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석기 시대 전부터 인류와 함께했다, 나무와 목재의 문명사[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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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시대
롤랜드 에노스 지음
김수진 옮김
더숲

덴마크 고고학자 크리스티안 톰센이 인류가 주로 사용했던 재료인 돌, 청동, 철에 따라 ‘인간의 시대’를 분류하는 개념을 1831년 도입한 이래 역사학자들은 이러한 방식을 답습해 왔다. 인류와 가장 가까운 재료인 목재는 역사에 발을 들여놓을 틈이 없었다. 석기, 청동기, 철기 시대 어디에도 ‘목기 시대’는 들어가지 못했다.

영국 헐대학 생물과학과 객원 교수인 롤랜드 에노스가 지은 『나무의 시대』는 인류 문명을 ‘목재’라는 관점에서 바라본 창의적인 역작이다. 식물과 동물 공학을 연구하는 생체역학자이면서 식물학, 통계학 분야에서도 저명한 학자인 저자는 목재와 인류의 관계를 방대한 다큐멘터리 작품처럼 흥미진진하게 풀어냈다.

그에 따르면 인류의 먼 조상은 숲의 지붕과 같은 나무 위 수관층에서 오랫동안 살았다. 목재를 주재료로 해서 나무 위에다 보금자리를 지은 건축가였다. 훗날 인류가 나무에서 내려와 땅 위에서 두 발을 딛고 살아갈 때 필요한 신체적, 정신적 특성들을 이미 수관층에서 발달시킨 셈이다.

기후변화 등의 요인으로 숲과 나무가 아니라 탁 트인 사바나 초원에서 직립보행하며 살던 인류는 목재로 불을 피워 포식자들의 접근을 막고 요리를 해 먹었다. 뿐만 아니라 목재로 다양한 도구를 만들어 수렵채집이나 움집 짓기 등에 활용했다. 인류가 목공을 했다는 최초의 증거는 160만 년 전의 탄자니아 페닌즈 유적지에서 발견된 손도끼와 박편의 날 주변에서 검출된 아카시아나무의 옥살산칼슘 결정이다. 목재로 만든 활 같은 무기의 발달은 인류를 최상위 포식자로 만들었다.

목재가 토대가 된 인류 문명의 결실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세계 최대 규모의 목조궁궐인 베이징 자금성은 600년 이상 끄떡없이 버텨 왔다. 서기 600년께 세워진 일본 호류지 5층탑은 목조 중앙기둥 덕분에 숱한 지진을 견뎌 냈다. 악기, 종이, 선박, 건축물 등 나무가 들어간 문명의 걸작들은 지금도 인류 문명의 버팀목이 되고 있다. 나무와 목재에서 인류 문명의 새 지평을 찾아낸 이 책은 가히 ‘목재역사박물관’이라 부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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