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단독]소송 놓쳐 2억 날린 한농공…담당자들 승진에 성과급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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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 인수·인계 관련 이미지. 기사와 직접적 관련은 없음. 일러스트 챗GPT

한국농어촌공사(한농공)가 수도관 업체 10곳이 입찰을 담합했다는 사실을 인지했음에도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진행하지 않아 약 2억3000만원을 받아내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송 담당자가 교체되는 과정에서 업무 인계·인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사이 청구권의 소멸 시효가 일부 만료되면서다. 그 사이 한농공은 담당자들에게 승진 기회를 주고 성과급까지 지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10일 문대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입수한 감사원의 ‘입찰담합사건 관련 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한농공은 2020년 9월 조달청으로부터 총 111건의 폴리에틸렌 피복 강관 생산 업체 담합 사건 내용을 전달받았다. 하지만 한농공은 3년이 지나서야 후속 조치에 돌입 것으로 조사됐다. 폴리에틸렌 피복 강관은 주로 생활·공업·농업 용수 등의 공급을 위한 수도관으로 사용되는데, 부식을 방지하기 위해 전기 용접 강관 바깥면에 폴리에틸렌 소재를 피복한 것을 의미한다.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2012년 7월부터 2015년 11월까지 한농공이 의뢰해 조달청이 입찰 공고를 낸 ‘폴리에틸렌 피복 강관 다수 공급자 계약’에서 10곳의 업체가 서로 짜고 낙찰 예정사 및 제안 가격을 합의했다. 이후 낙찰받은 물량은 담합 참여사끼리만 배분했다. 이런 정황을 포착한 공정거래위원회는 2020년 6월 조달청에 관련 내용을 공유했다. 담합에 따른 인정손해액은 약 15억원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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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어촌공사 외경. 연합뉴스

‘인계자료.zip’ 압축 파일만 전달…소송 내용 몰라 

같은 해 9월 조달청은 한농공에 “손해배상 청구권의 소멸 시효가 도래하기 전, 담합한 업체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라”는 취지로 2차례에 걸쳐 공문을 보냈다. 이에 한농공에서 소송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인 A씨가 공문을 접수했다. 하지만 “시효가 약 2년 남아있다”는 이유로 상급자에게 관련 보고를 하지 않았다. 이후 2021년 2월 A씨의 인사이동으로 인해 업무 담당자는 B씨로 바뀌었다. A씨는 인사이동 전날 동료를 통해 후임자인 B씨에게 5.85GB 용량의 ‘인계자료.zip’ 압축 파일을 전달했다. 압축 파일 내 소송 폴더엔 담합 업체 사건 관련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고 한다.

B씨는 약 일주일 뒤 A씨를 만나 대면으로도 업무 인계를 받았지만, 해당 소송 관련 내용은 구두로 전달받지 못했다. 이후 약 1년간 파일을 확인하지 않았던 B씨는 2022년 1월 다른 부서로 옮기게 됐다. 심지어 B씨는 후임자 C씨에게 사무 인계를 하면서 ‘인계자료.zip’ 파일을 전달하지 않았다. 이외에도 감사원은 “해당 부서의 부장인 D씨도 시스템을 통해 조달청 공문을 공유 받았지만, 소송을 지휘·감독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111건 담합 중 18건 소멸시효 지나 

한농공 관계자들은 2023년 8월 29일에서야 소송을 시작했다. 같은 해 5월 경기 시흥 은계·목감·장현 지구의 주민대책위원회가 “인근 상수도관을 통해 나온 수돗물에서 이물질이 발견되고 있다”며 감사원에 공익 감사 청구를 접수해, 한농공에 대한 외부 감사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한농공은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지만, 15억원 중 약 2억3000만원가량을 보전받을 수 없는 상태였다. 2022년 11월부터 2023년 8월 사이 111건의 담합 사건 중 18건의 소멸시효가 완성되면서다.

그 사이 업무 책임자였던 A·B·D씨는 매해 약 2000만원가량의 성과급을 지급 받았다. 또한 이들은 3급에서 2급으로 승진해 현재 지사장 또는 부장 직함을 달고 있다. 한농공은 올해 2월에서야 이들에게 서면으로 주의 처분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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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대림 더불어민주당 의원. 연합뉴스

이와 관련 문 의원은 “이번 사건은 인수·인계를 안 한 직원들의 문제만으로 치부할 수 없다”며 “한농공이 보고 체계 전반을 재점검하고 개선점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농공은 “부서 차원의 통제 장치가 미흡했던 측면이 있었다”며 “올해 3월 인계·인수 전자 시스템을 도입했고, 외부 문서 접수 시 차별화 표시를 하는 등의 조치를 통해 경각심을 제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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