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온건' 이시바서 '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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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새 총리로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가 21일 선출되면서 이재명 정부의 대일 외교가 새로운 시험대에 올랐다. ‘온건파’인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총리와 달리 ‘여자 아베’로 불리는 보수 성향의 다카이치 총리로 리더십이 바뀐 건 한·일 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양국 모두 일단 협력의 연속성에 방점을 찍을 것으로 보이지만, 과거사 문제 등을 두고 마찰을 빚을 우려도 나온다.

21일 다카이치 사나에 신임 일본 총리가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 들어서는 모습. AP=연합뉴스
이재웅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한·일 간 긍정적 흐름을 이어가기 위해 일본의 새 내각과도 긴밀히 소통할 것"이라며 "한·일은 격변하는 지정학적 환경과 무역 질서 속에서 유사한 입장을 가진 이웃이자 글로벌 협력 파트너"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조만간 다카이치 총리에게 축전을 발송할 전망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곧바로 외교 무대에 데뷔한다. 오는 26일 말레이시아에서 열리는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정상회의를 시작으로, 27일에는 2박 3일 일정으로 방일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맞이하고, 30일부터 2박 3일간 방한해 31일과 다음 달 1일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한다. 이 자리에서 이 대통령과 첫 한·일 정상회담도 열릴 예정이다. APEC 덕분에 양국 정상이 자연스럽게 초반부터 대면할 기회를 얻게 된 점은 긍정적이라는 평가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한·일 관계는 선순환의 흐름을 탄 상태다. 지난 8월 말 이재명 대통령이 미국 순방에 앞서 일본 도쿄를 먼저 방문했고, 이시바 전 총리는 지난달 말 퇴임 직전 한국 부산을 답방하며 셔틀외교의 복원과 정착을 공식화했다. 정부는 강제징용 ‘3자 변제’ 해법을 유지하며 과거사 갈등을 관리하는 한편, 저출산·기후위기 등 공동 현안을 논의하는 협의체를 출범시키는 등 양국 간 실질적 협력도 이어가고 있다.
여기엔 한·일 관계를 중시하는 이시바 전 총리의 온건한 성향 자체가 도움이 된 측면이 있다는 평가다. 그러나 다카이치 총리는 고(故)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를 계승하는 강경한 보수 색채를 지닌 정치인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일본의 사죄를 담은 1993년 '고노 담화'와 1995년 '무라야마 담화'를 부정하며 일본의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는 듯한 발언을 해왔다. 다음 달 말로 한국 정부가 계획하는 사도광산 강제동원 희생자 추도식을 비롯해 독도 도발 등 매년 반복되는 ‘캘린더식’ 역사 갈등이 한·일 관계의 뇌관으로 떠오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21일 중의원(하원) 총리 지명선거 결과 발표 이후 박수를 받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다만 다카이치 총리가 당장은 극단적인 우경화 행보에 나설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박철희 전 주일대사는 “다카이치 내각은 일본유신회와 각외 협력을 통해 연립을 구성했지만 여전히 소수여당이라 아베 시절처럼 강력한 자민당 중심 정권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평가했다. 이어 박 전 대사는 "일본의 전반적인 기조가 '우선회'하겠지만, 당장 한국과의 관계를 흔들 동기는 크지 않다”며 “역사나 영토 문제에서 일부 보수적 움직임은 있을 수 있어도 일단은 관망하는 움직임에 가까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일 사이엔 트럼프 행정부의 일방주의와 관세 무기화, 미·중 패권 경쟁에 대응해 ‘동병상련’의 입장에서 협력해야 한다는 공감대도 있다. 또 전임 정부가 어렵게 복원한 한·일관계를 먼저 흔드는 건 다카이치 총리로서도 정치적 부담이 클 수 있다.
최은미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다카이치 총리는 당장은 한국을 자극하는 발언이나 행동은 피하며 ‘안전 운행’을 할 것”이라면서도 “중장기적으로는 일본 보수의 우경화 흐름 속에서 국내 정치용 행보를 하는 등 본래 색깔이 드러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다카이치 총리가 불안한 국내 정치적 기반을 극복하기 위해 극우 언행을 하고, 한국 내 여론이 이에 반응하는 악순환이 시작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는 “지금 자민당의 최우선 과제는 다음 총선에서 압승하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선 우파적 언행으로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전략을 쓸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다카이치 총리는 아베 전 총리처럼 카리스마가 있는 인물이 아니고 여소야대 정국 속에서 정치 기반도 약하기 때문에 한·일 관계는 더 불안해질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한편 다카이치 내각의 출범은 한·미·일 3국 공조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지난달 뉴욕에서 3국 외교장관 회의가 열렸지만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3국 정상회의는 아직 성사되지 못했다. 그간 이 대통령과 이시바 전 총리는 모두 트럼프 대통령을 상대로 관세 협상을 비롯한 '각개격파'식 대응에 집중했다. 그러나 한·미 간 관세 협상이 진전을 보고 있는 가운데 일본의 새 총리 취임을 동력 삼아 2023년 8월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처럼 3국 정상의 별도 회동 논의가 속도를 낼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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