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고향이 일본에 넘어갔다…부모가 권한 충격 영화 '팔백장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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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차례 중국의 맛
1936년의 중국 여행에 관한 내 기억은 많지 않다. 내가 아는 것은 대개 어머니에게 들은 것이고 타이저우에 있을 때 삼촌이 찍어준 사진 몇 장이 보탬이 되는 정도다. 싱가포르, 홍콩, 상하이 같은 도시들의 모습이 어렴풋이 남아있고, 큰 여객선에 탄 기억이 있다. 하지만 타이저우까지 어떻게 갔는지도 기억나지 않고, 친척들 많이 찾아간 것 외에는 거기서 무엇을 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조부모님이 나를 보고 얼마나 기뻐하셨는지, 친척들 앞에서 내 행실이 얼마나 얌전했는지 어머니가 말씀해주셨다. 제사 지내는 중 내가 사촌형 등에 올라탔던 난처한 장면 하나만 빼고. 할아버지는 나무라지 않으셨으나 어머니는 내 버릇을 잘못 들인 것 같아서 너무 죄송했다고 하셨다.
그 일을 여기 적는 것은 그 후 어머니가 아버지 가문에 관해 아주 많은 것을 이야기해 주시게 된 한 가지 이유였기 때문이다. 우리 집이 훌륭한 가문이라는 사실을 내게 이해시키려고 단단히 결심하셨다. 아버지는 가문이나 인물에 관한 이야기를 일체 않으셨다. 우리 집안이 어디에서 왔는지, 북중국 시절에 어떤 조상들이 계셨는지, 증조부 대에 남쪽으로 옮겨온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가르쳐주는 것은 어머니의 몫이었다. 그와 반대로 어머니 집안에 관해서는 별로 말씀이 없으셨고, 오랜 후에야 외가의 유래를 조금씩 알게 되었다.
어머니는 부모님 결혼이 점잖은 집안 사이의 중매결혼이었다는 정도만 말씀해주셨다. 나는 중매결혼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고, 지금은 젊은이들이 연애결혼을 한다는 사실을 훨씬 뒤에야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부모님이 어떻게 서로에게 맞춰주고 사랑과 존경을 나누며 살게 되셨는지 궁금한 마음이 들었다. 만사가 사랑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고 사랑이 결혼 후에 계속해서 키워질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이로부터 내 마음속에 싹텄다.
아버지는 근무시간이 길었고 먼 곳 학교들을 시찰하는 출장도 많았다. 보통 날은 저녁 식사 때에야 아버지를 뵈었고 식사 후에 내게 기초 중국어를 가르쳐주신 다음 붓글씨 쓰는 것을 내게 보여주셨다. 이따금 시내 친구분 서점에 나를 데려가기도 하셨다. 중국어 아동도서와 영어 어린이잡지를 사주셨고 어머니에게 줄 시사잡지를 사셨다. 그 길에 영국 일요신문도 가져오셨다. 어머니가 시사잡지를 얼마나 애타게 기다리셨는지 인상이 남아있다. 중국 사정, 특히 중국 내전과 중국 중부와 남부에 대한 일본의 침공 상황을 알려드리는 잡지였다.
아버지는 내 영어가 나아지고 있다는 선생님들 말씀을 반가워하시면서도 내게 영어를 쓰신 일이 없었다. 교육청에서 영국인 관리들과 함께 일하시는 것을 보면 영어를 쓰시는 것은 알겠는데, 얼마나 잘 쓰시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아버지가 아주 정확한 영어 작문을 하시고 영어의 문법과 어휘를 잘 확보하고 계신 사실을 후에 알게 되었지만 내게 영어로 말씀하신 일이 없고 대화 중에 영어 단어를 쓰는 일도 거의 없었다. 후에 말라야대학의 내 친구들을 만나 잠깐 이야기를 나누실 때 그분이 영어를 잘하신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아버지를 따라 서점에 갈 때는 횡재하는 기분이었다. 아버지가 두 개의 복잡한 언어세계 속에 편안하시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그분의 영어세계가 또 두 개 영역으로 갈라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직장에서의 필요를 위한 공적 영역이 있고, 영국의 문예 사조를 따라가는 사적 영역이 있었다. 내가 당시 이해할 수 있던 것보다 훨씬 복잡한 인물이 아닐 수 없었다. 지금에 이르러서도 그분 생각을 할 때마다 그분 삶의 여러 측면을 내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1937년 여름, 부모님이 걱정하시던 일이 현실로 나타났다. 일본과 중국 사이에 본격적 전쟁이 시작되었다. 베이징 근교의 노구교(盧溝橋) 사건 후 일본군은 상하이를 공격하고 뒤이어 수도 난징으로 쳐들어가 많은 시민을 학살했다. 중국군이 일본군을 당해내지 못할 것은 예견된 일이었고, 국민당 지도자 장제스(蔣介石)는 내륙 깊이 충칭으로 후퇴했다. 부모님은 일본군이 곧 석권할 장강 북쪽의 고향 도시들이 걱정되었다.
