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미군 전화줄로 기타 연습…60년 음악인생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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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바람이 전하는 말’ 시사회에 참석한 김희갑 작곡가(오른쪽), 양인자 작사가 부부. [연합뉴스]
“영화를 보니, 내가 참 위대한 분하고 살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엄청난 사람이 세월이 지나 조금씩 가라앉으면서 내 옆에 다소곳이 와 있는 것에 감사합니다.”
작사가 양인자(80)는 28일 서울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남편이자 ‘대중가요의 전설’ 김희갑(89)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 ‘바람이 전하는 말’ 시사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지팡이를 짚고 동석한 김희갑은 짧고 굵게 “영화를 많이 봐 달라”고 했다.
김희갑은 최근 뇌경색으로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았다. 양인자에 따르면 “실핏줄이 터졌다가 막혔다가를 반복해 뇌 MRI가 마치 은하수처럼 보였다”고 한다. 조심하는 것이 유일한 치료법이라 요즘은 거의 누워있는다고 했다. 의사소통에는 큰 문제가 없지만, 무언가를 기억해 대답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껴, 이날 시사회에선 주로 양인자와 영화를 연출한 양희 감독이 대답했다.
이 작품으로 입봉한 양 감독은 김희갑·양인자 부부 이웃에 살며 10년 전부터 부부의 이야기를 카메라에 담았다. “1세대 기타리스트이자 국민 애창곡 3000곡을 만든 위대한 김희갑 선생님의 이야기를 기록해야겠다는 마음”이었다고 한다.
영화는 1936년 평양에서 태어나 1·4 후퇴 후 대구에 자리 잡은 김희갑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미군 전화줄에서 나온 쇠줄을 껴 기타 연습을 하다가, 고교 2학년 때 미8군 기타리스트로 발탁되면서 그의 음악인생이 시작된다. 이 시기 나온 김희갑 작곡 1집(1967)은 대중음악 선구자로서의 시작점이 된 음반이다. ‘해변으로 가요’ ‘바닷가의 추억’ 등의 히트곡이 이때 나왔다.
그는 청년 음악이 대세였던 1970년대엔 포크, 1980년대에는 실험적 음악에 도전했다. 조용필 ‘말하라 그대들이 본 것이 무엇인가를’, 김국환 ‘타타타’, 임주리 ‘립스틱 짙게 바르고’, 혜은이 ‘열정’ 등 수많은 히트곡이 1980년대에 쏟아졌다.
양인자와는 1979년 ‘작은 연인들’을 시작으로 400곡 넘게 함께 작업했다. 그중에서도 조용필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손에 꼽힌다. 김희갑은 “드라마 작가였던 아내가 ‘하고 싶은 말을 충분히 할 기회를 달라’고 했다. 그래서 내레이션 부분을 만든 것”이라고 소개했다. 대중가요와 가곡의 만남이라는 파격으로 인기를 끈 ‘향수’는 10개월에 걸친 오랜 고뇌 끝에 탄생했다. 이후 김희갑은 양인자와 함께 뉴욕·런던 등을 다니며 5년간 뮤지컬 공부를 한 끝에 ‘명성황후’의 50곡이 넘는 넘버를 만들었다.
그의 안주하지 않는 작품 활동에 대해 양인자는 “선생님은 어느 한 분야를 하다가 싫증이 나면 장르를 옮긴다. 영화음악을 하다가 가요를 하고 가요를 하다가 뮤지컬도 하고, 이런 변화를 주면서 스스로를 리셋시키며 작업했다”고 돌아봤다. 이어 “언젠가 내가 ‘당신은 전생에 모차르트가 아니었을까?’하고 물으니, ‘가곡을 많이 쓴 슈베르트였을 거다’라고 대답하셨다”며 웃었다.
조용필이라는, 다양한 도전을 거리낌 없이 받아주는 가수를 만난 것도 김희갑·양인자에겐 행운이었다. 조용필은 영화에서 ‘두 사람에 대한 두터운 신뢰로 곡 작업을 함께 했다’고 털어놓았다. 양인자는 “가수들은 변화를 좀 꺼린다. 그런데 조용필은 어떤 이야기를 제안해도 ‘해보자’고 말해, 함께 일하면 신이 난다”고 덧붙였다. 후배들에게도 다양한 음악적 시도를 장려했다. “우리가 만든 노래들이 젊은 창작인들의 손끝에서 새로운 음악으로 만들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곡 승인 절차 이런 건 생략하고 일단 우리 노래를 가져다가 본인들의 버전으로 새롭게 만들어주면 영광으로 생각하겠다”고 덧붙였다. 영화는 11월 5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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