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상처를 읽는 여자…‘오독’은 필연이자 숙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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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병모 작가가 신간 『절창』(아래 사진)으로 돌아왔다. 절창(切創)은 칼에 베인 상처를 의미하는 말로, 상처를 통해 타인의 마음을 읽는 여자가 등장하는 소설에 맞게 작가가 고른 단어다. 작가는 “상처에 관한 제목을 붙이려 했고, 직관적으로 쓰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사진 구병모 작가]
모든 문학작품은 오독(誤讀, 잘못 읽음)을 전제한다. 작가와 독자는 다른 삶을 살아온 타인이기 때문에, 같은 글자를 놓고도 다른 해석을 할 수밖에 없다. 만약 타인의 마음을 책처럼 읽을 수 있다면 어떨까. 이 과정에도 오독이 따라오게 될까.
지난달 17일 출간된 구병모(49)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 『절창』(문학동네)은 이런 생각을 한 편의 서사로 녹여낸 작품이다. 타인의 상처에 손을 대면 마음을 읽어낼 수 있는 여자와 범죄 조직에 연루된 사업가 ‘문오언’이 주인공. 둘이 함께 사는 집에 입주 독서교사가 발을 들이며 벌어지는 일들을 그렸다.
구병모는 16년 차 소설가다. 죽음의 문턱에서 아가미를 갖게 된 소년의 이야기를 그려낸 소설 『아가미』(2011), 60대 여성 킬러의 이야기로 올해 동명의 영화로도 만들어진 『파과』(2013) 등 몰입도 높은 소설을 써 왔다. 이번 책 역시 출간 즉시 종합·소설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오르며 인기를 입증했다. 지난달 28일 서면으로 만난 작가는 “데뷔작 『위저드 베이커리』(2009) 이후 열띤 반응이 오랜만이라 놀랐다”며 “『절창』은 수년 전 남겨뒀던 ‘상처를 읽는 사람’이라는 메모로부터 시작한 소설”이라고 소개했다. “악수만 해도 사람들의 마음을 읽는 ‘사이코메트리’(Psychometry)는 기존의 클리셰인데, 그 능력이 나쁜 일에 쓰인다면 어떨지 상상했다. 거기에 타인을 대할 때, 그리고 한 권의 책을 읽을 때 필연적으로 감당해야 하는 오독의 문제를 접목하는 과정을 거쳤다.”
작품에 ‘아가씨’로만 언급되는 이름 모를 여자는 어릴 적 보육원 친구의 상처에 손을 대며 타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자신의 능력을 확인한다. 보육원 후원자이자 사업가인 문오언이 그 능력을 발견하고, 여자를 자신의 집에 데려간다. 문오언은 여자를 극진히 대하면서도 상대 범죄조직이 감추고 있는 비밀을 읽어내는 데 여자를 이용한다.

책에 『절창』이란 제목을 붙인 것도 여자의 능력 때문이다. 작가는 “함축적이면서도 기억에 강하게 남는 상처는 뭐가 있을까 사전을 찾아봤다”며 “화상, 열상, 자상, 창상, 교상 등을 지나 최종적으로 발견한 낱말이 절창(切創·예리한 날에 베인 상처)이었다”고 했다. 출판사에선 ‘다시는 부를 수 없는 뛰어난 노래’를 뜻하는 단어 절창(絕唱)과 혼동할까 걱정했지만, 작가는 “파과(破瓜/破果)라는, 일상적으로 쓰이지 않는 한자어의 의미를 널리 각인시키는 데 이미 한 번 성공한 적 있고, ‘절창’도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작품은 독서교사와 ‘아가씨’의 시점을 교차하며 전개된다. 아가씨의 과거사는 독서교사의 시점에서 소개되고, 아가씨는 자신의 시점으로 문오언과의 관계를 설명한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계속해서 ‘읽기’란 무엇인지 질문한다. 문오언에게만은 ‘마음 읽기’ 능력을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한 여자와, 자신을 한 번만 읽어 달라고 간절히 부탁하는 문오언의 서사를 통해 ‘읽기’를 애정과 신뢰의 행위로 비유한다.
이토록 ‘읽기’를 치열하게 고민한 작가에게 소설이란 무엇일까. 구병모 작가는 “소설이란 무엇인지 알고 싶은 마음이 내가 계속 글을 쓰는 이유”라고 했다. 이어 그는 “인간이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도 착각이거나 환상일 수 있다. (소설 쓰기는) 타인을 오독하면서도 언젠가는 올바로 읽어내리라는 기대를 버리지 않으면서, 읽는 행위를 그만두지 않는 것과도 같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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