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與 "사건 배당 관여 좀 하겠다"…그 의혹에 양승태는 구속기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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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배당 절차에 국회가 좀 관여를 하겠다는데, 재판권 침해라는 게 이해가 안 된다.”

지난 15일 김어준(오른쪽 두번째)씨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힘들다 뉴스공장’에 출연한 김기표ㆍ박주민ㆍ김승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왼쪽부터). 사진 유튜브 캡처
내란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하는 더불어민주당의 박주민 의원이 지난 15일 한 말이다. 변호사 출신인 박 의원을 포함해 김승원(판사)·김기표(검사) 의원 등 법조 삼륜 출신이 김어준씨 방송에 총출동해 내란특별재판부를 옹호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법조계에선 제3자의 재판 배당 개입은 무작위 배당 원칙 시스템을 무너뜨린다는 우려가 나온다.
박 의원 주장대로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위에 있는 내란특별법안은 국회·법원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각 3명씩 추천한 9인의 ‘특별재판부후보추천위’가 내란특별재판부 판사를 2배수로 추천하면 대법원장이 그 중 임명하는 구조다. 헌법상 법원에 속하는 사법권(101조)과 법관임명권(104조)을 벗어나 ▶제3자가 ▶진행 중인 특정 사건에 ▶특정 법관을 인위적으로 배당하겠다는 것이다.
논란이 일자 민주당은 16일 후보추천위원 구성에서 국회 추천 몫 삭제를 검토하겠다고 했지만, 제3자가 배당에 개입한다는 구조는 그대로이기 때문에 근본적 차이는 없다. 한 부장판사는 “역사 속에서 사법 독립을 시스템화한 원칙인 무작위 배당을 없애겠다는 발상”이라며 “사법 독립과 권력 분립 원칙에 씻지 못할 상흔을 낼 것”이라고 했다.
사법농단 사건도 배당개입 혐의…양승태, 구속 기소
임의적 사건 배당은 이른바 사법농단 사태 당시 주요 혐의 중 하나였다. 2019년 2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헌정사 처음으로 구속되고,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도 함께 재판에 넘겨질 당시 불거진 게 배당 조작 의혹이었다. 2015년 통합진보당 의원들이 낸 지위확인소송 사건 1심 선고 후 서울고등법원장에게 “특정 재판부, 특정 판사를 주심으로 사건이 배당되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는 의혹이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해 9월 11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첫 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2018년 말 사법농단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에 의해 처음 배당 조작 의혹이 제기되자 파장은 컸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대법원장 중심으로 재판을 인위적으로 왜곡하는 과정이 있었다. 군부독재 시대에는 힘에 의해 할 수 없이 했다지만, 문민화된 나라에서 사법부가 이렇게 엉터리로 운영됐다는 것이 참담하다”(2018년 12월 5일 당 최고위원회의)고 비판했다.
해당 사건은 지난해 1월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검찰은 지난 3일 항소심 결심 공판에서 양 전 대법원장에게 징역 7년을 구형한 상태다. “사법행정 담당 법관들이 특정 판결에 특정한 판단을 재판장에 요청한 것은 심각한 사법행정권남용”이라면서다. 배당 조작 의혹으로 인한 파장이 10년째 아물지 않았다.
배당 개입 대법관…헌정사 첫 대법관 탄핵안 발의
민주당이 헌정사 첫 현직 대법관 탄핵안을 발의했던 사건 역시 배당 개입 때문이었다. 2009년 2월 임명된 신영철 전 대법관이 2008년 서울중앙지방법원장 시절 이명박 정부에서 벌어진 촛불 집회 사건 피고인들을 보수 성향 특정 재판부에 몰아주려 했다는 의혹이 언론 보도로 터지면서 전국 법관이 판사회의를 열어 퇴진을 요구했던 ‘5차 사법파동’ 때다.

신영철 전 대법관. 사진은 2009년 5월 21일 신영철 당시 대법관의 재판 관여 논란과 관련해 서울고법판사회의가 열린 날 신 대법관이 서울 서초 대법원 청사에서 대법원 판결에 참석한 모습. 그 뒤로 그림자가 보인다. 조문규 기자
민주당은 “신 대법관이 사건 배당 적법 절차를 위반했고 법관들의 독립성을 보장한 헌법을 위반했다”(박지원 의원)며 탄핵안을 발의했으나 처리시한 경과로 자동폐기됐다. 이 사건을 연구한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건배당과 법관 승진제도의 문제점과 개선방안」(2009)이란 논문을 통해 “몰아주기식 사건 배당의 숨은 의도가 무엇인지 뻔히 들여다보인다”며 “전부 무작위 컴퓨터 배당을 하는 방법만 취하게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썼다.
유엔 사법독립 원칙 “사건배당은 사법행정 내부의 일”
그렇게 무작위 배당 원칙은 재판 결과를 예측·조작할 가능성을 차단함으로써 재판 공정성과 재판부 독립을 보장하는 법치 시스템으로 역사 속에 자리 잡았다. 권력자가 법관을 ‘쇼핑’할 수 없게 만들고 “사건이 공정하게 처리된다”는 사법 신뢰 제고 효과도 있다. 유엔(UN)은 이미 1985년 “사건배당은 사법행정 내부의 일”(14조)을 ‘사법부 독립에 관한 기본원칙’으로 총회에서 결의했다.
무작위 배당 원칙이라는 관점에서 봤을 때 “가사 및 소년사건을 전담하는 가정법원도 존재한다”(한정애 정책위의장)는 주장 역시 법조계가 지적하는 핵심과 결이 다르다. 법원 관계자는 “가정법원은 특정 사건이 아닌 전문 분야를 위해 법률로 정해진 법원이고, 역시 무작위 배당으로 재판이 진행된다”며 “비교 대상이 아니다”라고 했다.
일부 진보 성향 법학자들이 근거로 드는 독일의 전문법원도 마찬가지다. 독일은 애초 제3자가 특정 사건에 관여할 수 있는 특별법원을 헌법(101조 1항)으로 금지한 나라다. 『통일독일헌법원론』(2001, 계희열 역)은 “법원이 구체적 사건을 고려해서만 구성돼서는 안 된다”며 “사법이 조작 때문에 맞지 않는 영향력 행사에 내맡겨지는 위험은 예방돼야 한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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