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美투자 연 200억 달러는 SOC예산 수준..."재정적자 땐 유지 어려워"

본문

한·미 양국이 3개월 넘게 끌어온 관세협상을 지난 29일 정상회담을 계기로 타결했다. 그러나 한국의 외환·재정 부담 등 현실적 과제가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30일 산업통상부 등에 따르면 이번 합의의 골자는 3500억 달러 투자 중 2000억 달러를 현금(지분) 투자로, 나머지 1500억 달러를 조선 협력 프로젝트 ‘마스가(MASGA)’에 배정하는 내용이다. 현금 투자의 연간 납입 상한은 200억 달러(약 29조원)로 설정됐다.

정부는 외환 자산 운용수익을 활용해 투자금을 충당하고, 부족분은 정부보증 외화채 발행을 통해 조달한다는 계획이다. 한국투자공사(KIC)가 국정감사에서 밝힌 9월 말 기준 운용자산은 2276억 달러로, 연간 수익률은 11.73%였다. 이 기준으로는 200억 달러를 웃돈다.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은 “연 200억 달러 투자는 사회간접자본(SOC) 예산과 맞먹는 규모로, 경기 둔화나 재정 적자 상황에선 유지가 어렵다. 외환시장 불안 시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합의에는 통화스와프에 대한 내용은 빠졌다. “당장 통화스와프를 하지 않아도 조절이 가능하다”(구윤철 부총리)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변동성 확대 시 외화유동성 축소 우려도 나온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외환시장 불안 시 한시적으로라도 통화스와프를 요구해야 한다”며 “정부의 이런 움직임이 심리 안정에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투자금 사용처도 논란이다. 양국이 공동 참여 구조를 갖추지만 실질 주도권은 미국이 쥔 것으로 보인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은 이날 자신의 소셜미디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의 3500억 달러 투자를 직접 승인하고 관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에 원리금 회수가 보장되는 프로젝트에만 투자한다는 ‘상업적 합리성’이 실질적으로 작동할지 불투명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표현에 구체성이 떨어지는 탓에 양국이 각자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이를 해석하면 투자처 선정에 난항을 겪을 수 있다. 한 통상전문가는 “일본처럼 우리 기업 참여를 명문화하지 않으면, 결과적으로 국내 자금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셈이 된다”고 말했다.

아울러 기존 철강·알루미늄에 부과된 50% 관세가 그대로 유지됐다. 박성훈 고려대 국제대학원 명예교수는 “철강을 다루는 기업들은 대부분 중소·중견기업이라 관세로 인한 피해가 장기화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국회 국정감사에서 구윤철 부총리는 ‘철강 관세 인하를 위한 추가 협상이 가능하냐’는 질의에 “미국에 더 요청해야 할 사항”이라고 답했다.

양국은 이번 합의의 이행을 위해 ‘가칭 대미투자기금법’ 제정을 추진한다. 해당 법안이 국회에 제출되는 달의 1일로 소급해 관세 인하가 발효된다. 정부는 11월 중순 법안 제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협상 결과를 놓고 야당이 반발할 가능성이 높아 한동안 진통이 예상된다.

트럼프 행정부가 재선 국면에 접어들면서 ‘투자 이행 점검’을 명분으로 압박 수위를 높일 가능성도 있다. 한국은 미국에 2000억 달러를 최소 10년에 걸쳐 분할 투자하지만, 투자 약정은 트럼프 대통령 임기가 끝나는 2029년 1월까지 마쳐야 한다.

0
로그인 후 추천을 하실 수 있습니다.
SNS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53,864 건 - 1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