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큰 나라 다스리는 건 작은 생선 굽기와 같다" 노자 말에 담긴 중국요리 특징[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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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

웍과 칼
퓨사 던롭 지음
윤영수·박경환 옮김
글항아리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작은 생선을 굽는 것과 같다”는 노자의 말을 영국인들을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영국인들에게 요리란 닭 한 마리를 통째로 오븐에 넣고, 감자와 당근 몇 알을 구우면 되는 쉬운 일이기 때문이다. 영국인들은 “중국 요리처럼 식재료가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변형된’ 요리는 일종의 사기라는 뿌리 깊은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로스트치킨’은 한 눈에 알 수 있지만 ‘궁보계정’의 잘게 썬 고기는 고양이나 뱀 고기가 아닐까 하는 무지와 편견에 사로잡힌 의심이 들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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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린흥티하우스의 딤섬. [사진 백종현 기자]

하지만 중국인들에게는 원재료를 통째로 식탁에 올려 칼로 썰고 포크로 찍어 먹는 것이 야만과 폭력성의 표현일 뿐이다. 자고로 두 가지 이상의 재료를 비슷한 크기로 썬 뒤 혼합해 요리함으로써 조화와 보완을 이뤄낸다는 것이 2000년 넘도록 유지돼온 중국 조리문화의 핵심이다. “중국요리의 조리법은 전적으로 어떻게 섞느냐의 문제”라는 작가 린위탕(林語堂)의 말이 그것이다. 노자의 작은 생선 또한 국가 경영이든 요리든 조심스럽게 조화를 이루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다.

저자 퓨샤 던롭은 영국 출신으로, 서양인 최초로 쓰촨고등요리학교에서 공부한 뒤 지난 30년 동안 중국 음식을 탐구해온 요리사이자 음식평론가다. 그는 철저한 현장 조사를 토대로 쓴 이 책을 통해 그동안 외국인들이 경험하지 못한 중국 요리의 풍부함과 섬세함, 신비로움을 맛볼 수 있도록 초대한다. 각 장이 마치 한가지 코스요리 같은데, 여기에 그치지 않고 그와 관련된 중국 음식문화의 역사와 철학을 종횡무진 섭렵한다.

중국 조리 도구로 식재료를 써는 ‘칼’과 그것을 섞어 볶거나 끓이는 ‘웍’이 중요한 이유도 조화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연회로의 초대'(Invitation to a banquet)라는 책 원제를 번역본에서 『웍과 칼』로 바꾼 것이 나쁜 선택이 아니다.

전문 중식 주방에서는 불을 다루는 웍 셰프가 보조들이 다듬은 식재료를 순서대로 웍에 넣고 강한 불 위에서 뒤집으며 간을 맞춰 요리를 완성한다. 하지만 중국요리의 기본은 칼질, 즉 ‘체페이(切配)’이며 그것을 익히지 않으면 불을 다루는 법인 ‘훠허우(火候)’를 배울 수 없다.

써는 방법도 얇게 저미는 폔(片), 가늘게 채 써는 쓰(絲), 쌀알 크기로 잘게 써는 미(米), 토막으로 자르는 콰이(块), 길쭉한 막대 모양의 탸오(條) 등 다양한데 요리와 재료에 따라 무궁무진하게 응용된다. 공자는 정확하게 자르지 않은 음식은 먹기를 거부했으며, 교육열로 유명한 맹자의 어머니도 태교를 위해 제대로 썰지 않은 고기는 먹지 않았다고 한다. 한나라 때 백정 진평은 고기를 공평하게 썰어 나눈 일로 재상이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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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중국 상하이의 한 레스토랑에서 셰프가 요리하고 있는 모습. [EPA=연합뉴스]

웍 사용법도 다양하다. 웍에 물을 부어 탕을 끓이고 간장을 넣고 볶거나 조린다. 기름을 넉넉히 부어 튀기고 물을 조금 채운 뒤 안에 나무젓가락으로 삼발이를 만들어 음식을 올려놓으면 찜도 가능하다. 웍에 소금을 채운 뒤 재료를 넣어 천천히 굽기도 한다. 선택의 기준은 가장 훌륭한 조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방법이다.

조화를 중시하던 고대 중국인들이 이미 서양의 테루아 개념, 즉 자연환경이 만드는 음식의 특유한 풍미를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한나라 때 편찬된 『황제내경』은 동쪽 사람들은 생선과 소금, 서쪽은 기름진 고기, 북쪽은 유제품, 남쪽은 신맛과 발효식품을 즐기며 중부 내륙 사람들은 잡식성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최상급 제철 식재료의 중요성도 고대로부터 추구되던 개념이다. 산시성 남부의 여름 마늘, 간쑤성 북부의 사슴 혓바닥, 양쯔강의 털게, 광둥성 차오저우의 해마 등은 당나라 때 황제에게 바쳐졌던 공물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17세기 극작가 이어는 완벽한 밥을 위해 뜸을 들일 때 야생 장미, 계수나무, 유자꽃에서 모은 이슬을 넣었다고 한다.

그런데 왜 중국요리는 서구를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고급요리 대접을 받지 못하는 걸까. 그것은 애초에 전문적 요리 기술이 없는 이민자들이 값싼 식재료로 만든 간단한 광둥식 음식들이 대표적인 중국요리로 소개됐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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