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단독] 정부가 사놓고 안쓰는 땅 16만평…관리비도 수억 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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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재정부가 매입한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의 한 공터의 모습. 김정재 기자
지난 2일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한 종합복지관 옆 공터. 부지 대부분이 풀밭인 이곳은 기획재정부가 2020년에 매입한 축구장 5.8배 규모의 땅(약 4만1823㎡)이다. 하지만 2m가량의 철제 펜스가 설치돼 있고 자물쇠까지 채워져 있어 주민들이 이용할 수 없다. 인근에서 마주친 수원시민 송모(32)씨는 “몇 년째 주변을 산책하고 있지만, 이 땅은 늘 방치돼 있었다”며 “마치 도심 속 밀림 같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예초작업 등 관리가 안 돼 여름이면 벌레가 들끓어 산책로를 침범해 불편하다”며 고개를 저었다.
공터에서 1.5km가량 떨어진 곳에도 약 2378평(약 7862㎡) 규모의 정부 땅이 존재했다. 이곳엔 회색 컨테이너 건물 5개와 승합차 여러 대가 세워져 있다. 땅 한쪽엔 공사에 쓰이는 듯한 장비도 수두룩하게 쌓여있다. 인근 공사장에서 일을 하고 있는 한 인부는 “공사장에 여러 기계를 둘 곳이 없다”며 “이쪽에 놔두고 퇴근을 했다가 출근할 때 들고 간다”고 말했다.

기획재정부가 매입한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호매실동의 한 공터의 모습. 김정재 기자
3일 정태호 더불어민주당 의원(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이 기획재정부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이런 식으로 방치된 비축 토지가 약 16만8000평에 달했다. 비축 토지란 정부가 적시에 활용하기 위해 매입한 국유 재산을 말한다. 지난 3월 실태조사 기준 약 18만2000평(60만3620㎡) 중 1만4000평(4만6619㎡)만 다른 정부기관 등과 계약이 체결된 상태다. 방치된 땅 일부는 주민들이 불법으로 경작하거나 점유하고 있었다. 정부가 매입한 땅의 평균 보유 기간은 약 8년이라고 한다.
이렇게 방치된 땅을 관리하는 비용으로도 적잖은 예산이 쓰였다. 정 의원이 이날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로부터 받은 ‘기재부 미활용 비축토지에 대한 연간 관리 비용’에 따르면, 지난 5년간 관련 예산으로 약 3억7000만원이 집행됐다. 이와 관련 캠코 관계자는 “비축 부동산이 계약된 후 다른 기관에 인계될 때까지 캠코가 관리한다”며 “용도나 행정 목적에 장애가 되지 않도록 하는 비용”이라고 설명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달 1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성장전략TF 겸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기재부도 이러한 문제점을 알고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정 의원실에 “관리 비용이 지속 발생하고 있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며 “미활용 부지에 대한 적극적인 공공수요 발굴 등을 통해 이를 개선해나가겠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낮은 활용률을 개선하기 위해 ‘사용예약’이라는 제도를 실시하고 있지만, 이를 합쳐도 활용률(45.6%)은 절반을 넘지 못했다. 예약 후 실제 승인까지는 평균 1.3년(2024년 기준)의 시간이 소요됐다.
이에 “신규 개발이 추진될 때까지 주말농장·주차장·체육행사 등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도 모색돼야 한다”(정태호 의원)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백석동 일대에 약 300평(1005㎡)의 토지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곳은 3호선 백석역에서 도보 2분 거리다. 지하철을 이용하면 도심 업무 지구인 경복궁역까지 약 30~40분이면 갈 정도로 가깝지만 공식적으론 유휴 부지다. 한 공인중개소 관계자는 “금싸라기 땅이 놀고 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정태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연합뉴스
이러한 현상이 발생한 근본적 이유는 기획재정부가 캠코에 업무를 떠넘기는 구조에서 비롯됐단 게 정치권의 분석이다. 2010년 ‘국유재산 관리제도 개선방안’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되며, 기획재정부가 각 부처에서 개별적으로 관리해왔던 각종 국유재산을 통합해 관리하고 있지만, 대부분 캠코에 위탁해 운영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정 의원은 “국유재산과 관련된 사안은 기재부가 주무부처”라며 “무작정 캠코에 떠넘기는 것이 아니라 주도권을 쥐고 근본적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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