더 나쁜 소식은 국민당 지도자의 한 사람인 왕징웨이(汪精衛)가 난징으로 돌아와 일본과 협력하에 또 하나의 정부를 세운 것이었다. 괴뢰정권에 불과한 이 정부가 고향 도시들을 이제 통제하게 되었다. 부모님이 할 수 있는 일은 계속 송금하는 것뿐이었고 다행히 송금은 막히지 않았다. 그러나 가족들이 일본 괴뢰정권 아래 살게 된 것은 부끄러운 일이었고 두 분은 누구에게도 이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왕징웨이의 성(汪)이 우리 것과 다른 것임을 내게 강조하시고 누구든 묻는 사람이 있으면 이 점을 분명히 하라고 하셨다.
이 전쟁 때문에 학교에서 내가 중국인이라는 사실을 갈수록 더 의식하게 되었다. 부모님이 가족과 친지들 사이에서 이야기하는 내용과 학교 선생님과 학생들 사이에서 이야기하는 내용이 그렇게 다를 수가 없었다. 선생님들은 영국과 대영제국을 둘러싼 유럽의 긴장에 관해서는 이야기를 해도, 중국의 전쟁에 관해서나 그 전쟁이 이 지역의 우리에게 미칠 영향에 관해서는 아무 이야기가 없었다. 중국계 친구들조차 전쟁 이야기를 하는 일이 없었다.
부모님은 중국 상황을 면밀히 주시하며 시내 중국인들이 시작한 전쟁 지원 모금 활동을 응원했다. 어머니는 모금 행사를 벌이는 여성 조직에 가입했다. 어머니는 가끔 행사에 나를 데려가기도 하셨는데, 애국심이 열정적으로 표현되는 곳이었다. 그런 경험을 통해 나는 고국이 몰리고 있는 전쟁 상황에서 나타나는 민족주의 요소들에 접하게 되었다. 중국과 관계된 모든 것에서 느끼는 체념과 분노와 저항의 감정들. 그 혼합물은 오랫동안 나를 떠나지 않았다.
중국 민족주의자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페락주 중국인학교들 이야기를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하신 일도 있다. 중국인사회의 바닥에 깔린 혼란을 말씀하시기도 했다. 국민당 당원 중에 장제스 편도 있고 왕징웨이 편도 있다는 것이었다. 공산당을 비롯한 야당 지지자들 중에도 ‘구국운동’의 방향에 상당한 이견이 있다고 하셨다. 부모님 말씀을 들으면서도 나는 지역 중국인들 사이의 미묘한 차이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대로 내게는 민족주의 정치에 대한 입문 과정이 되었다. 두 분 대화를 들으면서 내 인생의 뒷부분에서 모습을 나타낼 정치관의 기초가 놓이고 있었다는 것은 당시 깨닫지 못하고 있던 사실이었다.
중국 영토 내의 일본과 전쟁은 여러 해 계속되었다.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고 노는 즐거운 시간에는 그 전쟁이 별로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그 전쟁이 남의 전쟁이 아니라는 느낌이 드는 것은 집에서 부모님이 나누는 이야기를 들을 때뿐이었다.
1937년 이후 부모님은 나를 영화관에 데려가 애국영화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몇 편이나 보았는지도 기억나지 않지만 1938년에 본 한 편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팔백장사(八百壯士)〉란 제목의 그 영화는 1937년 말의 상하이전투가 퇴각으로 끝나는 과정을 그린 것이었다. 목숨을 걸고 창고건물 하나를 지키는 병사들의 용감한 모습에 나는 모든 관중과 함께 환호했다.
그러나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었다. 생존자들이 강을 건너 피신해야 하는데 영국군이 다리를 지키고 있었다. 강 건너편에서 영국군은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인지 아버지께 여쭤보았고, 아버지의 대답이 내 중국근대사 공부의 출발점이 되었다. 영국은 일본과 교전 중이 아니어서 중국을 도와줄 수 없었다는 것이 아버지의 설명이었다. 영국이 할 수 있었던 것은 강 남쪽 자기네 조계 가까운 곳에서의 전투를 막는 것뿐이었다고 하셨다.
아버지가 더 설명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어머니께 여쭤보았다. 어머니는 역사가가 아니라도 잡지를 열심히 읽고 계셨기 때문에 두 차례 아편전쟁과 중국의 몰락 과정에서 영국의 역할에 대한 중국식 표준 설명을 해주실 수 있었다. 중국인학교에 다녔다면 들을 수 있었을 설명이었다. 말라야 교과서가 아니라 영국인에 대한 자기네 생각을 학생들에게 알려주고 싶어 하는 선생님들이나 집에서 부모님이나 형님들에게 들은 것을 전해주는 친구 학생들을 통해 알게 되었을 것이다. 부모님과 친지들 사이의 대화에서 조금씩 들은 대목들은 있어도, 서양 제국주의가 중국을 굴복시킨 과정에 대한 일관된 설명은 들은 적이 없었다.
[Wang Gungwoo, 〈Home is Not Here〉(2018)에서 김기협 뽑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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