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화장기 없는 정려원’부터 낯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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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차를 탄 여자’는 경찰 현주(이정은·오른쪽)가 목격자 도경(정려원)의 진술에 의심을 품으며 ‘진실’을 파헤치는 영화다. [사진 바이포엠스튜디오]

스릴러 영화 ‘하얀 차를 탄 여자’(29일 개봉)는 한겨울 새벽, 흉기에 찔려 피투성이가 된 은서(김정민)를 차에 태워 병원에 온 도경(정려원)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맨발 차림의 도경은 넋 나간 표정으로 경찰 현주(이정은)에게 언니 은서의 약혼자가 가해자라며 혼란스러운 진술을 한다. 도경의 진술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까. 은서는 도경의 친언니가 맞을까. 수상한 낌새를 눈치 챈 현주는 사건의 본질을 파고들기 시작한다.

여기까지는 영화 전체 분량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사건을 다른 관점에서 본 두 가지 버전이 이어지며, ‘그날의 진실은 무엇인가’를 놓고 관객과 두뇌 싸움을 벌인다. 영화는 원래 추석 특집용 TV 단막극(2부작)으로 만들어졌던 작품이다. 스크린으로 옮겨도 괜찮겠다는 제작진의 판단에 따라 영화화돼 2022년 샌디에이고 국제영화제에서 국제영화상을 수상하고, 런던국제영화제에 공식 초청되는 등 해외에서 호평 받았다.

26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난 정려원은 단막극이 영화가 된 데 대해 “선물 받은 느낌”이라며 “촬영한 지 3년 반 만에 관객을 만나게 돼 감격스럽다”고 했다. 그가 영화에 출연한 건 ‘게이트’(2018) 이후 7년 만이다. 이번 영화에서 연약함과 강인함 사이를 오가며 섬세한 감정 연기를 펼친 정려원은 “첫 촬영이 문을 열어달라고 울부짖는 클로즈업 신이었다”며 “도경의 트라우마를 확실히 각인시키려 했던, 감독의 디렉션이라 느꼈다”고 말했다.

엇갈리는 진술과 하나의 진실, 스토리를 세 갈래로 구분해 캐릭터에 변화를 주려 했다는 그는 “도경, 현주, 은서 그 누구도 선인 또는 악인으로 규정지을 수 없다는 게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말했다.

이 작품은 비주얼적인 면에서도 정려원에게 도전이었다. 주로 세련된 도회적 이미지를 보여왔던 그는 영화 내내 화장기 없는 얼굴과 푸석한 피부, 산발에 가까운 머리로 등장한다. 그는 “화장을 안 해도 된다는 것에 해방감을 느꼈다”면서 “한 곳에 오래 갇혀 있어 피폐해진 사람은 어떤 모습일까 상상하면서 외양을 만들어갔다”고 말했다.

사건의 진실이 드러나는 과정에서 약자에 대한 편견, 핍박받는 여성 문제 등이 부각되는데, 이 모든 게 영화 말미에 ‘구원’이란 주제로 수렴된다. 정려원도 구원이란 키워드가 가슴에 또렷하게 남았다고 했다. “구원이란 게 절대자에 의해서만 이뤄지는 게 아니잖아요. 어떤 사건으로 인해 트라우마가 생긴 사람들끼리 진심으로 돕는 것 또한 구원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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