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앞면은 혁신, 뒷면은 불안…스테이블 코인은 던져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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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화폐인가 통화정책 훼손인가, 한은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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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블코인(Stablecoin) 확산 조짐에 가장 골치가 아픈 곳은 한국은행이다. 스테이블코인은 인터넷만 연결되면 돈을 주고받을 수 있는 신종 결제 시스템이다.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확산하면, 원화 결제 생태계를 잠식할 수밖에 없다. 한은은 통화당국으로서 통화 주권 훼손과 자본 유출, 불법 자금 거래 등을 걱정해야 할 처지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도 없다. ‘디지털 통화 주권’을 지키려면 원화 스테이블코인도 필요한 데다 이를 제도권에 편입하지 않으면 “한국을 화폐 혁명의 갈라파고스로 만들고 있다”는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더중앙플러스 머니랩은 스테이블코인 확산에 대응하는 한은의 고민과 대안을 심층적으로 다뤘다.

지역화폐 운영을 대행하는 핀테크 기업 코나아이는 최근 ‘스테이블코인계의 지역화폐’인 코나스테이블코인(가칭 KSC) 개발을 끝냈다.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구매 금액의 10%가량을 인센티브로 주는 시스템을 원화 스테이블코인에 적용했다. 코나아이 관계자는 “KSC를 충전한 선불카드는 지역화폐 사용처에서 일반 신용카드와 똑같이 쓸 수 있다”며 “기존 밴(VAN, 신용카드 승인 대행)사 결제망을 통하지 않고, 개인 대 개인(P2P) 지갑으로 곧바로 결제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국회의 스테이블코인 법제화를 앞두고 업계에선 원화 스테이블코인 개발이 한창이다. 네이버·카카오 등 대형 정보기술(IT) 기업과 시중은행은 물론 핀테크·블록체인·게임회사 등도 팔을 걷어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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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민 기자

◆통화정책 무력화, 은행체계 붕괴 우려=업계의 발 빠른 움직임에도 스테이블코인 법안이 쉽사리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는 데는 정부의 고민이 한몫한다. 미국의 법제화(지니어스법)로 테더(USDT)·서클(USDC) 등 달러 스테이블코인 사용이 보편화하면 한은의 통화 정책은 의미가 없어진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활성화해야 하지만, 민간 화폐가 난립하는 상황을 방치할 수도 없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역시 중앙의 통제를 받지 않는 블록체인 특성(탈중앙화)상 은행 시스템으로 통제하기 힘든 불법 송금, 돈세탁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민간 화폐가 봇물을 이룬 19세기처럼 큰 혼란을 부를 것”이라는 격한 표현까지 쓰면서 은행이 아닌 민간 기업의 스테이블코인 발행에 부정적 입장을 피력하는 이유다.

◆한은 “CBDC로 프로그래머블 머니 실현”=한은도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필요성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스테이블코인을 제도화하지 않으면 국내 관련 산업(발행·유통, 결제·송금 등) 발전이 뒤처질 우려도 있다. 한은의 대안은 은행권 중심의 ‘프로그래머블 머니’를 도입하는 것이다. 프로그래머블 머니도 블록체인(분산원장) 기술에 기반한다. 이 기술은 자금 거래 기록을 중앙 서버를 거치지 않고 여러 참여자가 공유해 모든 단계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게 핵심이다. 결제 비용이 줄고, 거래 속도가 빨라지며 24시간 거래할 수 있는 장점도 갖췄다. 자금 거래를 프로그램처럼 만들면, 술·담배 구매를 차단한 미성년 자녀 용돈, 우천취소되면 자동 환불되는 야구 경기 관람권 예매 등 다양한 아이디어를 결제에 접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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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민 기자

한은은 이 기술을 활용한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를 발행하고, 은행은 이를 기반으로 예금토큰을 발행해 프로그래머블 머니로 사용하게 할 계획이다. 한은이 중심을 잡기 때문에 전통적인 화폐와 동일한 법적 지위, 안정성을 갖출 수 있다. 김영식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CBDC가 국내에 도입될 경우 성인 남녀가 현금·모바일 간편결제보다 더 선호하는 지급 수단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은은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 권한을 은행권부터 허용하자는 입장이다. 혹시 모를 ‘코인런’(대규모 코인 인출 사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다. 한은법상 발행 주체가 은행이면 유동성 공급 대상이지만, 비은행이면 일상적 유동성 공급 대상이 아니다. 자본시장연구원은 지난달 1일 보고서를 내고 “준비자산을 외부에 예치해 스테이블코인 이용자를 발행인의 신용 위험으로부터 절연시키고, 외부 예치 기관은 신용도가 높은 금융회사로만 제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이르면 이달 중 스테이블코인 관리 법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금융위원회 가상자산과장은 “혁신과 안정 사이에 균형을 잡고 제도의 글로벌 정합성을 제고하겠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정합성과 관련해선 “가급적 미국·일본·EU(유럽연합)의 암호자산 시장규제 등에 맞게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는 “국민 경제활동 감시할 수도”=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준비하는 핀테크·블록체인 업계는 한은의 이 같은 구상이 탐탁지 않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은행권 중심으로 운영하면, 사실상 민간 기업은 시장을 선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한은의 CBDC 활성화 계획을 두고 “한은이 일반 국민의 경제활동을 부당하게 감시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른바 ‘빅 브러더’론이다. 이에 대해 한은은 “걱정 없다”는 입장이다. “개인정보는 전자지갑 발급 은행이 개인정보보호법·신용정보법 등을 준수해 안전하게 관리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폴 블루스틴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 펠로도 “한국처럼 민주적 지배가 자리 잡은 나라에서 개인의 계좌를 정부가 마음대로 엿볼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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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민 기자

◆원화 스테이블코인, 수요처 있을까=문제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법제화해도 수요처가 있을지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AA+)보다 낮은 ‘AA급’ 한국 국채나 원화 예금 등을 담보로 한다. 담보자산의 신용도·사용처 등을 보면 수요자는 원화보다 달러를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 원화 가치는 북한과의 군사적 긴장, 비상 계엄·탄핵 등 대내외 정치 불안에도 취약하다. 김민승 코빗 리서치센터장은 “암호화폐 거래소인 코인베이스에서 서클을 사면 연 4.7%의 이자를 준다”며 “원화 예금보다 더 많은 이자를 주면 한국에서도 원화보다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선택하는 사람이 생겨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 8월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원화 스테이블코인 수요에 대해 “동남아시아 지역에 있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이 역시 막연한 기대에 가깝다는 지적도 있다. 임일섭 예금보험공사 예금보험연구소장은 “스테이블코인은 달러를 좀 더 편리하게 써보자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라며 “K팝·K뷰티 등 국내 수출 상품을 원화 스테이블코인으로 결제하는 일은 현실에서 일어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경쟁력 있는 IT 상품과 인프라를 활용하면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활성화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삼성전자의 갤럭시 스마트폰에 원화 스테이블코인 애플리케이션(앱)을 기본 탑재하고, 네이버·카카오 등 메신저 플랫폼도 동원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반론도 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수요는 자연스럽게 창출되는 것이지, 억지로 활성화한다고 늘어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삼성전자도 이런 아이디어에 대해 “전혀 검토한 적이 없다”고 일축했다.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실생활 깊숙이 침투할 것이란 걱정 자체가 기우일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고경철 한국은행 전자금융팀장은 “식당·마트·미용실 등 실생활 현장에서 달러 스테이블코인 가격까지 모두 표시하고 살아가는 상황이 펼쳐질지는 상당히 많은 가정이 필요한 얘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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