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라라랜드 주인공 된 기분"…다시 살아난 서울 재즈 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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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년 재즈클럽 ‘야누스’의 두 얼굴 이주엽·말로

‘야누스’가 부활했다. ‘한국 최초의 재즈 가수’ 박성연(1943~2020)이 1978년 신촌에 문을 연 유서 깊은 재즈클럽이다. 1976년 중국계 미국인이 창업한 이태원 ‘올댓재즈’가 있지만, 한국인 뮤지션이 직접 설립하고 운영한 ‘토종 재즈클럽’은 야누스가 최초다. 재즈 불모지에서 늘 존폐 위기였지만 혜화동, 이대 후문, 청담동, 서초동, 압구정동을 전전하며 뮤지션들의 버팀목 구실을 해왔다. 2015년 박성연이 쓰러진 후 후배 가수 말로가 뜻을 이었으나, 팬데믹의 타격을 끝내 극복 못하고 지난 5월 문을 닫았다.

한국 재즈사의 한 페이지가 넘겨졌고, 새 페이지가 지난달 광화문에서 열렸다. “서울의 블루노트로 거듭나겠다”며 야누스를 되살린 건 작사가이자 프로듀서 이주엽 JNH뮤직 대표. 공동대표로 함께 하는 말로를 비롯해 수많은 뮤지션들이 언제든 연주할 수 있는 ‘친정’을 되찾은 셈이다. 때마침 6~7년 전 찍어놓은 다큐멘터리 영화 ‘디바 야누스’도 22일 개봉한다. 47년간 꺼질 듯 이어져 온 야누스엔 수호신이 살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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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연의 ‘야누스 정신’을 이어받아 재즈 뮤지션의 자유로운 음악을 수호하고 있는 재즈 보컬 말로(왼쪽)와 음악 프로듀서 이주엽. 최기웅 기자

 ‘바람이 부네요. 춥진 않은가요. 밤 깊어 문득 그대 얼굴이 떠올라….’

바닥 모를 깊이가 느껴지는 어른의 노래. 박성연이 투병 중이던 일흔셋에 녹음한 ‘바람이 부네요’다. 2019년 삼성자동차 광고에서 박효신과 함께 이 노래를 불러 비로소 대중에게 알려진 ‘디바’는 이듬해 타계했지만, 그의 영혼과도 같은 클럽 야누스는 다시 살아났다.

지난달 찾은 광화문 야누스는 재개관 페스티벌이 한창이었다. 북적이는 손님들 사이에 가수 정미조도 섞여 있었다. 재즈 싱어는 아니지만 2016년 컴백 음반부터 줄곧 제작해온 이주엽 대표와의 인연으로 무대에 섰다. ‘개여울’ ‘귀로’ 같은 익숙한 곡들도 재즈 뮤지션들의 라이브 연주와 함께하니 색다르다. “재즈 공연은 매일 밤이 초연”이라는 영화 ‘라라랜드’의 대사를 실감한 밤이었다.

“재즈는 시간을 새롭게 만드는 힘이 있어요. 같은 곡을 연주해도 늘 새롭게 창조되니, 이 공간의 매 공연이 세계초연인 거죠. 공간 운영이 처음이라 힘들지만, 관객들 행복한 표정을 보면 특별한 시간을 선물했다는 생각에 모든 고생을 잊습니다.”(이) “어제 만난 사람도 오늘 또 할 얘기가 있듯, 재즈는 주어진 시간 속에서 새롭게 느껴지는 것을 계속 얘기하는 장르예요. 뮤지션도 그런 현장감이 좋아서 재즈를 하죠.”(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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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션들 뜻 펼친 ‘한국 재즈의 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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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누스에서 활동한 1세대 재즈뮤지션들. 왼쪽부터 신동진·김수열·강대관·박성연·신관웅·이판근.

