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동물국회 싫어 여의도 떠났지만…그땐 막후서 대화는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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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 12년, 시장 8년' 정계 떠나는 정장선 평택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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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정치 인생을 마감하는 정장선 평택시장은 “정치인은 자신의 언행이 국가와 국민에게 정말 도움이 되는지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최영재 기자

2011년 11월 22일, 하얀 연기가 국회 본회의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귓전에는 “만세!”라는 외침이 윙윙거렸다.

“이제 더는 못하겠다.”

절망스럽게 중얼거리던 그는 20일 뒤, 이듬해 열리는 19대 총선 불출마를 전격 선언했다. 정장선 평택시장이다. 파장은 컸다. 당시 민주당 3선 의원이자, 당 사무총장이었다.

재선 시장인 그는 얼마 전 다시 불출마 선언을 했다. 이번엔 아예 정계 은퇴다. 이유는 다르다. “그때는 번민했기 때문이었고, 지금은 만족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1958년생, 67세. 많다면 많을 수도 있지만 3선을 위해 “한 번 더”를 외쳐도 어색하진 않을 나이다. 22대 국회엔 그보다 나이 많은 현역 의원이 16명이다. 하지만 정 시장은 “정치를 30년 했다. 충분하다”고 했다. 1일 평택시청에서 정 시장을 만났다.

여의도는 실망, 시장직은 만족해서 떠나

3선 욕심은 나지 않았나.
“1995년 경기도의원으로 시작해서 올해가 정치에 뛰어든 지 30년 되는 해다. 충분히 했고 이젠 나도 내 시간을 가질 때가 됐다. 사실 결심한 지는 오래됐는데, 재선 후 상대 후보 측에서 고발을 많이 당해서 3년 내내 감사를 받았다. 그러다 보니 불출마를 미리 선언하면 시정이나 분위기가 많이 흔들릴 것 같아서 이제서야 말하게 됐다. 하나 더 추가하자면, 평택은 급속히 성장하는 도시다. 그러면 젊고 새로운 생각을 가진 사람이 시장을 맡아서 역동적인 변화를 이끌어주면 더 좋을 것 같다.”
3선 의원이던 2012년에도 불출마를 선언했다.
“처음 국회 들어온 게 2000년, 김대중 정부 때다. 국회가 점점 발전할 거라는 기대를 안고 시작했는데 돌이켜보니 그때가 가장 정치가 발달한 거였더라.(웃음) 노무현 정부가 되니 ‘108 번뇌(열린우리당 초선 108명을 일컫는 용어)’다 뭐다 내분이 심했고 한나라당과의 갈등도, 그에 따른 정치 양극화도 심화했다. 이명박 정부 때 야당이 되니까 4년 내내 농성만 하더라. 그러다가 여야가 법안처리에 합의하면 갑자기 하루 이틀 만에 수백 건을 처리했다. 읽지도 못하고 찬성 버튼 누르는 게 수두룩했다. 매일같이 ‘이러려고 정치했나, 이렇게 4선·5선한들 밥값(세비)하겠나’라는 회의감이 가득했다.”
그러나 결국 선언했다.
“선뜻 결심은 못 내리고 있었다. 그때 당 사무총장이었다. 2012년 총선 승리하려면 당 외곽에 있는 이해찬 전 총리 세력과의 통합이 필요했는데, 이때 반대하던 호남 의원들 설득하느라 한창이었다. 하루는 국회 본회의 표결 중 박지원 의원을 데리고 나와서 설득하고 있는데, 갑자기 본회의장에서 의원들이 쏟아져 나왔다. 뭔가 봤더니 김선동 (전 민주노동당) 의원이 한·미 FTA 비준안에 반대한다며 최루탄을 터뜨렸다는 거다. 들어가 보니 연기 속에서 만세를 외치고 있더라. 거기서 딱 ‘더는 못한다. 여기서 스톱이다’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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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1월 22일 김선동 당시 민주노동당 의원(아래)이 국회에서 최루탄을 터뜨렸다. [중앙포토]

18대 국회는 ‘동물국회’로 불렸다. 국회 과반의석을 가진 여당(한나라당)이 법안을 처리하려고 하면 야당(민주당·민주노동당)이 몸으로 막았다. 상임위 문을 잠그거나 국회의장이 의사봉을 잡을 수 없게 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해머도 등장했다. 정 의원은 “이건 고치고 가자는 생각에 여당 의원들과 국회선진화법을 만들고 나갔다”며 “보람 있는 일”로 꼽았다.

하지만 지금은 과반 여당인 민주당이 법제사법위원회도 가져갔고, 법안을 ‘프리패스’ 통과시킨다는 지적이 있다. 야당의 저항 수단이 마땅치 않다.
“법을 만들 때는 민주당 쪽이 180석 이상 가져갈 거란 상상을 못 했다. 저 때는 국회 폭력이 너무 심하니까 일단 그거라도 좀 막아보자는 취지였다.”

