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공작과 여론조작의 시대...'진실은 무엇인가' 묻는 영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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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굿뉴스'는 1970년 요도호 사건을 극화한 블랙 코미디다. 사진 넷플릭스
하이재킹 당한 여객기를 지상에서 또 다시 하이재킹했던 영화 같은 사건이 있었다.
영화 '굿뉴스' 변성현 감독 인터뷰#요도호 사건 극화한 블랙 코미디
1970년 일본 극좌 무장단체 적군파 대원들이 국내선 여객기를 납치해 평양으로 향하던 중, 남한 당국의 위장 작전으로 김포공항에 오인 착륙한 요도호 사건이다. 당시 당국은 김포 공항을 평양 공항처럼 꾸민 뒤, 인민군복을 입은 군인과 치마 저고리 차림의 환영 인파를 동원해 적군파 대원들의 눈을 속였다.
17일 공개된 넷플릭스 영화 '굿뉴스'는 이 사건을 극화한 작품이다.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킹메이커', '길복순' 등에서 감각적인 연출력을 보여준 변성현 감독이 처음 도전한 블랙코미디 영화다.
변 감독의 전작들에 모두 참여한 페르소나 설경구가 작전의 판을 짜는 은밀한 존재 아무개를 연기하며, 작전을 성공시켜 출세하려는 공군 관제장교 서고명 역의 홍경과 호흡을 맞췄다. 아무개를 수하처럼 부리는 중앙정보부장 역의 류승범은 특유의 능글 맞고 비릿한 날 것의 연기로 코미디의 중심을 잡는다.

넷플릭스 영화 '굿뉴스'를 연출한 변성현 감독. 사진 넷플릭스
21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난 변 감독은 "내 장기를 모아서 해보자는 느낌으로 시작한 영화"라며 "공개 전부터 나의 대표작이라 말하고 다닐 정도로 만족감이 크다"고 말했다.
"진실은 간혹 달의 뒷면에 존재한다. 그렇다고 앞면이 거짓은 아니다." 영화는 이런 명언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이는 허구다. 이 말을 남겼다는 트루먼 셰이디라는 인물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변 감독은 이 가짜 명언을 만들어 놓고 구상을 시작했다고 한다.
"지금까지 믿어왔던 것들이 진짜가 아닐 수도 있다는 배신감이랄까요. 알고 보니 명언이 거짓이었다는 엔딩을 먼저 만들어 놓고 각본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영화 '굿뉴스'에서 아무개 역을 맡은 설경구. 그림자처럼 활동하는 군부정권의 하수인으로, 작전의 판을 짜고 여론을 움직이는 역할을 한다. 사진 넷플릭스

영화 '굿뉴스'에서 공군 관제장교 서고명 역을 맡은 홍경. 작전을 성공시켜 출세하려는 욕망을 가진 인물이다. 사진 넷플릭스
가짜 명언을 내뱉는 인물은 서사를 이끌고 가는 아무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는 무고한 사람도 하루 아침에 간첩으로 만들어버리는 군사 정권의 하수인이다. 권력의 입맛에 맞는 사실을 만들고 조작하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일어난 사실, 약간의 창의력, 그리고 믿으려는 의지." 이 세 가지를 결합해 아무개는 사건을 권력에 유리한 방향으로 끌고 간다. 고명은 멋지게 작전을 성공시켜 출세하려는 꿈을 꾸지만, 사건은 뜻대로 흘러가지 않고 결국 낙오병 같은 신세가 된다.
변 감독은 "명언으로 대표 되는 권위를 비웃는 영화"라면서 "서로 대비되는 고명과 아무개 모두 (권력에) 이용 당하는 수많은 사람들 중 일부라는 점에서 사실 같은 처지"라고 말했다.
요도호 사건 기사와 자료를 찾아보고 실제 관제사도 만났다는 그는 "'진실이란 과연 뭔가'란 얘기를 이 사건을 통해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간 겁이 나서 피해왔던 블랙 코미디 장르로 풀어보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그의 연출 의도는 관객이 계속 피식 대면서 보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었다.
"처음부터 계속 웃던 관객들이 인물들이 서로 뒤통수 치는 전개에 '이거 계속 웃어도 되는 거야'란 느낌이 들도록 한 뒤 마지막에 관객 뒤통수를 치려는 욕심이었어요. 그런데 영화제나 시사 때 관객 반응을 보니 빵빵 터지는 순간이 많더라고요. 이 정도면 작전 실패 아닌가 라는 걱정이 들었죠(웃음)."
이기적 군상들이 벌이는 소동극을 관객들이 구경하듯 지켜보게 만들었다는 변 감독은 치열했던 냉전 시기를 배경으로 자기 보신에만 골몰하는 관료주의, 권력의 민낯을 까발린다. 공(功)은 자기 것으로 삼고, 폭탄은 남에게 떠넘기려는 관료들의 모습은 어처구니가 없다.

넷플릭스 영화 '굿뉴스'에서 중앙정보부장 역을 맡은 류승범. 사진 넷플릭스
변 감독은 "신주단지처럼 떠받드는 이념과 배치되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지금도 넘쳐 난다"며 "그들에 대한 냉소와 허술하고 뻔뻔하기 짝이 없는 관료들의 행태를 풍자하려 했다"고 했다.
"후반부에 고명이 차가운 활주로에 혼자 남겨지는 장면은, 내가 바라보는 젊은 세대를 은유한 면이 있습니다. 그런 식으로 관객들이 곱씹을 만한 중의적 대사들도 많아요. '킹메이커'처럼 센 어조로 내 생각을 강요하지 않고, 관객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남겨 놓는 영화란 점에서 제게 의미 있는 작품입니다."
영화는 적군파가 여객기를 공중 납치하는 장면으로 시작되는 만큼 야마다 다카유키, 가사마쓰 쇼 등 일본 유명 배우들이 초반부를 이끌어간다.

영화 '굿뉴스'에서 일본 운수성 정무차관 역을 맡은 야마다 다카유키. 사진 넷플릭스
변 감독은 "과연 될까 하는 마음으로 연락했는데 다행히 나를 아는 일본 배우들이 흔쾌히 캐스팅에 응해줬다"며 "인질들 대신 북한으로 향하는 일본 운수성 정무 차관이 허망한 표정으로 기내에 앉아있는 한 컷을 찍기 위해 야마다 배우가 다시 방한해줘 감동했다"고 말했다.
"젊은 시절 박해일처럼 많은 걸 담을 수 있는 배우, 가장 연기 잘하는 20대 배우"(홍경), "테스트 촬영 때 구부정한 팔자 걸음 만으로 캐릭터에 대한 완벽한 이해도를 보여줬던 배우"(설경구), "상상 이상의 연기 에너지를 보여준 '우상' 같은 배우"(류승범) 등 출연 배우들에 대한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저의 페르소나로 불리는 설경구 선배가 '다음 작품에선 만나지 말자'고 하셨는데, 저로선 가장 믿음 가는 배우인 건 확실합니다. 이 작품이 저의 대표작이라고 얘기하고 다니니까 경구 선배가 '다음 영화 때 어쩌려고 그래, 부담 되게' 라고 말리시더군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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