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먹지도 웃지도 못했다" '쇼팽 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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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시상식과 갈라 콘서트에 출연한 피아니스트 에릭 루. 19회 쇼팽 국제 콩쿠르의 우승자다. 사진 EPA=연합
“모든 두려움을 억누르고 견뎌내야 했다.”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제 19회 쇼팽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에릭 루(27ㆍ미국)가 21일(현지시간) 기자들과 만나 “불안을 이기기 위해 가장 노력했다”고 말했다.
루는 이번 대회에 출전한 640명 중 우승자로 20일 결정됐다. 그는 “음악에만 집중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며 “우승이 발표되는 순간 감정이 너무 압도적이어서 머리가 하얘졌다”고 했다.
그는 2015년 조성진이 우승했던 쇼팽 콩쿠르에 17세로 출전해 4위에 올랐다. 10년 만에 다시 출전했고, 재도전자 중 최초의 우승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더불어 쇼팽의 협주곡 1ㆍ2번 중 덜 연주 되는 2번을 골라 우승한 두 번째, 보다 대중적인 스타인웨이 피아노 대신 파지올리로 경연하고 우승한 두 번째 피아니스트로 기록됐다. 각각 첫 번째 기록은 당 타이 손(1980년)과 브루스 리우(2021년)가 가지고 있다.
중앙일보는 한국 언론 중 유일하게 쇼팽 국제 콩쿠르의 공식 취재에 참여했다. 다음은 에릭 루와 전 세계 언론의 인터뷰 일문일답.
- 다시 출전한다고 했을 때 조성진을 비롯한 친구들의 반응은 어땠나.
- “2015년 함께 수상한 친구들에게 쇼팽 콩쿠르에 다시 나가겠다고 1년 전 말했을 때 그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나라면 안 할 거야’라고도 했다.”
- 재출전한 이유는 무엇인가.
- “10년 전엔 너무 어리고 순진했다. 그동안 나는 변했다. ‘다른 나’를 세계에 보여주고 싶었고, 전 세계 청중이 보는 플랫폼이기 때문에 쇼팽 콩쿠르가 적당했다.”
- 출전하면서 어떤 마음이었나.
- “큰 도박이었다. 이미 경력이 있고 매니저도 있기 때문이었다. 연주를 잘 못 하거나 대회에서 지게 되면 위험이 너무 컸다.”
- 정신적인 압박이 얼마나 컸나.
- “콩쿠르 후반에는 식당에 앉아 밥을 먹을 수 없어져서 부모님이 먹을 것을 숙소로 가져다줬다. 마지막 몇 주 동안은 한 번도 웃지 못했고, 숨을 쉴 수 없는 순간이 있었다. 자기 의심과 공포에 떨었다.”
- 어떻게 극복했나.
- “무조건 음악에만 집중하려고 했다. 두려움을 억누르고 견뎌내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 2018년 리즈 국제 콩쿠르 우승, 또 그 후의 수많은 연주와 음반 발매라는 경험이 있다. 그 경험이 이번 경연에서도 보였다.
- “콩쿠르가 열린 이 콘서트홀에서 여러 차례 연주했다. 객석의 발코니석에 앉아 여러 공연을 보기도 했다. 그때 보니 연주할 때 음향이 많이 울리더라. 피아노 소리가 잘 안 들리고 선명치 않은 경우가 있었다. 그래서 파지올리 피아노를 선택했다. 소리의 광채가 이 공연장에 맞았다.”
- 협주곡도 다수의 선택과 달리 2번을 골랐다. (※이번 결선 진출자 11명 중 7명이 1번을 골랐다.)
- “10년 전에는 협주곡 1번으로 참가했다. 이번엔 바꾸고 싶었다. 1번은 너무 많이 연주되기 때문에 심사위원과 청중이 보다 신선함을 원할 거라고 봤다. 사람들은 길이가 더 긴 1번을 선택해야 한다고 했지만 내 선택을 따랐다.”

21일 수상자 갈라 콘서트에서 연주한 19회 쇼팽 콩쿠르 우승자 에릭 루. 사진 EPA=연합
- 무대 경험이 어떻게 도움이 됐나.
- “처음 오케스트라와 연주할 때는 내 피아노 소리를 거의 듣지도 못했다. 그 사이 수년 동안 많은 오케스트라와 함께하고 많은 곡, 위대한 지휘자와 함께한 경험이 확실히 도움됐다.”
- 가장 마음에 들었던 연주는.
- “무대에서는 나를 평가하지 않고 연주하려 노력한다. 하지만 이번 2차 본선 무대에서 쇼팽의 소나타 2번을 연주할 때 감정적으로 엄청난 경험을 했다. 어딘가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특별한 순간이었다.”
- 이제 다음 계획과 목표는 무엇인가.
- “내 최종 목표는 늘 최선을 다해 연주하는 것이다. 이제 다가오는 공연들에 집중한다. 쇼팽만 연주하고 싶지는 않다. 엄청나게 많은 곡이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균형을 찾으면서 다음 여정을 계획하고 싶다. 모든 작품의 정수를 잘 표현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 이 상을 누구에게 바치고 싶나.
- “부모님이다. 부모님은 정신적으로 큰 힘이 됐다. 나에게 절대 압박을 주지 않았다는 점이 정말 중요했다.”
- 쇼팽 콩쿠르가 당신에게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가.
- “내 삶의 전체다. 처음에 17세에 나와 무대 경험도 없이 시작해 10년간 긴 여정을 쇼팽 콩쿠르와 함께했다. 이제 막 다른 시작을 하게 됐다.”
에릭 루는 1위 상금으로 6만 유로를 비롯해 한국의 공연기획사인 마스트미디어가 제정한 비정규 특별상(1만 유로) 등 총 9만 5000유로(1억 5900만원)를 받게 됐다. 앞으로 수상자 공연을 유럽과 아시아에서 연다. 독일ㆍ이탈리아ㆍ에스토니아와 한국ㆍ홍콩ㆍ일본ㆍ캐나다ㆍ아르헨티나ㆍ프랑스에서 수상자 연주가 내년 8월까지 잡혀 있다. 에릭 루의 한국 공연은 다음 달 21일 KBS교향악단과 협연으로 시작해 22ㆍ23ㆍ26일 각각 울산ㆍ통영ㆍ서울에서 독주회로 예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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