야누스의 두 얼굴, 이주엽과 말로는 2002년 처음 만났다. 신문기자 출신인 이 대표가 틈틈이 써놓은 노랫말 한뭉치에 말로가 곡을 붙였고, ‘프로듀서 겸 작사가 이주엽’의 데뷔작이자 말로의 3집 ‘벚꽃지다’ 탄생 이후 줄곧 함께 음악을 해 왔다. “외부자였던 내게 말로가 음악적 허브가 돼줬다”는 이 대표의 말처럼, 박성연과의 인연도 말로로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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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 시절 드러머 유복성의 공연 모습. [중앙포토]

“재즈 뮤지션들은 클럽을 돌아다니는데, 1996년 무렵 선생님의 부름을 받고 주기적으로 무대에 섰어요. 10년쯤 후부터는 페이도 안 받고 한 식구처럼 지냈죠. 병이 악화되셨을 땐 저희 집에 모신 적도 있고요. 2012년 월세를 못내 LP 2000장을 처분하실 때 저를 불러 소주를 드시며 펑펑 우셨던 기억이 나네요.”(말로) “그때 사정을 듣고 ‘땡큐 박성연’ 공연을 제작하면서 본격적인 인연을 맺었어요. 후배들의 헌정공연이었는데, 박 선생이 새빨간 드레스를 입고 앵콜곡을 부르셨죠. ‘가장 화려한 시간에 입으려고 아껴둔 드레스’라면서요. 2018년 40주년 창립일에 맞춘 ‘박성연의 마지막 라이브’도 제가 홍보했고, 주요 일간지에 크게 실리는 바람에 삼성자동차 광고를 찍게 됐죠. 생전 마지막 프로젝트의 출연료로 유작 앨범을 만들어드리겠다는 약속을 못지켰는데, 그 숙제를 야누스 운영으로 안기신 것 같아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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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이주엽 대표가 제작한 후배들의 헌정공연 ‘땡큐 박성연’ 무대에서 앵콜곡을 부르는 박성연. [사진 JNH뮤직]

야누스의 경영은 늘 어려웠다. ‘한국 재즈의 성지’와 같은 브랜드에 프리미엄은 없었던 걸까. “선생님은 자신이 뮤지션이다 보니 장사를 위해 타협하지 않았어요. 저에게 맡길 때도 야누스 정신을 훼손하지 않아야 한다는 게 조건이었죠. 장사 되는 날만 밴드를 부르는 클럽도 있지만, 뮤지션에게 클럽은 서로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의미거든요. 클럽이 없어지면 내 음악을 할 장소가 없어지니 페이가 적어도 연주를 하고, 그걸 알기에 클럽은 적자를 감수하고 매일 기회를 열어놓습니다. 그런 야누스 정신을 이해하는 사람만이 야누스를 맡을 수 있죠.”(말로) “재즈클럽은 어려운 게 정상이에요. 개관 페스티벌 때 북적인 건 초반 컨벤션 효과였을 뿐, 이제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왔죠.(웃음) 재즈 자체가 대중적이진 않지만, 모르더라도 뭔가 멋있는 기운이 있잖아요. 누군가 마음을 열고 새로운 경험을 하길 원하는 공간이 야누스예요.”(이)

K팝, 트로트 등 쏠림현상이 심한 한국 대중음악계도 이제 ‘재즈 불모지’ 수준은 아니다. 1990년대 드라마 ‘사랑을 그대 품안에’에서 재즈클럽이 차인표·신애라 러브스토리의 배경이 되면서 재즈가 로맨틱한 신문물로 인식되기 시작했고, 2004년 시작된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은 아시아 최대 재즈 축제로 성장했다.

하지만 야누스는 손님 보다 뮤지션, 음악 그 자체를 위한 공간이다. 입구에 야누스의 역사를 소개해 놓은 것도 “누군가의 삶을 통째로 바친 공간이란 걸 보여주고 싶어서”(이)라는데, 그 이야기는 영화 ‘디바 야누스’에 빼곡하다. 배급사를 못 찾아 수년간 창고에서 잠자던 영화가 지금 개봉하는 것을 두고 이들은 “야누스 귀신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귀신이 있나” 오픈과 맞물린 ‘디바…’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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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보컬 김준, 웅산과 함께 무대에선 박성연(왼쪽).

영화는 박성연·최선배 등 1세대와 재즈평론가 황덕호, 말로와 웅산 등 현역 뮤지션들의 인터뷰를 통해 K재즈의 역사를 돌아볼 수 있는 귀중한 기록이다. 특히 야누스에서 활동한 주요 뮤지션으로 언급된 작곡가 이판근은 사랑과 평화, 봄여름가을겨울 등 장르 불문 수많은 제자를 길러낸 ‘한국 재즈의 아버지’다.

