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염전 위가 한국전쟁 격전지? 뜬금없는 기념비가 만들어낸 오해 [Focus 인사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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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을 기리는 기념관이나 조형물을 당연히 사실과 관련된 지역에 설치하는 것이 기본이다. 단지 경치가 좋다는 이유만으로 충무공 이순신과 관련한 기념물을 강원도 산골짜기에 만든다면 그 의의가 반감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비교적 최근의 역사라서 기록이 많이 남아있는 6·25 전쟁과 관련한 기념물을 보면 아쉬운 점을 감출 수 없다.

자유공원에는 맥아더 장군 동상과 인천상륙작전 기념 동판이 설치되어 있다. 인천시 관내에 설치된 6·25 전쟁 관련 기념물 중 유일하게 실제 장소에 위치해 있다. 위키피디아
인천만 하더라도 6·25 전쟁과 관련한 4개의 기념물이 있다. 중구의 자유공원, 연수구의 인천상륙작전 기념관, 부평구의 부평전투 승전 기념비, 서구의 콜롬비아군 참전 기념비 등이다. 그런데 행정구역상 인천광역시 전체로 보자면, 억지로 인연을 연결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이 중에서 해당 사건이 벌어졌던 곳과 직접 관련이 있는 기념물이 설치된 곳은 자유공원밖에 없다.
응봉산은 인천항을 감제할 수 있는 위치여서 유엔군은 상륙 첫날 이곳을 신속히 점령했다. 정상에는 구한말 부근 조계지에 살던 외국인들을 위해 건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서구식 공원인 각국공원(各國公園)이 있었다. 1957년 성금을 모아 인천상륙작전을 기리고 이를 지휘한 맥아더 장군 동상을 건립하면서 자유를 수호했다는 의미로 이름을 자유공원으로 바꿨다. 한마디로 역사적 관련성이 큰 데다 접근성도 좋다.

1950년 9월 15일 상륙 당일 응봉산 정상 기상대를 점령한 미국 해병대원들. 인천 도심을 장악했다는 걸 상징하는 역사적인 사진이다. 이를 기념해 각국공원이 자유공원으로 바뀌었다. 인천상륙작전 기념관
연수구의 인천상륙작전 기념관은 이와 반대의 경우다. 1984년 옥련동 산자락에 성금을 모아 만들어진 기념관은 어느덧 노후화했으나 전시물 등을 고려할 때 전반적으로 훌륭한 수준이다. 그런데 해당 지역은 지금은 폐쇄된 옛 송도유원지 주변인 데다 특히 기념관 바로 앞은 모텔과 유흥주점이 즐비하다. 자유공원처럼 사람이 많이 찾는 관광지에 자리 잡는 것이 굳이 나쁘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문제는 인천상륙작전과 전혀 관련이 없는 곳이라는 점이다. 그린·레드·블루비치로 불린 3곳의 해안으로 상륙한 아군은 당일 저녁 인천 도심을 점령하고 이후 서울로 진격했다. 그런데 기념관 위치는 블루비치와도 약 5㎞ 정도 떨어진 곳으로 당시에는 전투지역이나 진격로도 아닌 외진 곳이었다. 만일 행주대첩 관련 기념물을 단지 고양시 관내라는 이유만으로 일산 호수공원에 지어놓았다면 당연히 말이 나올 것이다.

