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마가 핵심 농촌서도 "왕은 없다" 시위…트럼프, 눈 깜짝 않는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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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주인은 국민입니다. 왕은 없습니다.”
18일(현지시간) 오전 9시 워싱턴에서 차로 40분여 떨어진 메릴랜드의 시골 마을 미들타운에서 열린 ‘왕은 없다(No Kings)’ 시위를 주도한 스테파니 라트코브스키는 “동맹국 한국에서 여기까지 와줘서 고맙다”며 이렇게 말했다.

18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차로 40여분 떨어진 메릴랜드의 시골 마을 미들타운의 중심가에 백여명의 시위대가 트럼프 대통령에 반대하는 ‘노 킹스(No Kings)’ 집회를 열었다. 시위를 주도한 스테파니 라트코브스키는 본지에 “트럼프의 핵심 지지 지역인 농촌까지 시위가 확대된 것은 변곡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메릴랜드=강태화 특파원
‘마가’ 핵심 농촌으로 확대된 “노 킹스”
토요일 이른 아침이었지만 미들타운 중심가엔 백여명의 시위대가 모였다. 지나가는 차들은 시위를 응원하는 경적을 울렸고, 그때마다 환호성이 나왔다. 라트코브스키는 “시위가 확대된 점 못지않게 이곳 농촌 지역에도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였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며 “트럼프의 권위주의에 반대하고 ‘권력이 국민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당연한 말을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이제 풀뿌리처럼 더 거세질 것”이라고 했다.

18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차로 40여분 떨어진 메릴랜드의 시골 마을 미들타운의 중심가에 백여명의 시위대가 트럼프 대통령에 반대하는 ‘노 킹스(No Kings)’ 집회를 열었다. 시위를 주도한 스테파니 라트코브스키는 본지에 “트럼프의 핵심 지지 지역인 농촌까지 시위가 확대된 것은 변곡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메릴랜드=강태화 특파원
실제 이날 미국 50개 주에서 진행된 ‘노 킹스’ 집회는 지난 6월 첫 시위에 비해 700여곳 늘어난 2700여곳에서 열렸다. 추가된 지역의 상당수는 농촌이다. 농민들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강성 지지층인 ‘마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의 핵심으로 꼽힌다.
이날 전국 단위의 시위를 조직한 진보 단체 50501 소속 헌터 던은 뉴욕타임스(NYT)에 “이날 집회는 장기적 운동의 시작을 의미한다”며 “시민들은 시위가 마라톤이 될 거란 걸 알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핵심 지지층의 이탈 가능성을 기대하는 말이다.
백악관 앞 수만 명 운집…‘조롱 복장’ 눈길
워싱턴 백악관과 국회의사당을 잇는 왕복 6~8차선 도로엔 수만 명의 시위대가 운집했다. 워싱턴의 중심 펜실베이니아 애비뉴엔 “왕은 없다”는 구호와 함께 ‘불법 대통령’, ‘인종주의자’라는 문구를 비롯해 트럼프 대통령을 ‘나치’로 표현한 팻말도 눈에 띄었다.

현지시잔 18일,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왕은 없다' 시위에서 사람들이 의회 앞에 운집해 트럼프 대통령을 반대한다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EPA=연합뉴스
자신을 상담사라고 밝힌 크리스 레이보이츠는 “매주 고객들과 ‘잘 지냈냐’는 말 대신 ‘잘 생존했느냐(survive)’고 인사할 정도로 정치가 스트레스가 됐다”며 “이날 집회가 트럼프의 거짓말에 속고 있는 맹목적 지지자들에게 경종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최근 연방 정부에서 퇴직했다는 폴 존슨(가명)은 “30년 이상 ‘미국을 위해 헌신한다’는 자부심으로 일했는데 갑자기 쫓겨났다”며 “트럼프가 ‘셧다운’을 핑계로 자유, 민주주의, 인권 등 미국의 핵심 가치를 해체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없었다”고 했다.
현장에선 비폭력과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노란색 옷과 두건이 눈에 띄었다. 일본 만화 ‘원피스’에 나오는 해적 깃발도 보였다. 트럼프에 반대하는 아시아 청년들을 상징한다. 또 많은 사람이 개구리, 공룡, 다람쥐, 외계인 등 우스꽝스러운 복장으로 집회에 참여했다. 이민자를 싸잡아 범죄자로 규정하고 무차별 단속을 벌이는 이민세관단속국(ICE)을 조롱하는 의미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18일(현지시간) 열린 '노 킹스' 시위 중 시위대가 샌프란시스코 시내를 행진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뉴욕·LA·시카고…해외에서도 “노 킹스”
뉴욕에선 맨해튼 타임스퀘어 앞 도로에 10만여명이 운집했다. 동부 워싱턴과 뉴욕을 비롯해 보스턴·애틀랜타 등 동부에서 시작된 시위는 시차를 두고 시카고·휴스턴 등 중부, 로스앤젤레스(LA) 등 서부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대서양을 건너 프랑스와 독일, 영국, 스페인 등에서도 “나는 어떤 왕에도 충성을 맹세하지 않는다”는 문구가 내걸렸다.

