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한밤 화재로 80대 숨졌다…소방차 출동도 힘든 '산동네' 주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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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오전 11시쯤, 서울 종로구 창신동에서 트럭 한 대가 가파른 경사로를 내려가고 있다. 전율 기자

30일 오전 10시 서울 종로구 창신동의 한 골목. 승합차 한 대가 가파른 오르막을 버겁게 올랐다. 승합차는 도로 양쪽에 주차된 승용차와 오토바이를 피하려다가 무게를 못 이기고 여러 번 비틀거렸다. 반대편 골목에서도 트럭 한 대가 느린 속도로 내리막을 내려가고 있었다. 오토바이, 승합차, 트럭 가릴 것 없이 가파른 경사 앞에 모두 시속 5㎞ 남짓 속도를 늦췄다. 주민들도 지팡이를 짚거나 도로 한 쪽에 마련된 손잡이를 잡고 천천히 길목을 오르내렸다.

지난 11일 오후 10시40분쯤 해당 골목의 한 2층짜리 주택에서 불이 나 80대 남성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1층 작은 방에서 시작된 불은 주택 전체와 인근 보일러실 등으로 퍼졌다. 소방당국은 차량 20대와 인력 115명을 투입해 화재 발생 1시간 40분 만에 불을 완전히 진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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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오전, 창신동 주택가의 모습. '주차금지' 표지판 앞에 승용차와 오토바이가 주차되어 있다. 전율 기자

다만 서울 종로구 창신동 일대는 고지대, 주거 밀집, 좁은 도로 폭 탓에 소방차 진입이 어려운 곳이다. 이날 찾은 사고 장소 인근은 급경사뿐만 아니라 도로 양쪽에 세워진 차량으로 경차 한 대 지나가기 어려웠다. 가장 좁은 길목의 폭은 2m 정도에 불과했다. 도보라 하더라도 차도·인도 정비가 잘 돼 있지 않고, 계단이 많은 탓에 주민들은 불편을 호소한다.

창신동에서 50년 넘게 거주했다는 이옥희(86)씨는 “경사가 너무 심해서 앞코가 동그란 신발을 신고 다니면 엄지발톱에 피멍이 들 정도”라며 “겨울엔 길이 얼어 미끄러워서 5번이나 넘어진 적도 있다”고 말했다. 60년째 창신동에 사는 주민 김순자(83)씨도 “겨울에 길이 미끄러울 땐 걸어오는 건 물론이고, 차가 지나가는 것도 너무 힘겹다”며 “길이 안 그래도 좁은데, 주말엔 차를 길 양쪽에 주차해놔서 사람 한 명 겨우 지나갈 정도로 폭이 좁아진다. 불 한번 나면 소방차가 들어올 수 없을 정도”라고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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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창신동 주택가 골목, 가파른 계단이 주택가 사이를 가르고 있다. 전율 기자

이처럼 비좁은 도로나 불법 주정차, 고지대 등의 이유로 소방차 진입이 곤란한 지역은 전국에 571곳에 달한다. 정춘생 조국혁신당 의원실이 소방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소방차 진입 곤란 지역은 서울 221곳, 부산 108곳, 인천 71곳 등이 있다. 도로 폭 협소, 불법 주정차, 상가·주거밀집, 급경사·급커브 등 도시 구조적 요인이 진입 곤란 사유로 꼽혔다. 서울과 부산의 경우 진입 곤란 지역의 80% 이상이 ‘도로 폭 협소’에 해당했다. 서울은 동대문구(20곳), 동작구(19곳), 관악구·영등포구(각 15곳), 강북구(13곳) 순으로 소방차 진입 곤란 지역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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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진 기자

겨울을 앞두고 폭설 등으로 도로가 얼 경우 소방차 진입 곤란 지역 화재에 대비해야 한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와 관련 소방당국은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서울 종로소방서는 지난 21일 사고·재난대응 활동 검토 회의를 열고, 개선사항을 논의했다. 창신동 일대와 같은 고지대 화재 출동 시 소형 펌프차를 우선 진입시키고, 진입로 사전 점검과 비상소화장치를 활용하는 등의 대응 체계를 강화하겠단 방침이다.

인세진 전 우송대 소방안전학부 교수는 “단독 주택 밀집 지역의 경우에는 아파트처럼 스프링클러가 없어 비상소화장치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홍보와 사전 교육이 중요하다”며 “소방차가 도착하기 전 화재 발생 5~7분 이내에 초기 소화를 시도하고, 빠르게 대피하면 인명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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