인천시 옥련동에 위치한 인천상륙작전 기념관. 시설이 준수하고 찾기 쉬운 곳이나 아쉽게도 위치가 실제 역사와 무관한 곳이다. 인천상륙작전 기념관
사실 인천상륙작전 기념관이 위치할 가장 적당한 곳이라면 바로 제일 먼저 상륙한 월미도다. 마침 지난 2005년 이곳에 60여년간 주둔하던 군부대가 이전하면서 월미공원으로 대대적으로 개발됐고, 지금은 많은 이들이 찾는 관광지다. 만일 그때 공원의 일부에 인천상륙작전 기념관을 이전했거나 만들었다면 충분히 의의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지 못해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부평전투 승전 기념비도 비슷하다. 인천에 상륙한 뒤 서울로 진격하던 유엔군은 경인가도 상에서 북한군과 수차례 교전을 치렀다. 1950년 9월 17일 6시쯤 현 부평사거리 부근에서 300여 명의 미 해병 제5연대 2대대와 6대의 전차를 앞세운 역시 300여 명의 북한군이 벌인 부평전투도 그중 하나다. 6·25 전쟁 중 있었던 유명한 전투들과 비교하면 많이 알려지지 않지만, 진격 중 서울 밖에서 벌어진 전투 중 규모가 가장 컸다.

부평전투에서 격파된 북한군의 T-34. 전투 후 미군이 진격로 확보를 위해 경인국도에서 논으로 밀어 놓은 상태다. 미 육군
미군은 기습을 가해 모든 적 전차를 격파하고 200여 명을 사살하는 대승을 거두었다. 이를 기리고자 2008년 백운공원 옆 부평아트센터 내에 승전 기념비를 세웠는데, 문제는 전혀 관련이 없는 장소라는 점이다. 6·25 전쟁 당시에는 경인선 철도가 통과하는 절개지 옆 산골이었고, 아래쪽은 염전이어서 전투 자체가 불가능한 지역이었다. 그런데도 국가보훈부 블로그 2016년 글에서 설치 장소가 격전지라고 잘못 소개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실제 교전이 벌어진 곳에 기념비를 세울 공간이 없는 것도 아니다. 지금도 마음만 먹으면 미군이 매복했던 희망공원이나 적 전차가 격파됐던 도로 바로 옆 애향공원 혹은 공영주차장에 충분히 기념비를 설치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투 지역과 직선으로 1㎞ 정도여서 아주 멀지 않으나, 철도 때문에 굽이굽이 우회해 돌아가는 구석진 장소에 기념비를 세운 점은 못내 아쉽다.

부평전투 승전비를 소개한 국가보훈부 블로그 2016년 포스팅. 아쉽게도 중요한 전투 장소가 잘못 소개됐다. 블로그
서구에 있는 콜롬비아군 참전 기념비는 오히려 더한 경우다. 연인원 5000여 명이 참전해 611명이 희생된 콜롬비아군은 미 7사단에 소속돼 주로 강원도 화천·김화 일대에서 싸웠다. 보충대를 통해 입출국한 것 정도를 제외하면 정작 인천과 관련이 없다. 이들을 기리려면 주둔하고 피를 흘리며 활약한 지역에 기념비를 세우는 것이 맞겠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1975년 서구(당시 북구) 가정동에 건립되었다.
문제는 해당 부지가 접근이 쉽지 않은 경인고속도로 바로 옆이어서 정작 인천시민도 기념비 존재 여부를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기념비를 참전 지역으로 옮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있었다. 고속도로 해당 구간이 일반도로로 전환되고 가정동 일대가 신도시로 재개발되면서 기념탑의 이전이 결정된 것이었다. 하지만 2018년 새롭게 자리 잡은 곳은 인근 서구 연희동에 위치한 경명공원이다.

경명공원으로 이전 설치된 콜롬비아군 참전 기념비. 가정동에 있을 때보다 찾기 쉽지만, 이 또한 역사적으로 관련이 없는 곳이다. 유엔평화기념관
지금까지 소개한 기념물이 해당 장소에 세워진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언급한 것처럼 실제 장소가 아닌 곳이면 나중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지금이야 검증하고 바로 잡을 수 있지만, 더 오랜 세월이 흐르면 공식 기념물이 설치된 곳을 실제로 역사적인 사건이 벌어졌던 장소라고 잘못 받아들일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국가보훈부 블로그 사례에서 보듯이 단지 우려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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