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청운동, 큰집들이 즐비한 골목길 한 언덕길을 걸어 올라가면 요즘 보기 드문 은색 철문이 나온다. 재계의 거목으로 불리는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가 38년간 살았던 자택이다.

집안은 품격이 있다. 소박하면서도 기품을 갖췄다. 그러면서도 고즈넉하다. 거실은 2001년 정주영 창업주가 별세했을 때 빈소로 사용되기도 했다. 20주기 제사가 치러진 2021년에는 언론에 자택 내부가 공개됐다.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지만 ‘鄭周泳(정주영)’이라는 문패도, 그가 쓰던 가구나 집기도 대부분 그대로 보존돼 있다.

2층 양옥의 1층 왼쪽 홀로 들어가면 정 창업주와 그의 부인인 고 변중석 여사의 초상이 담긴 액자가 나란히 걸려 있다. 액자 아래에는 낡은 나무 피아노가 자리하고 있으며 오른쪽으로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 『한중록』 영문판, 『파우스트』 같은 고서의 책등이 한자·영어·일어가 섞인 모습으로 빼곡히 고개를 내밀고 있다.

홀 벽면은 여러 유명 인사의 친필 휘호들이 둘러싸고 있다.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쓴 글귀가 가장 먼저 눈길을 끈다. 소파 사이에는 상당히 낡은 LG 에어컨도 놓여 있다.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20주기 추모제사가 열린 2021년 3월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운동 정 명예회장 옛 자택이 공개됐다. 뉴스1

정 창업주와 변 여사의 제사가 치러질 때 범(凡)현대가 자손들은 어김없이 이곳에 집결한다. 그동안 크고 작은 다툼이 벌어지고, 재계 1위였던 현대그룹은 10여 개로 나뉘었지만 심각한 건강 문제가 없는 이상 집안의 주요 행사 때 발걸음을 하는 것이 현대가의 전통이다.

마당에는 산을 그대로 깎아내린 듯한 바위가 있는데 ‘볕이 잘 들고 신선이 살 만큼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라는 뜻의 ‘양산동천’(陽山洞天)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정 창업주의 후손들은 이 바위에 좋은 기운이 깃들었다고 해 혼사 등 경사가 있을 때 이곳을 찾아 가족사진을 남기기도 한다.

사진 촬영 때 신부는 재벌가 사이에서 가장 잘나가는 브랜드의 한복을 입고, 최고가 출장비를 자랑하는 유명 부티크 원장의 손길을 받으면서도 머리에는 3세대 동안 이어져 온 왕비녀를 꽂는다. 그만큼 전통을 중요하게 생각해서다.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20주기 추모제사가 열린 2021년 3월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운동 정 명예회장 옛 자택이 공개됐다. 자택 거실에는 정주영 창업주와 부인 고 변중석 여사의 사진이 함께 걸려 있다. 연합뉴스

더중앙플러스는 기업과 기업·관료·법조 사이의 ‘숨은 연결고리’와 권력 관계, 네트워크를 살펴보고 향후 승계 구도까지 관측하는 차원에서 지난 6월 초부터 재벌 혼맥과 결혼 이야기를 ‘2025 新 재벌 혼맥’ 시리즈로 게재해 왔다.

창업주들의 자녀인 재계 2세들이 결혼 적령기에 들어선 1970~1980년대에는 정·관계와의 결합이 유독 많았다. 규모가 비슷한 재벌 집안과 백년가약을 맺는 경향은 현재까지도 꾸준히 유지된다. 그 사이에 평범한 ‘비재벌’ 가정 출신과 결혼하는 사례는 점점 늘었다.

주요 그룹 경영에 참여하는 20~40대 차세대 리더들의 가계를 분석해 장자(長子)와 계승을 중요시하는 재계에서도 최근에는 자녀 셋 이상 후손을 보는 일이 극히 드물다는 결과를 내기도 했다. 시리즈를 마무리하며 재벌 혼맥에 대한 주요 오해와 진실(에 가까운 사실), 남은 궁금증을 정리해 봤다.

“큰댁.” 20년 넘게 국내 정·재계 집안을 상대로 웨딩 컨설팅을 해온 조혜은 헬렌조웨딩플랜 대표는 ‘찐’ 재벌가 고객을 이렇게 불렀다.

“사업가 집안에서 결혼에 수억원의 비용을 쓰기도 하지만 정말 상류층은 ‘최고로 비싸게 해 달라’는 요구를 하지 않아요. 최대한 조용히 행사를 치르지요. 집안에서 물려주는 관습이 발달해 있고요. 오히려 자수성가한 기업 가문이나 영리치(젊은 신흥 부호) 집안은 소비문화가 더 발달해 있어요.”

그렇지만 명품은 명품이다. 가령 대추 한 알도 범상치 않다는 것. 대한민국 1%, 그들의 결혼은 무엇이 어떻게 다를까.

※ 팝페라 가수 임형주도 놀란 재벌가 결혼식 문화, 전문은 아래 링크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url을 복사해 주소창에 붙여넣으세요.

현대家 후손들 경사때 찾는다…정주영 자택의 ‘신비한 바위’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67355

〈전문에는 이런 내용이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