지금 국회는 어떤가.
“폭력은 사라졌는데, 여야 대립과 양극화는 더 심각해졌다. 솔직히 정치가 안 보인다. 그때는 싸우더라도 양당의 리더들이 막후에서 만나기도 하고, 중도파나 소장파들끼리 모여 스터디도 하고 의기투합하는 것도 있었다. 국회선진화법만 해도 우리 당의 김부겸·김진표·김성곤 의원, 한나라당의 남경필·원희룡·정병국·홍정욱 의원 등과 함께 스터디하면서 만든 거다. 만나서 이야기하다보면 서로의 공통 분모도 찾아진다. 그걸 찾아서 무언가를 만드는 게 정치다. 요즘은 그런 게 없는 것 같다.”
정치 복원 방법이 없을까.
“내가 지식경제위(현재의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 위원장을 할 때다. 당에서 ‘MB 악법 저지’라며 각 위원회에 할당했다. 이를 두고 국회 전체가 마비됐다. 그런데 지경위는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을 위한 법안도 많이 처리했다. 아무리 정쟁이라지만, 이런 분들 생계까지 막으면 안 되지 않나. 여당 간사였던 김기현 의원을 만나서 ‘일단 민생법안은 다 처리하자. 우리가 막는 법안들은 내년 1월 임시국회에서 상정하자. 그땐 막지 않겠다’고 제안했다. 여당도 민생법안이나 예산안을 처리 못 하면 좋을 게 없다. 당 지도부까지 전달이 됐고, 결국은 그렇게 됐다. 민생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을 놓지 않는다면 분명히 공간이 생긴다.”
지금 그럴 공간이 있다고 보나.
“탄핵 세력이니 내란 세력이니 하니까 공간이 만들어지기 어렵다. 자꾸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고 들어주려고 해야 한다. 여당은 더 그래야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번처럼 야당 대표들과 자주 만나는 게 제일 좋을 것 같다. 대통령이 노력을 계속하면 당도 일정 부분 따라서 오게 된다. 김민석 총리나 우원식 국회의장 등 책임 있는 분들이 노력했으면 좋겠다.”

그는 민주당 내에서 중도적 목소리를 내던 인물이었다. 지금 국회에선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존재다.

2012년 절망했다지만, 지금은 그때 같은 소장파나 중도파도 보기 어렵다.
“진영 논리가 너무 강해졌다. 정치인들이 자기 소신이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강성 지지층만 바라보며 이야기를 한다. 예전 같으면 누군가 ‘이러면 안 된다’고 했을 텐데, 요즘은 개선하려는 노력조차도 안 보이는 것 같다. 예전이라고 자기 목소리 내는 게 쉬웠던 건 아니다.”
요즘은 강성 발언을 하며 그게 민심이라고 한다.
“유튜브나 SNS에서 나오는 목소리를 ‘국민 중 일부’로 봐야지 ‘전체’로 의식하면 큰 문제다. 스스로 강해져서 뚜렷한 주관과 원칙을 갖고 강해지라고 조언하고 싶다. 그래야 휩쓸리지 않는다.”

김선동 FTA 최루탄 보며 ‘여기까지구나’

민주당을 두고 ‘반기업적’이라고 한다.
“정치권에서 진보·보수 얘기하는데 사실 나는 우리나라가 어디까지가 진보 보수인지 잘 모르겠다. 많이 섞여 있다. 여야 의원들이 같이 해외 나가보면 길에 현대·기아자동차 몇 대 다니는지부터 세어보며 좋아한다. 기업과 기업가들이 없었으면 지금 우리나라가 있었겠나. 진취적인 기업가들이 엄청 노력하고 투자하고 밤새워서 세계 최빈국에서 선진국까지 온 거 아닌가. 지자체마다 강조하는 게 ‘기업하기 좋은 도시’ 아닌가.”

그는 2016년 총선에도 출마하지 않았다. 다만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사무총장(당시엔 총무본부장)을 맡겨 총선을 지원했다. “다시 가서 보니, 여의도에 대한 미련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했다. 아직 50대였다. 대신 2016년 평택시장 선거에 도전했고 당선됐다. 초선 의원 시절 열심이었던 ‘주한미군기지 이전에 따른 평택시 등의 지원 등에 관한 특별법’ 후속 조치를 하고 싶어서였다고 한다.

예전엔 미군기지가 있는 도시는 우범지대로 보는 시각이 많았다.
“지금은 아니다. 미군 관련 범죄 뉴스를 듣기 어렵다. 얼마 전 가벼운 사고가 벌어진 적 있는데, 주한미군 사령관이 직접 전화해서 연신 사과했다. 들어보니 정신교육도 철저히 시켰다고 하더라. 사실 평택은 미군기지를 받는 대가로 수도권 규제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삼성 등 유수의 기업을 유치할 수 있었다. 카이스트 반도체 관련 캠퍼스도 2029년 이곳에 온다. 미군이 있으니 국제학교(미 애니라이트 스쿨) 유치도 수월했다. 이제 문화시설과 공원만 더 확충되면 된다. 시장으로서 정말 원 없이 일했다. 그래서 물러나는 거다.(웃음)”
정치를 30년 했다. 정치란 무엇인가.
“사실 갈수록 정치가 뭔지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핵심은 ‘내가 정치를 이제 왜 하는지’에 대한 답이 있어야 한다. 또, 자신의 언행이 국가와 국민에게 정말 도움이 되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나는 2012년에 그 질문에 답을 못했다.”
앞으론 뭐 하나.
“이집트·인도 등 4대 문명 발상지를 돌아볼 거다. 여행하면서 뭘 할지 생각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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