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산부인과 의사 기소에 들끓는 의료계…환자단체 “형사고소할 수밖에 없는 현실 바꿔야”

본문

17581007806416.jpg

대학병원 분만 의료사고 신생아 뇌성마비 사건 관련해 환자단체연합회가 17일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남수현 기자

최근 한 대학병원 산부인과 의료진이 분만 의료사고로 기소된 사건을 두고 의사들의 반발이 거센 가운데, 환자단체에서는 “피해자가 형사고소를 택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먼저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의료사고 발생 시 피해 환자 측이 의료진의 설명이나 사과를 듣기 어렵고, 배상을 신속히 받기도 힘든 현실부터 개선돼야 형사고소도 줄어들 것이란 주장이다.

17일 한국환자단체연합회가 서울 영등포구 사무실에서 개최한 기자간담회에서 안기종 연합회 대표는 “의료사고 피해자들이 왜 형사고소를 하는지 의료계뿐 아니라 정부·국회도 원인을 제대로 분석하고 있지 않다”며 “피해자가 형사고소를 택하지 않을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의료사고 형사고소는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계 등에 따르면, 수도권 한 대학병원 산부인과 A교수와 전문의 B씨(사건 당시 전공의)는 최근 업무상 과실치상 혐의로 형사재판에 넘겨졌다. 이들은 2018년 12월 22일, 당시 같은 병원 마취통증의학과 전임의였던 산모 C씨의 분만을 맡았다. 진통 10여시간 만에 자연분만으로 태어난 C씨 아기는 출산 직후부터 주산기 가사(저산소증 상태)로 인한 저산소성 허혈성 뇌병증 소견을 보였다. 이후 재활치료를 받았지만, 회복되지 않아 생후 5년 뒤 신체감정에서 뇌성마비로 평가됐다.

C씨 측은 분만과정에서 의료진의 과실이 있었다며 약 24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는데, 지난 5월 민사 재판부는 약 6억5000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의료진이 태아의 심장박동 등 상태를 충분히 주의 깊게 관찰하지 않았다고 봤다. 형사 사건의 경우 경찰은 의료진에 대해 무혐의 불기소처분 의견을 내렸지만, 검찰은 이를 뒤집고 불구속 기소해 형사재판을 받도록 했다.

17581007808537.jpg

경기도 한 병원 신생아실에서 간호사가 신생아들을 돌보고 있다. 기사와 직접적 연관 없음. 뉴시스

의료진이 기소된 사실이 알려지자, 의사단체들은 일제히 반발과 우려 목소리를 냈다. 대한산부인과학회는 지난 5일 발표한 성명서에서 “불가항력적 분만 관련 사고를 의사 과실로 단정해 기소하는 관행을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전국 20개 대학병원 소속 산과 교수 30명도 지난 15일 실명과 함께 공개한 성명서에서 “분만 시 발생하는 사고는 불가항력적임을 인정하고, 형사 기소 대상으로 삼지 말라”고 촉구했다.

환자단체는 의료진에 대한 형사책임을 면책하는 게 능사가 아니라, 피해자에 대한 “충분한 설명도, 애도 표시도 없는” 현실부터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날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안상호 한국선천성심장병환우회 대표는 “이번 의료사고 피해 신생아의 보호자는 의사이자, 피고와 같은 의료기관에서 일하던 동료”라며 “그런데 왜 형사 소송까지 진행해야만 했을지 모두가 고민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판결문을 보면, (병원과 의료진의) 사과나 피해구제를 위한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환자 부모가 느꼈을 고통은 상상하기 어렵다”며 “(의료계는) 형사처벌이 필수과를 기피하게 만든다는 주장만 하지 말고, 의료사고 발생 시 충분히 설명하고 환자의 피해 회복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환자단체는 피해자의 울분을 해소하기 위해 의료사고 설명의무를 법제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향후 재판 과정에서 불리한 증거로 쓰일 것을 우려해 의료진이 사과·유감 표현을 하지 못하는 현실을 고려해, 사고 관련 유감 표현이 증거로 채택되지 않도록 하는 법도 필요하다고 촉구한다. 이런 내용의 환자안전법 개정안 2건이 지난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바 있지만,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안기종 대표는 “영국 등 해외의 경우 의료사고 설명의무나 사과 표시의 증거능력 배제가 법적으로 도입돼 있다. 우리도 입법이 꼭 필요하다”며 “이와 더불어 분만 의료사고에 대해서는 경미한 과실인 경우 손해배상액의 일부를 국가가 지원하는 방안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0
로그인 후 추천을 하실 수 있습니다.
SNS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54,166 건 - 1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