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결국 ‘트럼프’에 달렸다…“세부조건 문서화 안되면 혼란 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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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0월 2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내 각료회의실에서 열린 미·호주 정상 회담 중 제스처를 취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7월 관세 협상 타결 이후 3500억 달러(약 490조원)의 대미 투자 펀드를 놓고 교착 상태에 있던 한·미 협상이 최근 다시 속도를 내고 있다. 이달 말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양국 모두 외교적 성과를 확보해야 하는 정치적 압박이 커진 결과로 풀이된다. 이에 APEC 정상회의 기간 한·미 정상회담에서 공동성명 수준의 ‘톱다운’ 방식의 합의문이 나올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21일 정부와 여권에 따르면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 등 협상단은 미국과의 협상을 마치고 돌아와 이재명 대통령에게 “한·미 협상의 남은 쟁점은 정상 간 결단이 필요한 사안”이라고 보고했다. 양국은 3500억 달러(약 490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 금액과 자동차 등 주요 품목의 관세를 25%에서 15%로 인하하는 방안을 포함해, 총론 수준의 합의문을 정상회담에서 발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주 김용범 실장,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 등이 나선 각료급 협상에서는 어느 정도 이견 조율을 마친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한 ‘현금(지분투자)’ 중심의 선불 납입 방식은 한국 경제의 외환 여력 상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수용하기 어렵다는 점을 설명했고, 미국 측도 이를 일부 받아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관 장관은 귀국 직후 “미국 측이 우리 의견을 상당 부분 수용했다”며 “전액 현금 투자 요구는 아닌 상황”이라고 밝혔다. 남은 쟁점은 전체 투자금 중 현금 납입 비율을 어느 수준으로 조정할지, 잔여 금액은 대출과 보증 형태로 조달해 분할 지급할지 여부, 투자 배분에 대한 상업적 합리성 등으로 관측된다. 김용범 실장은 “한두 가지 조율이 필요한 사안이 남아 있다”고 전했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미국이 일본의 MOU(양해각서) 틀을 유지하되 한국 측 요구를 반영한 수정안을 제시했고, 이에 양국이 일정 부분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보인다”며 “특히 통화스와프와 캐피털 콜(필요 시 자금 추가 납입)을 연계한 단계적(Phased) 집행 방식에 의견 접근이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다만 투자의 거버넌스 구조, 손실 분담(로스캡) 조항, 의사결정 참여 범위 등은 여전히 쟁점으로 남아 있다”며 “APEC에서는 MOU보다 공동성명(Joint Statement) 형태로 큰 틀의 방향만 합의하고, 세부 이견은 후속 협상으로 넘길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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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위협저지공동행동 관계자들이 21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트럼프 미 대통령의 대미투자 강요 규탄 및 대미투자 전면 재검토를 촉구하고 있다. 2025.10.21/뉴스1

글로벌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도 최근 보고서에서 “APEC 정상회의를 전후해서 한·미 간 MOU가 체결될 가능성이 커졌다”며 “양국이 ‘자동차 등 관세 15% 인하와 3500억 달러 대미 투자’라는 기본 교환 구조를 유지하되, 현금 납입 비중을 낮추고 연준(Fed)과의 외환스와프 라인 구축을 병행하는 조합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협상의 성패는 무엇보다 트럼프 대통령의 결단에 달렸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익명을 요청한 한 통상전문가는 “트럼프 대통령의 최종 결단 전까지는 불확실성이 여전히 크다”며 “그의 예측 불가능한 의사결정 특성상 한국 정부는 불필요한 자극을 피하면서 ‘미국 내 프로젝트에 기여하겠다’는 메시지를 유지하는 것이 전략적으로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협상 진전에도 불구하고, ‘조건·방식·기간’이 문서로 명확히 정리되지 않으면 논란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일본의 경우 지난 8월 미국과 MOU를 체결했지만, 투자 펀드 구조가 공개되지 않아 혼선이 이어지고 있다. 아카자와료세이 일본 경제재생상은 “현금(지분투자) 비율이 1~2% 수준”이라 밝혔으나, 트럼프 대통령은 “선불 합의”라고 주장하며 엇갈린 해석을 내놓고 있어서다.

이재민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7월 30일과 8월 25일의 한·미 합의처럼 추상적 문장으로 남으면 양국 간 혼선이 나타날 수 있다”며 “이번에는 반드시 조건을 명확히 매듭짓고 문서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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