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북구 달천의 전통 제철기술인 '쇠부리기술'이 국가 차원의 보호와 육성을 받게 됐다. 쇠부리기술이 국가유산청 '2026년 미래 무형유산 발굴·육성사업'에 최종 선정됐다. 사진 울산 북구

울산 북구 달천의 전통 제철기술인 '쇠부리기술'이 국가 차원의 보호와 육성을 받게 됐다. 쇠부리기술은 흙으로 만든 제철로(토철로)에 철광석과 숯을 넣고 불을 지펴 쇳물을 얻는 고대 제련 방식으로, 삼한시대부터 이어져 온 우리나라 대표적 전통 제철기술이다.

울산 북구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전승돼 온 쇠부리기술이 국가유산청 '2026년 미래 무형유산 발굴·육성사업'에 최종 선정됐다고 7일 밝혔다.

이번 사업은 전승이 단절될 위기에 놓인 지방 비지정 무형유산을 국가와 지자체가 공동으로 보존하고 체계적으로 계승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울산 북구는 지난해 쇠부리기술의 역사적 가치와 지역 정체성을 규명했으며, 내년부터는 보존회 발족, 인문·기술 교육 프로그램 운영, 전승 기반 마련 등 후속 사업을 본격 추진할 계획이다.

울산 북구 달천의 전통 제철기술인 '쇠부리기술'이 국가 차원의 보호와 육성을 받게 됐다. 쇠부리기술이 국가유산청 '2026년 미래 무형유산 발굴·육성사업'에 최종 선정됐다. 사진 울산 북구

쇠부리기술의 뿌리인 울산 달천 일대는 삼한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한반도 최대 철 생산지로 자리 잡았던 곳이다.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매년 1만2500근의 철이 조정에 상납됐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조선 효종 때 학자 이의립이 무쇠 제조법을 개발해 우리나라 제철사의 전환점을 마련한 역사적 현장이기도 하다. 쇠부리 기술로 얻은 철을 응용해 탄소 함량이 높은 주철(무쇠) 생활용품을 본격적으로 만드는 방법을 정립했다는 역사적 의미가 있다.

현재 울산 북구에 있는 '달천철장 유적공원'에는 거대한 흙가마가 복원돼 있으며, 이는 단순 전시물이 아닌 실제 불을 지펴 토철(흙광석)을 녹이고 쇳물을 추출하는 '쇠부리 실험'이 이뤄지는 현장이다.

울산 쇠부리기술은 1906년 일제강점기 일본 주도의 제철체제가 도입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1980년대 달천에서 제철 노동요인 '쇠부리소리'가 확인되면서 전통의 불씨가 되살아났다. "쇳물난다 불매야, 디뎌봐라 불매야…"로 시작되는 이 노래는 2019년 울산시 무형문화재 제7호로 지정돼 문화적 가치를 공인받았다. 지난해에는 국가유산청의 국가무형유산 신규조사 대상 종목으로 선정되며 보존 필요성이 다시 한번 확인됐다.

제21회 울산쇠부리축제 찾은 관람객들. 연합뉴스

2016년 울산쇠부리복원사업단이 출범했고, 쇠부리기술을 활용한 흙가마 복원과 재현 실험이 이어졌다. 2019년 전통 방식으로 쇳물을 생산하는 데 성공, '80% 복원'이라는 평가를 얻었다. 현재도 달천철장 유적공원에서 고대 제철 현장을 재현하는 실험은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쇠부리기술의 가치는 해외 학계에서도 높이 평가한다. 시오미 히로시(潮見浩) 일본 히로시마대학 명예교수는 2000년 말 울산시장에게 "달천철장은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 세계에서 고대국가 형성기 철 생산과 유통을 고찰하는 데 귀중한 유적군이다. 부디 보존해주시길 부탁한다"고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당시 시오미 교수는 고대 철 생산을 연구하는 일본 타타라연구회(たたら硏究會)' 회장이었다.

지역 차원의 전승에도 힘을 보태고 있다. 매년 봄 열리는 '울산쇠부리축제'에서는 주민들이 쇠부리소리를 부르고, 관람객들이 불꽃이 치솟는 가마 앞에서 제철 과정을 체험한다. 북구 관계자는 "쇠부리기술은 울산 제철문화의 뿌리를 보여주는 소중한 유산으로 이번 사업을 통해 지역 정체성을 강화하고 미래 세대가 계승할 수 있는 전통문화 기반을 마련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