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휠체어 탄 강원래에…셀프 주유소 "직접 주유하세요, 그게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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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강원래씨가 지난 12일 ″몇 달 전 한 셀프 주유소에서 도움을 거절당했지만, 용인시 셀프 주유소는 반겨준다″라며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 운전석 뒤쪽에 실은 휠체어가 보인다(오른쪽).사진 강원래 페이스북

"셀프 주유소를 이용하려면 전화번호를 미리 검색해 전화 걸어 제 사정을 설명한 뒤 도움을 요청해야 합니다. 제 뒤에 다른 손님이 있으면 눈치도 보여요. 이런 과정이 너무 불편합니다."

2024 파리 패럴림픽에 출전했던 전 탁구 국가대표 김학진(38)씨는 셀프 주유소를 가급적 피한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그에게 셀프 주유는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먼저 차에서 내려 휠체어로 옮겨 타야 한다. 그렇게 애써 다가가도 터치스크린의 위치가 높아 손을 길게 뻗어도 닿을까 말까 하다. 사실상 혼자 주유하는 건 불가능하단 얘기다. 김씨는 "가격이 조금 비싸더라도 직원이 있는 일반 주유소를 찾아가려 하지만, 요즘은 대부분 셀프 주유소라 (일반 주유소를) 찾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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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유튜버 박위씨가 2020년 셀프 주유소를 이용해보는 모습. 휠체어에 앉은 채 결제를 시도하지만, 기기가 높이 있어 이용이 불편하다. 사진 유튜브 '위라클' 캡처

이런 장애인의 불편은 최근 가수 강원래씨의 SNS 글을 계기로 공론화됐다. 그는 지난 12일 페이스북에 "몇달 전 셀프 주유소 직원에게 주유를 부탁했더니 '셀프 주유소에서는 운전자가 직접 넣어야 한다. 장애인도 예외가 아니고 그게 법이다'라는 말을 들었다"며 당시 사연을 전했다. 게시글엔 "나도 그런 경험이 있다", "남편이 셀프 주유소 이용을 너무 힘들어한다" 등 장애인과 가족들의 공감 댓글이 잇따랐다. '휠체어 유튜버' 박위씨도 자신의 유튜브 영상에서 "결제 화면이 휠체어 이용자에게 너무 높다"며 불편을 호소해 주목받은 적 있다.

전국의 장애인 운전면허 소지자는 15만298명(2019년·경찰청)에 이른다. 여러모로 대중교통 이용이 불편한 장애인에게 자동차 운전은 생업·일상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수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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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민 기자

하지만 첫 관문인 주유부터 여의치 않다. 21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전국 주유소 1만465곳 중 59.3%(6206곳)가 셀프 주유소다. 게다가 최근 늘고있는 전기차 충전소도 대부분 무인 운영된다. 키오스크 확산과 함께 인건비 절감과 운영 효율화를 이유로 '셀프 전성시대'가 열렸지만, 장애인 등 취약 계층에겐 이용 문턱이 높다.

현재 셀프 주유소에서 이동 약자를 배려하는 구체적인 제도나 법적 기준이 없다. 몇몇 정유사가 자체적인 캠페인을 벌이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장애인에게 셀프 주유와 전기차 충전이 어려워 편의 개선 요구가 많지만, 관련 규정이 없어 고민 중"이라며 "조만간 한국주유소협회와 간담회를 열고 개선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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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강원래씨가 경기도 용인시에서 셀프 주유소 내 직원 도움을 받았다고 밝히며 올린 사진. 사진 강원래 페이스북

일부 지자체는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경기도 용인시는 지난 6월부터 전국 최초로 셀프 주유소에서 QR 코드를 찍으면 직원이 나오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용인시 셀프 주유소 131곳 중 52곳이 동참 의사를 밝혔다. 용인시 관계자는 "시내 주유소의 70%가 셀프 주유소라 장애인 불편이 작지 않았다"며 "차 안에서 직원을 바로 호출할 수 있게 돼 현장 반응이 좋은 편"이라고 전했다.

참여 주유소 대표 임성수씨는 "QR코드 도입 전엔 장애인 단골의 차량 번호를 미리 적어두고 해당 차량이 오면 직원이 나가 응대하는 식이라서 불편했다"며 "QR 코드와 같은 제도가 장애인뿐 아니라 노인·임신부 등 다른 이동 약자에게도 도움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지혜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장애인 접근성 정책을 장애인 주차구역 확대, 톨게이트 요금 할인에 머물러선 안 된다. 국가가 물리적 장벽뿐 아니라 태도적 장벽을 함께 없애는 방향으로 정책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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