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나이팅게일 꿈꾸던 소녀…아버지 따라 경찰제복 입고 시민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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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는 게 쉽지는 않았죠. 하지만 더 늦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과감히 사직서를 냈죠. 어릴 적 꿈을 이뤘다는 게 아직도 믿기지 않을 때가 있어요”

대전유성경찰서 형사과 유민영 순경이 2022년 6월 중앙경찰학교 교육을 마친 뒤 아버지와 함께 찍은 기념사진. [사진 유민영 순경]
대전유성경찰서 형사과에 근무 중인 유민영(38·여) 순경은 제80주년 경찰의 날을 앞두고 지난 17일 가진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서울의 빅5 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던 그는 4년 전 경찰관이 되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사직서를 제출했다. 12년간 몸담았던 직장이었지만 오랜 꿈이었던 ‘경찰관’이 되는 길을 선택하기 위해서였다. 2021년 12월 간호사를 그만둔 그는 이듬해 1월 '의료사고 특채'를 통해 합격해 중앙경찰학교에 입교했다.
어릴 적 아버지 모습 보며 경찰관 꿈 키워
유 순경은 경찰관이던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어릴 적부터 경찰이 되겠다는 꿈을 키웠다. 다른 친구들과 달리 커다란 아버지의 제복을 입고 모자를 써보는 게 일상이었다. 대학 진학을 앞둔 시점 유 순경의 가족은 그가 경찰관이 되는 것을 만류했다고 한다. 특히 아버지는 “경찰관은 고된 직업이다. 교사나 은행원, 간호사 등 여성으로 비교적 안정적인 직업을 택했으면 좋겠다”고 그를 설득했다. 결국 유 순경은 부모의 뜻을 따라 간호학과에 입학했다.
대학을 졸업한 유 순경은 서울의 대형병원에 취업했다.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큰 병원이다. 간호사로 묵묵히 일하던 유 순경에게 인생의 변화를 가져온 건 언니의 결혼이었다. 형부의 직업은 경찰관. 마음속에만 묻어 놓았던 경찰관의 꿈이 형부를 통해 다시 깨어났다고 한다.

아버지를 따라 경찰관의 길을 걷고 있는 대전유성경찰서 유민영 순경이 신분증을 들어보이며 환하게 웃고 있다. 신진호 기자
공교롭게도 당시 유 순경은 초등학교 친구로부터 “경찰이 의료사고 특채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의료분야 경험자를 대상으로 시험을 치러 경찰관으로 채용하는 방식이었다. 그때부터 또다시 고민이 시작됐다. 12년 간호사 경력을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더구나 자격 요건은 40세 미만. 30대 중반을 바라보는 유 순경 입장에선 기다릴 시간이 많지 않았다. 어릴 적 꿈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던 유 순경은 ‘앞으로 이런 기회가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판단, 과감하게 도전장을 냈다.
12년 근무 간호사 사직 뒤 경찰관 길 들어서
공개경쟁을 통해 합격한 그는 2022년 1월 꿈에 그리든 경찰 제복을 입고 중앙경찰학교에 입교했다. 6개월간의 교육을 마친 그가 맨 처음 배치된 곳은 대전유성경찰서. 지구대에서 6개월간 의무 복무를 마친 뒤 형사과로 이동한 그는 전공을 살려 형사팀과 실종팀 등에서 근무했다. 실종팀에선 주로 치매 노인과 장애인, 아동·청소년 관련 사건이 많은 데 간호사 경력이 수사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한다.
간호사로 오래 근무한 유 순경은 각종 사건·사고 때 현장에 출동하는 게 낯설지 않았다. 경찰학교에서 6개월간 교육을 받지만, 대부분의 신입 경찰관들은 시신이나 다친 사람을 직접 목격하면 당황하고 접근하기 쉽지가 않다. 하지만 유 순경에겐 일상적인 일 가운에 하나에 불과했다. 간호사 시절엔 위급한 상황을 더 많이 경험했기 때문이다.

대전유성경찰서 유민영 순경이 서울의 한 대형병원 간호사로 재직하던 당시 신분증. [사진 유민영 순경]
유 순경은 부서 내에서 ‘고참 막내’로 통한다. 의료 경력을 통해 경찰관이 된 탓에 동기들보다 나이가 열 살 정도 많아서다. 계급으로는 막내지만 사회경력은 고참급인 유 순경에게 선배들의 자문도 끊이지 않는다. 수사 과정에서 필요한 의무기록서와 진단서 분석은 물론 동료 경찰관의 건강검진결과서 평가도 유 순경 몫이다. 그는 앞으로 과학수사나 의료사고·마약수사팀에서 근무해보고 싶다고 했다. 퇴직한 아버지의 후배이자 형부의 동료 경찰관으로 명예를 지키는 데도 기여하고 싶다는 게 그의 바람이다.
"아버지의 후배로 명예 지킬 것"
유 순경은 “간호사와 경찰 모두 국민이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직업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며 “다만 경찰관이 되고 나서는 더 넓은 세상으로 나왔고 시야가 넓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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