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정부 "마지막 기회" 라는데…구조조정 해법 못 찾는 석화업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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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1일 전남 여수산단의 주요 석유화학 공장들이 파이프랙으로 촘촘하게 연결돼있는 모습. 여수=김수민 기자 xxxxxxxxx2xxxxxxxxxxxxxxx
벼랑 끝에 몰린 석유화학 업계가 연일 자구안 논의에 매달리고 있지만 좀처럼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정부와 채권단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지만, 업계는 “출구를 만들어줘야 나갈 수 있는데, 출구가 안 보인다”며 속앓이를 하는 모양새다.
지난 9월 30일 산업은행을 비롯한 17개 은행과 4개 정책금융기관이 참여한 가운데 ‘산업 구조혁신 지원을 위한 금융권 공동협약식’이 열렸다. 지난 8월 정부가 발표한 나프타분해설비(NCC) 370만톤(t) 감축 목표에 따라, 석유화학 기업들이 구조혁신안을 제출하면 채권단이 협의회를 열어 대출 만기연장·금리조정·신규 자금 지원 등을 검토하겠다는 게 협약의 골자다.
이날 권대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아직 산업계가 제시한 감축 목표 달성을 위한 구체적 감축 계획과 자구 노력의 그림이 보이질 않는다”며 “지금이 마지막 기회”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석유화학 업계의 자율적인 사업 재편이 때를 놓치면 채권단 역할도 ‘관찰자, 조력자’로만 머무르긴 힘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기업들의 속내는 복잡하다. 이해관계가 워낙 첨예하다 보니 자율 구조조정안을 내기는 어렵단 전망이 많다. 시장 1위인 LG화학은 정유사인 GS칼텍스와 여수 NCC를 통폐합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지만 실행안으로 진전되진 못한 상태다. 한화그룹과 DL케미칼 합작사인 여천NCC과 롯데케미칼의 설비 통합 협의도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다만 여천NCC 공동 주주인 한화그룹과 DL케미칼의 갈등 요인이던 에틸렌 공급가격 문제는 최근 조율 단계에 돌입했다.
익명을 요구한 석화업체 관계자는 “설비 통폐합을 하려면 서로 가격 문제 등을 상의해야 하는데, 현재 공정거래법상 담합으로 보일 우려가 있어 조심스럽다”라고 말했다. 기업들은 공정거래법을 완화해 석화 기업들이 감축 과정에서 담합이나 독과점으로 몰리지 않도록 해달라고 요구해왔으나, 정부의 석화 구조개편 방안에선 이런 내용은 빠졌다.

김주원 기자
게다가 울산 석화단지 협상은 ‘가동률 역설’에 막혀 있다. 대산·여수에 비해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대신 가동률이 높은 편이라 업체들의 구조조정 유인이 낮다는 것이다. 올해 상반기 기준 SK지오센트릭의 NCC 설비 가동률은 100%, 대한유화도 95% 이상이다. 당초 SK지오센트릭 설비를 대한유화에 매각하는 방안이 거론됐지만, 최근에는 합작법인(JV) 추진안이 부상하고 있다.
여기에 최근엔 에쓰오일 변수까지 불거졌다. 에쓰오일이 울산에 건설 중인 샤힌 프로젝트는 원유를 중간 정제 과정 없이 나프타·LPG 등으로 바꿔 기존보다 6~7배 높은 수율로 석유화학 기초 원료를 생산할 예정이다. 현재 석화 감축 대상인 NCC가 아니지만, 기존 NCC보다 더 효율적으로 에틸렌 등을 생산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석화 기업들은 “에쓰오일 울산 공장도 구조조정 대상에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에쓰오일 측은 NCC 감축 목표와는 무관한 최신 설비라는 입장이다.
김호섭 한국신용평가 연구위원은 “이번 감축은 업황 추가 악화를 막기 위한 최소 규모일 뿐”이라며 “수익성 낮은 다운스트림 제품(에틸렌 프로필렌 등)까지 포함하는 포괄적 구조조정이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동진 현대차증권 연구원도 “산유국과 정유·화학 통합 설비들이 원가 경쟁력을 앞세우는 가운데, 우리나라는 스페셜티 분야 경쟁력 확보에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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