는 채널이어서 (인천해양서) 상황실에서 빨리 대처하기 어려웠던 측면이 있다”고 해명했다.

고(故) 이재석 경사 팀원들이 15일 오전 이 경사 발인을 앞두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편 해경은 지휘부를 전면 교체하고, 자체로 꾸린 조사단 활동을 중단하는 등 조치에 나선 상태다. 16일 해경은 이광진 인천해양경찰서장(총경)을 대기발령한 뒤 중부해경청으로 전보 조치했고, 이 경사가 근무했던 영흥파출소 소장(경감)과 사고 당시 당직을 섰던 팀장(경위)도 대기발령 조치했다. 중부해경청은 이재명 대통령이 “외부 독립 기관에 맡겨 엄정히 조사하라”고 지시한 데 따라 외부 전문가 6명으로 구성했던 진상조사단 활동도 중단했다. 해경 관계자는 “조사단 운영은 현재 중단한 상태”라며 “민간에 맡겨 조사하라는 대통령 지시에 따라 어떻게 구성할지 등을 논의 중”이라고 했다.
한편 해경 내부에서는 초유의 지휘부 공백 사태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김용진 해양경찰청장은 지난 15일 “순직 해경 사건과 관련해 대통령님의 말씀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사퇴를 표명했다. 서열 2위인 본청 차장은 계엄 사태 여파로 후속 인사를 하지 못해 지난 2월부터 반년 넘게 비어 있는 상태고, 서열 3위인 기획조정관 역시 안성식 전 기획조정관이 계엄 가담 의혹으로 지난 1일 직위 해제된 뒤 공석이다. 해경 관계자는 “추진 중인 정책에 혼선이 생길 가능성이 커 내부가 혼란스러운 건 사실”이라며 “정상적인 운영을 위해 지휘체계 정비가 시급하다”고 했다.

고 이재석 경사의 영결식에서 김용진 해양경찰청장이 추도사에 앞서 경례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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