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한번만 실패해도 빚더미…재출발은 꿈, 한국 스타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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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판 오겜 K스타트업, 창업자 재기 불능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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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란(4월), 정육각(7월), 왓챠(8월)…. 천신만고 끝에 데스밸리(death valley·죽음의 계곡)를 넘고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 기업)을 꿈꿨던 중량급 스타트업들이 올해 줄줄이 기업회생 절차에 들어갔다. 스타트업 폐업 건수도 2022년 101건(더브이씨)에서 지난해 191건으로 크게 늘었다. 폐업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그 과정에서 창업자들이 ‘재기 불능’ 상태로 내몰린다는 게 문제다. 다운 라운드(기업 가치를 낮추는 일) 투자 시도조차 기존 투자자의 풋옵션(주식매수청구권) 위협에 막혀 기회를 잃고, 개인 신용 대출을 끌어 쓴 창업자의 집이 경매로 넘어가는 일도 발생한다. 한국 창업 생태계를 두고 “마치 ‘오징어 게임’ 세트장과 같다”는 자조가 나오는 이유. 스타트업을 키우는 것만큼이나, 잘 망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게 한국 창업 생태계의 과제다. 이미 망해본 스타트업의 경험담과, 잘 망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는 비결을 모았다.
‘WeCrashed’, 우린 이렇게 무너졌다.
스타트업이라는 용어는 극히 낮은 성공 확률을 뚫고 고속 성장을 노리는 기업을 뜻한다. 태생적으로 성공한 스타트업은 일부고, 실패한 스타트업이 훨씬 많을 수밖에 없다. 스타트업이 잘 태어나고 잘 크는 것만큼이나, 잘 망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하는 이유다. 실패한 창업자의 다음 도전은 성공 확률이 올라간다는 건 통계로도 증명된 사실. 허나 한국에선 스타트업 폐업이 기업의 몰락을 넘어 창업자의 몰락으로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서비스는 살렸지만 본인은 개인 파산 위기에 몰린 이하영 도그메이트 대표가 대표적인 경우다. 대면 팻시터(반려동물 돌봄) 서비스 도그메이트는 2020년 1월 시리즈A 후속 투자를 받았다.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가 확산하기 시작한 때였다. 투자자들은 코로나19 시기에도 공격적으로 시장 점유율을 높일 것을 주문했다. 하지만 코로나19는 장기화했고, 회사는 삐걱대기 시작했다. 궁여지책으로 이 대표는 2022년 개인 신용 대출을 일으켜 가수금(대표가 회사 자금 부족을 메우기 위해 자기 돈을 대여해주는 형태)을 넣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금리가 올랐다. 대출 당시 연 2%였던 금리는 연 6%를 넘겼다. 감당키 어려운 수준의 금융 비용이 발생했다. 이 대표는 지난해 9월 법원에 기업 회생을 신청했고, 회사는 지난 6월 다른 회사로 넘어가 서비스는 운영 중이다. 하지만 이 대표는 개인 파산 신청을 앞두고 있다.
회사를 질서 있게 정리했다고 해도, 현행 제도는 그런 노력을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는다. 게임 제작사 비컨스튜디오의 경우 2020년 중국 게임 유통사로부터 15개월 치 운영비에 해당하는 120만 달러를 지급받지 못하자 폐업 상황을 맞게 됐다. 이 회사의 김영웅 대표는 투자자들과 꾸준히 소통했던 덕분에 폐업에 대한 투자자 동의를 일주일 만에 받아낼 수 있었다. 퇴직금 정산 등 잔여 업무를 잘 처리해 임직원들과도 갈등 없이 지나갔다. 얼마 뒤 다른 회사를 창업했는데, 앞선 창업 때 발생한 기술보증기금 사고 이력에 발목 잡혀 새 회사의 벤처 인증을 거절당하는 일을 겪었다. 기존 보증이 부도·연체로 끝나게 되면 이는 ‘사고 기록’으로 분류되는데, 이후 재창업 과정에서 벤처 인증이나 대출 심사에서 큰 걸림돌이 된다. 김 대표는 “지금도 기보 기반 대출은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투자자와 창업자 간 이견으로 곤경에 처하는 경우도 생긴다. 인테리어 플랫폼 어반베이스의 하진우 대표는 2022년 말 회사 자금 사정이 나빠지자 회사 매각을 타진했다. 그때 투자자 중 한 곳인 신한캐피탈이 하 대표에게 풋옵션(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했다. 투자원금 5억원에 연 복리 15%로 계산된 이자 7억원까지 총 12억원을 상환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회사와 주주 간 갈등이 생겼다는 소식 탓에 인수 의향을 보였던 회사들이 발을 빼면서 매각 딜이 무산됐다. 하 대표는 개인 집이 가압류됐다. 양측은 법정 다툼을 벌였는데, 1심은 신한캐피탈이 승소했다. 폐업한 어반베이스의 특허 및 상표권 등 지식재산(IP)은 최근 다른 스타트업에 인수됐다. 앞선 매각 논의 때 가격의 100분의 1을 받았다고 한다.