한국의 재즈 뮤지션은 1950년대 미8군에서 탄생했다. 60년대 나이트클럽에 진출했지만, ‘고고클럽’으로 트렌드가 옮겨가면서 설자리를 잃은 1세대는 거의 독립운동가 정신으로 무대를 이어갔다. 그들에게 무대를 열어준 야누스는 임시정부같은 울타리였던 셈이다. “재즈는 변화무쌍하기 때문에 아는 노래도 따라부를 수 없고, 그래서 마이너 장르일 수밖에 없죠. 그럼에도 우린 그걸 하겠다는 사람들이고, 야누스는 내 음악을 아무 간섭없이 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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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야누스 40주년 기념 공연 당시 휠체어 투혼을 발휘한 박성연. [사진 디스테이션]

사실 긴 세월 대중음악계 외인부대로 존재해온 야누스 자체가 이야기보따리다. 2016년 병약한 박성연이 ‘바람이 부네요’를 녹음할 때 10여 명의 여자 후배들이 백보컬로 서포트하는 모습은 영화의 명장면이다. 40주년 공연 모습도 경이롭다. 옷속으로 수액을 매달고 휠체어에 앉아 현란한 리듬의 스탠더드 재즈를 소화하는 ‘디바’의 투혼이라니. 피날레 ‘My Way’를 부를 땐 눈물바다가 됐다. “평생 지켜온 야누스에서 노래하는 마지막 순간이니까요. 선생님 18번인 ‘Everytime We Say Goodbye’를 부를 때도 다같이 울었습니다.”(이) “저는 슬프거나 그러지 않고 좋았어요. 물론 손님들은 울려고 오신 것 같았지만요.”(말로)

‘광화문 야누스’에도 탄생비화가 없을 리 없다. “10년간 함께 버텨온 홍세존 에반스 대표가 야누스를 끝내 접으면서, 이주엽 대표가 맡는다면 악기부터 브랜드 가치까지 모든 걸 조건없이 인계하겠다고 하셨죠. 홍 대표의 ‘희생’에 이 대표가 ‘구국의 결단’으로 응답했고요.”(말로) “제가 안하면 큰일 나겠더군요.(웃음) 거액의 대출을 끼고 무리를 했죠. 사실 전부터 막연하게 라이브클럽을 꿈꿨고, 광화문에 열고 싶었어요. 광화문은 특별한 품격을 가진 동네잖아요. 대기업 본사와 언론사가 밀집한, 돈과 정보가 가장 많은 곳이죠. 비즈니스호텔에 묵는 외국인 투숙객이 서울의 밤문화를 향유할 수도 있고요. 적당한 공간이 없어서 포기하려던 찰나 숨어있는 아지트같은 이곳을 만났어요. 보도자료 돌리러 다니던 시절 주차하던 곳인데, 운명인가 싶어서 보자마자 계약했죠. 열고나니 제가 ‘라라랜드’ 세바스찬이 된 기분입니다.”(이)

이 대표는 어려서부터 음악을 마냥 좋아했다. 마흔 즈음에 ‘인생의 사춘기’가 찾아와 삶의 허망함을 이길 수 있는 일을 찾다가 음악업계에 투신했다. 말로 외에도 최백호·정미조·전제덕 등의 음반을 만들며 그가 추구하는 건 ‘멋진 어른의 음악’이다. “힘들 때마다 노래로 견뎠던 기억으로 무작정 들어와 수업료를 엄청 냈죠. 고비마다 조금씩 도와주는 사람이 나타나 여기까지 흘러왔어요. 또 새로운 분기점으로 클럽을 열게 됐는데, 자유로운 뮤지션들의 음악이 고립되지 않고 좀더 많은 사람이 접하게 하는 게 제 인생의 임무인 것 같아요. 관객에게도 여기서 만나는 멋진 재즈가 새로운 시간을 열어 줄거라 믿고요. 경제적으로 환산되지 않는 문화의 힘이고, 돈 몇백 더 버는 것보다 풍요로운 삶이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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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 부활한 야누스는 ‘서울의 블루노트’를 꿈꾸며 매일 라이브 공연을 연다. [연합뉴스]

47년의 경영난 끝에 광화문에 터를 낸 야누스가 ‘서울의 블루노트’가 될수 있을까. “세계 시민들이 격의없이 어울리는 자리가 됐으면 해요. 음악적 자유 안에선 인종·성별·나이가 아무 상관도 없어지거든요. 어제도 빅밴드 공연에 20대부터 60대까지 하나가 되는 걸 목격했는데, 다른 공연장에선 볼 수 없는 광경이죠. 제가 운영할 뿐, 야누스는 우리가 공유해야 할 문화자산이라 생각합니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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