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돌아온 ‘호랑이 선생님’ 김대진 “피아노 치는 모습만 보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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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선생님이 돌아왔다. 피아니스트 김대진(63) 교수가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총장 임기 4년을 8월에 마치고 선생님으로 복귀했다.
11월 25일 스타 피아니스트들과 한 무대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역임 후 복귀

수많은 피아니스트를 길러낸 김대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4년의 총장 임기를 마치고 복귀했다. 11월에는 피아니스트들과 함께 협주곡을 지휘하는 공연 무대에 선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버릇이라는 게 되게 무서워요. 4년 동안 떨어져 있었는데, 돌아오니 그다음 날부터 적응이 되는 거예요.” 지난달 말 서울 서초동의 한예종 연구실에서 만난 그는 “선생으로서 할 일이 많다. 이제는 연주하더라도 선생으로서 연주를 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한국의 대표적인 피아노 교수이자 명스승 다운 복귀 선언이다. 그는 한예종에 1994년 부임해 손열음ㆍ김선욱ㆍ문지영ㆍ박재홍과 같은 스타 피아니스트들을 길러냈다.
스승으로서 김대진 교수의 가장 큰 능력은 제자를 파악하는 일이다. “피아노 치는 모습만 보지 않아요. 레슨실 문 열고 들어올 때의 표정, 하는 말, 그리고 여기 탁자 위에 가방 올려놓는 모습, 피아노 앞에 앉는 방법 이 모든 걸 다 보거든요. 그런 것들이 그 학생이 어떤 피아니스트인지 다 말해줘요.” 그는 “이번 학기에 만난 학생에게 ‘너무 꿰뚫어 보셔서 무섭다’는 말을 들었다”며 웃었다.
피아니스트를 파악하는 실력은 무대 위에서도 발휘된다. 김 교수는 11월 25일 피아니스트 3인과 한 무대에 선다. 30ㆍ40대의 실력파 피아니스트 이진상ㆍ박종해ㆍ김도현과 함께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지휘자로서 피아노 협주곡 세 곡을 연주하는 공연이다. 그리그ㆍ차이콥스키ㆍ라흐마니노프 협주곡은 화려한 피아노 연주에 오케스트라가 절묘한 호흡을 맞추는 작품들이다. 김 교수는 “오케스트라가 세 피아니스트에게 각기 다른 얼굴을 보여줘야 하는 무대”라고 했다.
그는 함께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들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이진상은 사람 자체가 굉장히 부드러워요. 말이나 행동에도 끊어지는 느낌이 없거든요. 그런 만큼 굉장히 자연스러운 음악을 하는 피아니스트죠.” 이진상은 이번 공연에서 라흐마니노프의 협주곡 2번을 연주한다. “차이콥스키 1번을 연주하는 박종해는 그에 비해 좀 성깔이 있는 연주를 하고, 김도현은 뜨거운 진심이 보이는 음악가죠.”
김 교수는 국제 콩쿠르 우승 등 다양한 경력 위에서 피아니스트와 교수로 이름을 알리다가 2005년 지휘자로 데뷔했다. “사실 피아니스트로서 협주곡 좀 편안히 연주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지휘를 시작하게 됐다고 볼 수도 있어요. 피아니스트 입장에서 오케스트라를 이끌어줄 수는 없을까 하고요.” 그는 “다른 오케스트라 곡은 나보다 경험 많은 지휘자가 훨씬 많을 수 있지만 피아노 협주곡만큼은 피아니스트가 표현하고 싶은 것을 온전히 하게 해줄 자신이 있다”고 했다. 그가 말한 ‘스승으로서의 무대’ 중 하나가 지휘자로서 후배 피아니스트들과 함께 하는 이번 공연이다.

11월 25일 중앙일보 창간 60주년 기념공연에서 지휘를 맡는 김대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한편 그는 엄격한 스승이다. 음악가들에 대한 쓴소리도 서슴지 않았다. 레슨실로 돌아온 날은 8월 26일. 총장 퇴임 바로 다음 날이다. “기다릴 시간이 없었어요.” 그는 음악계에서 일종의 경고등이 켜진 것을 발견했다고 했다. “기본과 근거 없이 개성이라고 생각하면서 잘못된 음악을 하는 경우가 너무 많아졌어요.” 그는 6월 일본의 센다이 국제 콩쿠르에서의 일화를 소개했다. “한 외국 심사위원이 ‘한국 참가자들은 왜 다 화가 나 있나’라고 하는 거예요. 제일 빠르고 크게 연주하는 걸 잘한다고 생각하고, 그 작품에 알맞은 소리와 해석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지 않는 거죠.”
김 교수는 “기본에 대한 공부가 덜 돼 있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어떤 작품을 연주하려고 하면 그 작품이 어떤 시대에 작곡됐고, 배경은 무엇인지 알아야 하죠. 그 사실들에 근거한 기반을 단단히 가지고 시작해야 해요.” 교수로 복귀한 후 그는 음악을 이론적으로 연구하는 수업을 개설해 직접 강의를 맡았다. “이번 학기는 소나타 형식에 대해 수업을 해보려고요.” 숙제ㆍ시험ㆍ발표 같은 것들이 있는 정식 이론 수업이다. “기본을 공부하지 않으면 창의력이 나올 수 없어요.”
6월에는 벨기에의 퀸 엘리자베스 국제 콩쿠르에서도 심사를 맡았다. 거기에서 일본 연주자들의 약진이 인상 깊었다고 했다. “그동안 일본 음악가들은 지나치게 객관적이라고 비판을 받았죠. 이런 객관성에 근거해서 이제 자신들의 음악을 하니 창의적인 예술이 됐어요.” 이 대회의 결선 진출자 12명 중 4명이 일본인이었고, 최종 순위에서도 일본 피아니스트가 2위에 올랐다. 김 교수는 “무조건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음악에서 기본의 힘이 얼마나 무서운지 일본의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피아니스트를 꿰뚫어 보며 엄격하다는 면에서 그는 오랜 시간 ‘호랑이 선생님’으로 통했다. “이젠 '호랑이'는 그만하려고 마음 먹었어요. 총장 4년 하면서 인내심을 키웠다고 생각해서요.” 하지만 그는 여전히 날카로운 눈으로 학생들을 바라보고 채근한다. “4년 동안 연주도 연주지만 가르치는 일이 제일 하고 싶었어요. 선생으로서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곳에 있고 싶어요. 무대도 그렇고요.”
김대진 교수와 이진상ㆍ박종해ㆍ김도현 피아니스트가 출연하는 ‘더 피아노 오디세이’ 공연은 11월 25일 오후 7시 30분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다. 거대한 사운드와 화려한 기교가 발전했던 낭만주의 피아노 협주곡 세 곡이 연주된다. 중앙일보의 창간 60주년을 기념하는 이 무대에는 바이올리니스트 이석중(악장), 클라리네티스트 조성호 등 중앙음악콩쿠르 수상자들을 중심으로 한 오케스트라J가 함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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