현지시간 18일 시애틀에서 열린 '왕은 없다' 시위 현장에 트럼프 대통령의 이민정책 등에 반대하는 구호가 낵걸렸다. AP=연합뉴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주방위군 투입을 지시한 시카고에선 ‘시카고에서 손을 떼라(Hands off Chicago)’, ‘ICE 폐지’, ‘이민자 환영(Immigrants are welcome here)’ 등의 문구를 든 사람들이 많았다. 트럼프의 MAGA를 ‘미국을 다시 좋게 만들자(Make America Good Again)’로 바꾼 구호도 등장했다.
이날 시위를 주도한 단체 중 하나인 인디비저블(Indivisible)의 공동 창립자 에즈라 레빈과 리아 그린버그는 성명을 통해 “왕은 없다는 구호야말로 가장 미국적인 정신”이라며 “수백만 명의 미국인이 권위주의를 거부하고, 우리의 민주주의는 한 사람의 야망이 아닌 국민의 것이라는 점을 세상에 일깨워줬다”고 주장했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군 투입을 지시한 시카고에서 열린 '왕은 없다' 시위에서 "시카고에서 손을 떼라"는 문장을 앞세워 시위대가 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백악관 “누가 신경 쓰나?”…공화 “안티파 등장”
그러나 백악관은 이날 집회에 대한 논평 요청에 “누가 신경이나 쓰나”라는 짧은 답변을 내놨다. 자신에 대한 사소한 비판에 대해서도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즉각 반박해온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집회와 관련한 별도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미국 시애틀에서 18일(현지시간) '왕은 없다' 시위 현장에서 시위대가 쇠사슬과 죄수복을 입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복장을 한 채 행진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그는 전날 폭스비즈니스와의 인터뷰에서 민주당이 셧다운 종료 협상을 이번 시위와 연계하며 더 지연시키고 있다고 주장하며 “어떤 사람들은 그것(예산 협상)을 ‘킹 (시위)’ 때문에 (정부 운영 재개를) 미루고 싶다고 말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나를 왕으로 지칭하고 있지만, 나는 왕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무시 전략’을 쓰는 트럼프 대통령 대신 공화당이 전형적인 색깔론을 펼쳤다. 공화당 소속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은 전날 회견을 자처하고 대규모 시위를 “미국 증오 집회”로 규정하며 “시위대는 하마스 지지자들과 안티파(반파시즘 담체), 마르크스주의자들이거나 돈을 받고 나온 전문 시위꾼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엑스에 “시위는 미국의 본질에 대한 확증이다. 우리는 민주주의 국가다”라고 썼다. 진보진영의 대부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워싱턴 집회에 참석해 “위기에 처한 미국은 결국 국민이 통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지시간 18일,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메트로폴리탄 구치소 밖에서 '왕의 없다' 시위에 참석한 시위대가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콘크리트…공화당 성향 90% “트럼프 지지”
트럼프 대통령이 전국적으로 확대되는 반대 시위에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배경은 그의 강성 지지층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NYT·시에나대의 여론조사(9월 22~27일·미국 유권자 1313명)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은 43%를 기록하며 취임 후 최저치를 보였다. 역대 대통령들과 비교해도 확연히 낮다.

현지시간 18일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왕은 없다' 시위 현장에 수만명의 시민들이 운집했다. AFP=연합뉴스
그런데 공화당 지지 성향의 유권자들의 90%는 트럼프를 지지한다고 답했다. 95%가 트럼프 대통령을 불신한다는 민주당 지지자와는 완전히 엇갈렸다. 인종별로는 백인의 52%가 트럼프 지지를 표했지만, 비백인의 지지율은 25%였다. 성별로는 남성의 50%가 트럼프 지지를, 여성 유권자는 37%가 트럼프를 지지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트럼프 정책이 개인에게 도움을 줬느냐’는 질문에 대해선 공화당 지지자 중 51%만 ‘그렇다’고 응답했다. 트럼프의 지지율 90%와는 차이가 난다. 백인의 긍정 답변의 비율도 28%에 그쳤다. 특히 ‘정치가 국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해결 능력이 없다”는 답변이 64%를 기록했다. 정치의 기능이 상실됐다는 이러한 평가는 민주당(67%)과 공화당 지지층(57%) 사이에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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