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경주에 APEC만? ‘신라판 케데헌’ 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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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더 쇼! 신라’는 시간여행을 통해 현대 스트리트댄스와 전통 춤의 ‘힙한 만남’을 선사한다. [사진 나인스토리]

지금 작지만 뜨거운 K뮤지컬을 만나고 싶다면 경주로 가시길. 10월 12일까지 경주엑스포대공원 문화센터 문무홀에서 펼쳐지는 80분짜리 공연 ‘더 쇼! 신라’는 도전적이고 옹골차다. 브로드웨이에서 온 흥행작도 아니고, 아이돌 스타가 등장하지도 않지만 우리 가락과 어우러진 K팝 댄스가 568석 객석을 달군다. 1400년의 ‘시간여행’을 통한 역사와 현재의 만남이라 더욱 신선하다.

‘더 쇼! 신라’는 댄스팀 ‘홀스’의 리더 처영이 세계 경연을 앞두고 팀원들과 불화를 겪던 중 거울 속에서 나온 법사 ‘밀본’을 따라 신라시대(7세기)로 ‘타임 슬립’ 하면서 하나됨의 가치를 깨우친다는 내용. 경북문화관광공사가 주최한 2023 신라문화기반 창작뮤지컬 지원사업으로 초연돼 매년 N차 관람을 부르는 ‘지역 특성화 뮤지컬’로 자리잡았다. 접근성 부족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두 시즌 연속 예매사이트 놀(NOL) 평점 10.0(만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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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더 쇼! 신라’는 시간여행을 통해 현대 스트리트댄스와 전통 춤의 ‘힙한 만남’을 선사한다. [사진 나인스토리]

“지원사업 조건이 극 속에 ‘신라’를 포함하란 것이었는데, 제약이라기보다 상상력을 유발시켰다. 시간여행을 통해 젊은이들이 화랑도나 장인 정신을 엿본다면 어떨까. 그런 구상을 작가(배시현)에게 말했고, 실제 역사 인물(김춘추·솔거 등)에 판타지를 결합시켜 작품이 나왔다.”

지난달 26일 개막 공연에 앞서 만난 예술감독 겸 공동프로듀서 남경주의 설명이다. 그는 ‘절친 후배’ 오만석과 함께 극중 ‘밀본’을 연기하며 자식뻘 신인배우들과 함께 발을 구른다. 저절로 신인 시절인 1980년대 중반 서울 롯데월드예술극장에서 공연했던 창작뮤지컬 ‘거울 속으로’가 떠오른다고 했다. ‘거울 속으로’는 신비한 거울을 통해 브로드웨이로 시공간 점프를 하는 한국 뮤지컬 꿈나무들 이야기. 이를 통해 스타덤에 올랐던 그가 약 40년 만에 신예들을 이끄는 가이드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 색깔이 강하게 들어간 뮤지컬을 만들고 싶었던” 바람도 이렇게 이뤘다.

“애초 서울시립가무단(현 서울시뮤지컬단) 단원으로 출발했기에 전통 창작 뮤지컬에 애정이 많다. 나이를 먹어선지 ‘세종, 1446’에서 태종 역도 그랬고, 이번에도 역사 공부가 즐겁다.(웃음)”

“전통 소재 창작극이라 더 참신했다”는 건 오만석도 매한가지다. “라이선스 뮤지컬을 레플리카(원작 그대로 공연) 방식으로 하면 배우들한테 상대적으로 자유가 없다. 그리고 학교(한예종)에서 한국무용도 함께 배운 터라 현대 춤보다 우리 춤사위가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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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안내자 ‘밀본’ 역은 베테랑 배우 오만석(왼쪽)과 남경주가 맡았다. [사진 나인스토리]

제목에 ‘쇼’가 들어간 데서 보이듯, 춤과 노래로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두드러진다. 특히 처영(세용·옥진욱 더블캐스팅)의 시간여행을 통해 군무가 180도 달라지는 게 관전포인트. 막이 오르자마자 전개되는 스트리트댄스가 “성수동에서 볼 수 있는 크루 댄스 느낌”(연출 겸 안무 채현원)이라면 마지막에 부채춤을 접목시킨 버전은 흡사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의 사자보이즈(극중 악령 보이그룹)가 실사화한 것 같다.

다만 채현원(42) 연출은 “케데헌은 아직 못 봤고, 3년 전 안무 구상 때부터 전통 춤을 힙하게 섞는 데 주안점을 뒀다”고 했다. 스트리트 댄서 출신인 그는 앞서 ‘인더 하이츠’ ‘그레이트 코멧’ 등에서 역동적 안무로 2022년 한국뮤지컬어워즈 안무상을 수상했다. 비트가 강한 전자기타에 태평소·해금 등이 어우러지는 음악은 지난해 ‘홍련’을 통해 차세대 음악감독으로 떠오른 박신애(38) 작곡가의 솜씨다.

석굴암 전실(前室)을 연상시키는 시간여행 공간, 금관모 모양의 구름다리 등 경주 유물을 활용한 무대세트도 공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다만 제작비 한계 때문에 뮤지컬에 필수적인 사이드조명이 빠지는 등 몰입 환경엔 아쉬움이 작지 않다. 이를 이겨내는 게 젊은 배우들의 에너지. 특히 커튼콜 ‘얼쑤’ 신에선 절로 흥겨운 추임새를 하게 된다.

“올해 경주가 APEC 정상회의를 치르는 등 세계인의 관심이 높아지는데, 지역의 역사와 특성을 살린 뮤지컬이 관광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길 바랍니다.”(남경주)

“얼마 전 강원도 정선에서 ‘아리 아라리’라는 뮤지컬을 봤는데, 이런 시도가 점점 늘어나면 ‘K뮤지컬 트래블 로드’ 같은 것도 가능해지지 않을까요.”(오만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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