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쌀 남아돈다는데 쌀값 27% 폭등…알고보니 정부가 손댄 탓
-
16회 연결
본문
무섭게 뛴 쌀값이 추석 이후에는 진정될 수 있을까. 쌀 소매가격은 심리적 마지노선인 20㎏당 6만원을 훌쩍 뛰어넘어 6만7000원을 넘어섰다. 정부는 본격적인 수확기에 접어드는 10월 중순 쌀값이 안정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지만, 부족한 시장 재고 등을 고려했을 때는 소비자들이 과거보다 높은 쌀값을 당분간 부담해야 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쌀 20㎏ 소매가격은 1일 기준 6만7327원으로 전년보다 27%가 비싸다. 6만 5000원을 돌파한 26일 서울 시내 대형마트에서 고객이 쌀을 고르고 있다. 뉴스1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이달 1일 기준 쌀 20㎏ 소매가격은 6만7327원으로 전년보다 27%가 비싸다. 지난해 쌀값이 유독 낮았던 점을 고려하더라도 평년(5년 평균) 대비 22.9% 높은 수준이다. 산지쌀값 역시 마찬가지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25일 산지쌀값은 20㎏당 5만6704원으로 전년 동월(4만3648원)대비 29.9%가 뛰었다.
쌀값은 본격적으로 햅쌀이 나오기 전 7~9월 오르는 경우가 많다. 전년도에 생산된 쌀 재고가 떨어지며 자연스레 가격이 오른다. 그런데 올해는 상승폭이 너무 가파르다. 소매가격의 경우 지난달 1일(6만256원)과 비교하면 한달 새 11.7%가 올랐다.
쌀값이 가파르게 치솟은 건 산지의 원료곡(벼)가 동나서다. 민간 농업연구기관인 GS&J 인스티튜트에 따르면 정부 양곡의 방출이 없었다면 9월 중순 시장재고가 바닥날 뻔할 정도로 재고가 부족했다. 과잉생산되는 작물인 쌀의 시장재고가 부족해진 건 정부의 개입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해 가을 쌀값 하락을 막기 위해 비축 물량 36만t에 더해 26만2000t의 쌀을 ‘시장격리’ 물량으로 더 사들였다. 지난해 쌀 초과 생산량은 5만6000t 수준인데 쌀값 상승을 위해 20만t을 더 매입했다. 시장 재고가 부족해지며 올해 3월부터 쌀값이 오르기 시작했지만, 정부는 양곡 방출을 미루다 8월 말이 되어서야 쌀을 풀기 시작했다. 정부는 이밖에 쌀알이 빨리 익어 8~9월 중 시장에 빨리 풀리는 조생종 햅쌀의 출하 지연도 원인으로 꼽고 있다.

신재민 기자
정부는 햅쌀 출하가 본격화되는 10월 중순부터는 쌀값이 안정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우선 올해 쌀 작황이 지난해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게 이유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업관측센터는 올해 기상 여건이 양호해 쌀 단위 생산량이 지난해보다 2~3.2%, 평년(5년 평균) 대비 1.2~2.5%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쌀 재배면적 감소로 쌀 생산량 자체는 335만∼360만t으로 지난해(359만t) 수준이겠지만, 소비 감소 등을 고려했을 때는 과잉생산이라는 게 정부 측의 설명이다. 변상문 농식품부 식량정책관은 “올해 작황에 대한 현장 의견을 들어보면 쌀 소비 감소를 감안하더라도 다소 과잉이 전망된다”고 말했다.
다만 쌀값이 갑작스레 하락할 일은 없을 전망이다. 우선 공급이 정부 생각만큼 넘치지 않을 가능성이다. 한국쌀전업농중앙연합회 임병희 사무총장은 “9월 초 조사까지는 작황이 좋았지만 수확기를 앞두고 깨씨무늬병 등 병충해가 전국적으로 퍼지고 있는 상황이라 쌀 작황이 지난해보다 좋을 지는 두고봐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유통업체들이 갖고 있는 쌀 재고가 동난 만큼, 가격이 단기간에 내려가지 않을 수도 있다. 인천대 김종인 동북아국제통상교수는 “올해는 구곡 재고가 없어 시장에 공급되는 물량 전체를 신곡(햅쌀)으로만 채워야 해 과거보다 수확기 쌀 공급 증가 효과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통상 햅쌀은 구곡보다 가격이 더 비싸게 형성되기 때문에 가격 상승 압력도 여전히 남아 있다”고 말했다.
쌀값의 가장 큰 변수는 정부의 개입이다. 쌀은 추가 수요처를 찾기 힘들어 과잉생산이 발생하면 쌀값이 급락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정부가 쌀을 얼마나 사들이냐에 따라 수확기 쌀값이 결정된다. 올해에도 쌀값이 올랐지만, 쌀 생산량의 수요량이 3%를 초과한 만큼 정부가 시장 격리조치를 할 수 있는 조건은 마련돼 있다.
정부는 급격한 쌀값 하락은 없도록 하겠다는 입장이다. 최근 쌀값 안정을 위해 시장에 쌀을 대여 방식으로 푼 것도 이런 의지가 반영됐다. 정부는 현지 재고 부족으로 쌀값이 오르자 지난달부터 대여 방식으로 쌀 5만5000t을 공급했다. 쌀을 대여한 업체들은 25년 햅쌀로 빌린 물량을 다시 갚아야 한다. 정부와 별개로 5만5000t 물량에 대한 시장 격리 효과가 발생하게 된다.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지난달 30일 “소비자들은 많이 올랐다고 느끼지만 생산자 입장에서는 이제 회복이 되어가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인 1인당 연간 쌀 소비량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통계청]
수확기 쌀값을 낮추는 데 대한 농가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쌀 농가는 지난해 수확기 쌀값 하락 등으로 논벼 0.1헥타르당 순수익이 27만1000원으로 전년 대비 24.3%(8만7000원) 하락하는 등 수익에 타격을 입었다. 올해 쌀값 상승 역시 지난해 수확기에 낮은 가격으로 유통업체 등에 쌀을 판 농가들과는 무관하다는 농가들의 입장이다. 임병희 사무총장은 “지난 2021년에도 수확기 전 쌀값이 비싸다는 이유로 시장격리 조치를 미온적으로 해 다음해인 2022년 쌀값이 급락하는 등의 피해가 속출했다”며 “올해도 정부가 물가 안정 등을 이유로 쌀값 안정화에 미온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는 불만이 농민들 사이에서는 이미 많다”고 말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내놓는 적정 쌀값은 밥 한공기(쌀 100g) 당 300원 대의 가격이다. 이병진 민주당 의원은 “쌀 한 공기에 최소 300원 보장은 농민 생존권을 지키고 식량안보를 뒷받침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라고 말했다. 밥 한공기 쌀값을 300원까지 맞추려면 산지가격 기준으로는 한가마니(80㎏)가 24만원이 되어야 한다. 송 장관도 지난달 25일 “밥 한 공기에 300원 정도는 생산자가 받아도 되지 않겠나. 소비자도 이해해달라”고 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