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뇌종양 판정에도 "세상은 운구기일"…코미디 도전한 그녀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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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이 미 투 더 문(Fly Me To The Moon, 나를 달로 보내줘요)~
요즘 문화계에서 잔잔한 화제인 팟캐스트 ‘암과 책의 오디세이’의 인트로(도입부) 음악이다. 프랭크 시나트라가 부른 유명한 음원 대신, 운영자가 매회 직접 ‘라이브’로 부른다. 지난 29일로 서비스 시작 만 3년을 맞은 온라인 독서모임 플랫폼 ‘그믐’의 김새섬(47) 대표다.
그는 지난 4월 교모세포종으로 쓰러져 수술을 받았다. “각종 치료방법을 모두 동원하더라도 평균 생존기간이 12~14개월”(서울대 암연구소) 밖에 안 되는 악성 뇌종양이다. 현재 재발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매달 MRI를 찍으며 항암 치료 중이다.

김새섬 대표가 남편 장강명 작가와 함께 운영하고 있는 팟캐스트 '암과 책의 오디세이'. 사진은 발병 전 김 대표의 모습이다. [사진 암과 책의 오디세이]
하지만 팟캐스트는 어둡거나 무겁지 않다. 오히려 밝고 가벼운 쪽이다. 자신의 일상, 책 이야기 등을 ‘자학성 개그’까지 섞어 가며 명랑하게 전한다. 퇴원 다음 달부터 시작해 벌써 110여회, 매일 웃고, 떠들고, 노래하며 살고 있다. 그의 ‘달나라’는 어디고, ‘오디세이’ 종착지는 어디일까? 전화로 심경을 물어봤다.
김 대표는 ‘공대녀’ 출신이다. 대학에서 환경공학을 공부했다. 하지만 전공대로 살진 않았다. 금융회사에 다니다 불쑥 호주로 떠났다. 온갖 고생을 하며 대학원에서 회계학을 전공했고 영주권까지 땄다. 지난해 영화화됐던 장강명 작가의 소설 『한국이 싫어서』 주인공의 실제 모델이 김 대표다. 소설과 다른 점이 있다면, 호주에서 돌아와 남자친구 장강명 작가와 결혼했고, 결국 한국에 남았다는 것.
이후 15년간 다국적 기업 재무팀에서 일하다 “(젊었을 때) 목표였던 돈을 벌었으니, 이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어서” 그믐을 창업했다. 책 읽는 사람보다 유튜브ㆍ숏츠 보는 사람이 훨씬 많은 시대, ‘함께 책 읽는 즐거움’을 알리려 동분서주했다.

온라인 독서모임 플랫폼 '그믐'. 음력으로 달의 마지막인 29일 도는 30일을 뜻하는 그믐이란 이름처럼, 최대 29일까지만 모임이 열린다. 여느 디지털 서비스와 달리 이모티콘과 '좋아요' 기능이 없고, 조회수도 표시하지 않는 것도 특징이다. [사진 그믐 화면 캡쳐]
하지만 그믐의 이름이 조금씩 알려지고 여기저기서 강연ㆍ기고 요청, 협업 제안이 들어올 무렵, 쓰러졌다. 갑자기, 그것도 공교로운 시기에 닥친 불운이었지만 김 대표는 ‘왜 나만’ ‘하필 지금’하며 억울해하지 않았다. “세상은 원래 운구기일(運九技一, 운이 구할이고 노력은 일할)”이라며 받아들였다.
“요즘은 다들 ‘나’에게 집중해요. 나는 특별한 사람이다, 그러니 사랑받아 마땅하다고. 나르시시즘이죠. 제 철학은 ‘나는 스페셜하지 않고 유니크하다’예요. 세상 사람들과 외모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경험도 다르고. 거기에서 의미를 찾아야지, 나는 특별하니까 당연히 어때야 한다? 그런 게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강연 방송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에 출연한 김새섬 대표. 악성 뇌종양인 교모세포종 수술 이후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남은 시간을 전보다 더 충실하게' 살아가고 있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항암치료 중인 김 대표는 머리에 두건을 쓰고 출연했다. [사진 세바시]
얼핏 허무주의 같기도 하지만 사실은 정반대다. 그는 “젊어서 요절하거나 교통사고로 자신이 어떤 상황인지도 모른 채 죽는 건 비극”이지만, 40대 후반인 자신에겐 “(이미) 굉장히 많은 기회가 주어졌다”며 오히려 “아주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체념하거나 자포자기하지도 않았다. ‘운구기일’이라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1할밖에 안 되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할 수 있는 일을 한다”고 했다. 세끼 꼬박꼬박 챙겨 먹고, 병원 치료 열심히 받고, 팟캐스트하고.
최근에는 강연 무대(‘세상을 바꾸시는 시간, 15분’)에 섰고, 곧 스탠드업 코미디에도 도전한다고 했다. 오는 30일 서울 연희문학창작촌에서 열리는 서촌코미디클럽 공연이다. 원래 “코난 오브라이언이나 루이 씨케이 같은 스탠드업 코미디언을 좋아했다”며 “웃겨야 하는데, 암 환자라고 괜히 분위기 우울해질까 걱정”이라며 웃었다.
어떻게 이렇게 단단할 수 있을까. 그가 팟캐스트와 강연에서 인용한 글을 보면, 그 배경을 짐작할 수 있다.
어느 누구도 그를 시련으로부터 구해낼 수 없고 대신 고통을 짊어질 수도 없다. 그가 자신의 짐을 짊어지는 방식을 결정하는 것은 그에게만 주어진 독자적인 기회다.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중에서)
이런 김 대표에 대해 스스로 “암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라고 밝힌 한 청취자는 “놀랍도록 냉철하고 객관적”이라며 “(암환자가) 자신에게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생각하고 그것에 따라 결정하는 게 중요한데, 늘 불안과 공포가 먼저 다가와 버려서,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결정을 못 하는 경우가 많다”고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물론 그도 “무섭기도 하고 막막하기도 한 감정이 올라올 때가 있다”고 했다. 재발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MRI를 찍고 결과를 기다릴 때면 러시안룰렛을 하는 심정이라고 했다. “우리 모두 (언젠가는 죽는) 시한부의 삶을 살고 있지만” 남들이 한번 방아쇠를 당길 때 자신은 40번 쯤 당기는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가끔은 “계속 큰돈 쓰면서 목숨 연장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생각에 빠질 때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럴 때면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생각한다”고 했다. “그들은 아마 내가 싸우길 바랄 것”이라며 “그래서 끝까지 버텨보려고 한다”고 했다.

강연 방송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에 출연한 김새섬 대표. 악성 뇌종양인 교모세포종 수술 이후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남은 시간을 전보다 더 충실하게' 살아가고 있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항암치료 중인 김 대표는 머리에 두건을 쓰고 출연했다. [사진 세바시]
김 대표는 남편 장강명 작가와 함께 팟캐스트를 진행한다. 기자 출신인 장 작가가 그를 인터뷰하는 형식이다. 인트로는 김 대표 혼자 부르지만, 끝날 때 아웃트로 음악은 두 사람이 함께 부른다. 이런 노래다.
스탠 바이 미, 스탠 바이 미, 달링, 달링(Stand By Me, Stand By Me, Darling, Darling, 내 곁에 있어줘요 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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