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먹튀 노인 3인방' 일냈다…"상영관 늘려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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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람과 고기'의 형준(박근형), 우식(장용), 화진(예수정)은 우연한 계기로 만나 무전취식이란 모험이자 일탈을 저지른다. 사진 트리플픽쳐스
노년의 삶을 너무 무겁지 않게 풀면서, 가슴 먹먹한 여운을 남긴다. 배우들의 연기는 '열연' 그 자체다.
노년의 삶 다룬 영화 '사람과 고기' #상영관 늘려달라, 잇딴 후원상영회 #양종현 감독 "희망적인 노인 영화"
뉴욕타임스는 "올해의 유쾌한 발견'이라 극찬했고, 최근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관객 반응도 뜨거웠다. 하지만 극장에선 이른 아침이나 늦은 밤에만 상영한다. 입 소문을 듣고 상영관을 검색하는 사람들로선 허탈할 수 밖에 없다.
영화 '사람과 고기'(7일 개봉) 얘기다. 24일 현재 관객 수는 1만7000명. 독립예술영화로선 나쁘지 않은 흥행 스코어지만, 여기서 멈춰선 안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영화를 본 관객들이 '#상영관을늘려달라' 해시태그 캠페인을 벌이고 있고, 배우 유태오·최강희, 가수 윤상 등이 후원상영회로 영화에 힘을 보태고 있다. "좋은 영화를 더 많은 관객들이 봤으면 좋겠다"는 이유에서다.
'사람과 고기'는 폐지 줍는 두 노인 형준(박근형), 우식(장용) 그리고 나물 팔며 대학생 손주 부양하는 화진(예수정)이 우연한 계기로 만나 무전취식이란 일탈을 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공짜로 고기를 먹고 다니면서 이들은 오랜만에 '살아있음'과 '함께' 라는 소중한 가치를 느낀다.

영화 '사람과 고기'를 연출한 양종현 감독. 사진 트리플픽쳐스
23일 서울 용산의 한 극장에서 만난 양종현 감독은 "두렵고 우울한 노인 얘기 말고, 희망적인 노인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영화의 출발점은 폐지 줍는 노인의 일상에 대한 궁금증이었다.
양 감독은 "거리에서 폐지 줍는 노인들을 많이 보는데, 그들이 힘겹게 리어카를 끌고 집에 돌아가서 뭘 드실까, 누구와 같이 식사하고 싶을까 등을 상상해봤다"면서 "거기서부터 작가와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갔다"고 했다.
왜 하필 고기였을까. "혼자 먹기에 서러운 음식"인 동시에 "함께 모여 앉아 불판에 구워 먹으며 소주 한 잔 곁들일 수 있는 친목의 음식"이란 설명이다. 돈은 없지만 고기를 먹고 싶어 하는 노인들이 젊은이들처럼 '전력 질주'하려면 어떤 상황에 처해야 할까 생각하다 양 감독이 떠올린 게 무전취식이었다.

영화 '사람과 고기'의 형준(박근형), 우식(장용), 화진(예수정)은 우연한 계기로 만나 무전취식이란 모험이자 일탈을 저지른다. 사진 트리플픽쳐스
형준 일행은 손님들로 가득 찬 식당만 고르고, 비싼 특수부위는 주문하지 않는다. 양심의 가책을 덜 느끼기 위한 선택이다.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먹튀 노인 3인방'으로 소문 난 이들은 결국 붙잡혀 처벌을 받게 된다.
결코 합리화할 수 없는 범죄 행위지만 무전취식으로 간만에 '살 맛'을 느끼는 이들은 불판 앞에서 대화를 주고 받으며 각자의 아픈 과거를 털어놓는다. 이민 간 자식들에게 버림 받고, 홀로 투병하고, 폐지 줍는 일 외엔 생계를 이어갈 방법이 없는 독거 노인들의 비참한 현실 또한 영화는 들춰 보인다.
스스로 곡기를 끊는 방식으로 세상에 이별을 고하는 친구를 형준이 슬프게 지켜보는 장면도 나온다. 양 감독은 "그런 선택을 하는 쪽방촌 독거 노인들이 실제로 있다는 얘기를 듣고서 끼워 넣은 장면"이라며 "노인 자살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려는 의도도 있다"고 말했다.

영화 '사람과 고기'의 형준(박근형), 우식(장용), 화진(예수정)은 우연한 계기로 만나 무전취식이란 모험이자 일탈을 저지른다. 사진 트리플픽쳐스
연기 경력 도합 162년의 대배우들과 함께 한 촬영은 "긴장의 연속"이었다고 그는 돌아봤다.
"촬영 전 선생님들이 '우리 셋이 잘 놀 수 있는 판을 만들어 달라'는 주문을 하시더군요. 코믹한 요소를 요구하고 대사를 바꾸는 등의 과정에서 버럭 화를 내시고 부딪히기도 했는데, 지나고 보니 선생님들의 판단이 옳았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주문하신 대로 편하게 노실 수 있는 판만 만들면 되는데, 제 욕심에 괜히 들쑤신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 들더군요."
세 배우가 캐스팅에 흔쾌히 응한 건, 노인들의 외로운 심경을 대변하는 대본의 힘 덕분이었다. 박근형은 지난달 말 기자간담회에서 "처한 상황이 각자 다른 노인들이 소통하며 가까워지고 정을 느끼는 장면들이 너무 좋았고, 가슴에 와닿는 게 많았다"면서 "엄청난 고독감을 가진 형준이 노인들을 만나 활기찬 생활을 시작하는 게 다시 삶을 시작하는 듯한 느낌이었다"고 밝혔다.
다시 삶을 시작하는 듯한 느낌, 영화가 강조하는 건 노년의 '현재성'이다. 함께 고기를 구워먹으며 이야기 꽃을 피우고 즐거워하는 주인공들의 '모험'을 통해 노년에도 얼마든지 '청춘'이 깃들 수 있고, '욕망'이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살면서 이렇게 가슴 뛰어 본 적 있어?"라는 우식의 대사에는 많은 것이 함축돼 있다. 양 감독도 이 대사를 가장 기억에 남는 명대사로 꼽았다.
"사람들이 자신은 절대 늙지 않을 것처럼 살아가고 있어요. 그러면서 노인들을 타자화하죠. 그런 세태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 영화를 만든 건 아닙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통해 노인들의 가슴이 여전히 뛰고 있고,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가슴 뛰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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