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감정은 이성과 반대? 부정적 감정도 접수해야 할 중요한 정보[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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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과학
이선 크로스 지음
왕수민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어느 날 ‘나’는 사막을 걷다가 웬 벌거벗은 비참한 몰골의 사람을 본다. 그는 주저앉아 뭔가를 손에 들고 먹고 있다. 그건 자기의 심장이었다. “그거 맛이 어때요?” 내가 묻는다. “너무 너무 쓴 맛이야.” 그가 답한다. “하지만 난 이게 좋아. 쓰니까. 그리고 내 심장이니까.” 미국 작가 스티븐 크레인의 ‘사막에서’(1895)라는 짧은 시다.

사람이 부정적 감정에 탐닉하면, 즉 자기 심장을 뜯어먹기 시작하면 무슨 일이 생길까. 너무나 고통스러운데, 멈출 수가 없게 된다. 그건 나만이 이해할 수 있는 주제(내 심장)이고 고통이기 때문이다.

저자 이선 크로스는 미국 미시간 대학교의 심리학자이자 뇌과학자다. 뉴욕 출신으로 펜실베이니아 대학교를 졸업하고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가 심리학을 전공한 것은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할머니의 정신세계를 이해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할머니 이야기는 책 서두에 나온다. 할머니는 손자를 끔찍이 귀여워했으나, 2차 대전과 관련된 질문에는 입을 열지 않았다.

저자의 첫 번째 책 『채터, 당신 안의 훼방꾼』(김영사, 2021)은 머릿속에서 들리는 부정적 음성과 혼잣말에 관한 책이었다. 두 번째 저서인 이 책 『감정의 과학』(2025)은 ‘부정적 감정에서 벗어나는 법’을 다룬다. 사실 첫 책의 주제도 그랬다. 단 이번 책에서는 좀 더 구체적인 방법과 기술을 안내한다. 원제는 ‘Shift(교체)’. 한국어로 번역하면 ‘다이얼을 돌려라’ 정도가 될 것이다. 학술적 근거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나 책 자체는 읽기 쉽게 쓰여 있다.

왜 교체인가? 부정적 감정을 제거의 대상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기존의 심리 치료는 불안, 공포, 질투 같은 감정을 결국 제거하려고 애쓴다. 저자는 이런 태도가 감정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거로 생각한다. 우리는 흔히 이성과 감정을 대립시키는데, 저자는 반대로 인지가 감정의 핵심 요소라고 말한다. 감정은 이성의 반대가 아니다. 감정이 인지이고 정보다. 인간이 진화 과정에서 획득한 지혜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감정이 가진 정보는 중요하므로 함부로 버릴 수 없다는 게 요점이다.

‘불안’을 저자는 ‘우아한 해결책’이라고 부른다. 위험을 감지한 뒤 찾아오는 준비 태세 신호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불현듯 찾아오고 사람들을 죄책감에 젖게 만드는 밑도 끝도 없는 ‘끔찍한 상상’도 마찬가지다. 그건 그런 일이 생겼으면 하는 사악한 마음이나 무의식적 욕망의 표현이 아니다. 단지 모든 가능한 상황 중 가장 끔찍한 위험을 늘 상기하고 대비시키도록 우리 뇌가 프로그래밍이 되어 있는 탓이다.

감정이 신호를 전달하려고 문을 계속 두드린다면, 조용히 돌려보내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신호를 무시하지 않고 접수하는 것이다. 정보를 주러 온 감정과 싸우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어두운 감정에 갇히지도 말아야 한다. 이를 해내는 기술을 저자는 감정 전환(shift)이라고 부른다.

예컨대 수영 선수 마이클 펠프스는 시합 전 비장한 표정으로 힙합을 듣는다. 핵심은 긴장을 경기에 도움이 되는 최적화된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이다. 어떤 박사과정 학생은 연구의 스트레스를 빵 만들기로 관리한다. 이것이 특히 효과적인 이유는 빵을 만들 때 여러 감각 기관의 집중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예들이 수십 개가 나오고, 책 끝에는 이것이 하나의 시스템(저자 표현으로는 ‘도구 상자’)으로 종합되는 과정을 볼 수 있다. 무리한 느낌이 드는 전환은 거의 없다. 그 이유는 감정을 정보로 정의한 순간 이미 많은 것이 전환되기 때문일 것이다.

할머니 이야기로 시작했던 이 책은 다시 할머니 이야기로 끝난다. 저자는 끔찍한 경험 뒤에도 92세까지 산 할머니가 대체 어떤 도구 상자를 갖고 있었을지 자문한다. 그건 자신의 도구 상자와 비슷했을까. 이쯤에서 독자는 이 책에 실은 두 개의 이야기가 있었다는 걸 깨닫는다. 하나는 오늘날의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감정 전환법. 또 하나는 할머니가 가지고 있었을 영원히 수수께끼가 된 감정 전환법. 지금으로선 후자를 알아낼 길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은, 그걸 우리가 앞으로도 알 일이 없다면 얼마나 다행이겠냐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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