◆한 개의 유니콘, 사채에 쫓기는 창업자 100명=한국 창업 생태계가 사업에 실패한 창업자를 절벽으로 내모는 데는 구조적인 문제와 그로 인한 제도적인 한계가 동시에 작용한다. 구조적인 문제는 정부 자금 중심의 모태펀드를 바탕으로 형성된 생태계다. 스타트업 사건을 주로 다뤄온 법무법인 미션 김성훈 대표변호사는 “벤처캐피털(VC)의 고유한 역할은 모험 자본으로 고위험 창업자에 투자해 높은 수익을 얻는 것인데, 국내 VC는 동시에 국가 자금을 문제없이 운용해야 한다는 ‘하방 리스크 관리’ 역할을 요구받는다”며 “고위험 창업에 투자해야 할 VC가 공적자금 관리라는 안전지향 목표까지 신경 쓰다 보니, 한 개의 유니콘과 사채에 시달리는 창업자 100명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런 구조에서 투자가 실패한다면, 곧장 국고 관리 부실 지적을 직면하게 된다. 그렇다 보니 투자자들은 실패를 피하기 위해 투자 계약서에 풋옵션 조항을 삽입한다. 김 변호사는 “다운 라운드나 청산형 M&A(빚 정리, 투자금 회수를 목적으로 하는 인수·합병), 사업 중단 등을 결정할 땐 투자자가 풋옵션을 무기 삼아 ‘우리가 모태펀드 지원서를 또 써야 하는데 당신 회사 때문에 숫자가 예쁘게 안 나오면 어떡하냐’라며 반대하거나 ‘사채라도 써서 버텨라. 문 닫으면 횡령·배임으로 고소하겠다’고 말하는 경우도 봤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금리가 치솟는 등 구조적 변화가 생길 때 VC들이 투자사의 다운 라운드 자본 조달 등을 유연하게 허용해도 모태펀드가 이를 문제 삼지 않겠다는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거나, 주무부처 내에 ‘스타트업 마무리 담당관’ 같은 직책을 만들어 생태계 순환 과정을 점검하고 해결할 필요도 있다”며 “누군가 리더십을 가지고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옥 기자
◆실패는 학습의 증거=‘스타트업의 나라’ 미국엔 “한 번의 실패는 영원한 실패가 아니다”라는 문화가 짙게 깔려있다. 실패 이력이 낙인보다는 학습 증거로 쓰이기까지 한다. 제도가 창업자 개인을 보호해주기 때문이다. 유한 책임 원칙이 작동해 회사와 창업자를 분리한다. 한국처럼 창업자에게 과도하게 불리한 풋옵션이 들어가는 경우도 거의 없다. 여기에 연방 파산법은 창업자에게 ‘리셋 버튼’을 제공한다. 남은 자산을 정리하고 깔끔히 접도록 돕고(챕터7), 법원 감독 아래 구조조정하며 다시 뛰어볼 기회를 주는(챕터11) 등의 방식이다. 파산 신청과 동시에 발동되는 ‘자동 정지’ 조항 덕분에 채권자들의 독촉도 잠시 멈춰선다.
VC업계에선 ‘투자 계약서 문제’를 우선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국의 투자계약은 투자자와 창업자 간 개별 동의권을 인정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이 찬성해도 한 명만 반대하면 다운 라운드나 청산형 M&A 같은 출구 전략이 무산된다. 결국 회사는 합리적인 길을 찾지 못한 채 시간과 자금을 소모하다 더 큰 위기를 맞는다. 현행 구조를 해결하기 위해 지분 과반이 동의하면 효력이 발생하는 ‘집합 동의권 구조’로 전환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미국이나 싱가포르에서는 집합 동의권 구조가 일반적이다.
창업자에게 안전한 폐업을 안내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미 존재하는 재도전 프로그램이 그런 서비스를 제공한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희망리턴패키지’, 신용보증기금의 ‘체인지업 컨설팅’, 창업진흥원의 ‘재도전성공패키지’ 등을 활용하면 폐업 또는 재창업 때 필요로 하는 컨설팅이나 자금 지원 등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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