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이재명·시진핑 회담 D-1…'핵잠'이라는 돌발변수 급부상 [경주…
- 
                
                4회 연결
본문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11년 만에 국빈 방한, 한·중 관계 ‘해빙’을 선언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는 1일 한·중 정상회담에 돌발 변수가 급부상했다. 한국의 핵추진잠수함(핵잠) 도입 추진이다. 한국으로선 미국을 설득해 오랜 숙원을 이뤄낼 기회를 잡은 외교적 성과로 자부하지만, 이는 중국이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미·중과 사흘 간격으로 정상회담에 나서는 이재명 대통령에게 정교한 외교적 감각이 요구되는 이유다.

이재명 대통령이 31일 경주화백컨벤션센터(HICO)에서 열린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맞이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9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이 대통령은 핵 추진 잠수함(핵잠)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디젤 잠수함은 잠항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북한이나 중국 쪽 잠수함에 대한 추적 활동에 제한이 있다"고 말했다. 이에 외교적 갈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자 대통령실은 "특정 국가의 잠수함을 지칭한 게 아니다"라고 뒤늦게 해명했다.
이튿날인 3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의 핵잠 건조를 "승인"했다고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을 통해 밝히며 한국의 핵잠 도입 논의가 급물살을 탈 환경이 조성됐다.
이에 궈자쿤(郭嘉昆)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중국은 한·미 양측이 핵 비확산 의무를 철저히 이행하고, 지역 평화와 안정을 촉진하는 일을 하고 상반되는 일을 하지 않기를 희망한다"라고 밝혔다. 시 주석이 이미 국빈 방한 일정을 시작했는데 중국 외교부가 한국을 향해 "상반되는 일을 하지 말라"는 훈계조로 불편한 심기를 공개 표명한 건 이례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대해 한국 외교부는 31일 “우리가 개발·운용을 추진하려는 것은 재래식 무장 원자력 추진 잠수함이며, 이는 핵확산금지조약(NPT)에 부합한다”고 밝혔다. 중국 입장에 대한 사실상의 반박 성격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29일 경북 경주박물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천마총 금관 모형'을 선물한 뒤 악수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이웃 국가인 한국이 미국의 지원을 받아 핵잠을 보유할 경우 중국의 안보 전략은 한층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2021년 오커스(AUKUS, 미·영·호 간 안보동맹)가 발족해 호주에 핵잠을 공급하기로 했을 때도 중국은 "명백한 NPT 위반"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정상회담에서 핵잠 문제를 직접 거론하진 않더라도 비확산 등 차원에서 중국 측이 우려를 표명할 가능성이 있다.
중국은 앞서 한·미 조선업 협력인 마스가(MASGA·미국의 조선업을 위대하게)에 대해서도 자국을 겨냥한 안보 위협으로 간주하고 관영 매체를 통해 "고위험 도박"이라거나 "미국의 정치쇼"라고 비난했다. 시 주석의 방한을 앞두고 지난 14일 한화오션을 제재한 배경 또한 한·미 조선 협력, 더 나아가 해양안보 협력을 겨냥한 것이란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30일 부산 공군 제5공중기동비행단 내 나래마루에서 미중 정상회담을 마친 뒤 회담장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이 대통령이 앞으로는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에 의존)'이 어려울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입장을 밝힌 것도 중국이 한·미 간 밀착을 경계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다만 한·중이 관계 개선에 뜻을 함께 하는 만큼 갈등 이슈는 굳이 부각하지 않으려 할 수도 있다. 당초 시 주석이 국빈 초청에 응한 것 자체를 청신호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사드(THAAD) 보복' 이후 이어진 한한령(限韓令)의 전면 해제나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2단계 협상 가속화 등의 결과를 도출할 수도 있다.
이번 회담은 이재명 정부의 대북 구상인 'E·N·D(교류·Exchange, 관계 정상화·Normalization, 비핵화·Denuclearization) 이니셔티브'에 대한 지지를 비롯해 중국의 건설적 역할을 정상급에서 견인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강유정 대변인은 31일 기자들과 만나 "(한·중 정상회담에서)민생 문제의 연장선상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실현이라는 평화의 문제에 대해서도 논의하기로 의제 협의를 봤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다만 한·중 정상회담 결과물 등에서 명시적으로 비핵화 문제가 언급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중국이 최근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집중하는 가운데 북한은 비핵화 문제가 국제사회에서 의제화하는 것 자체에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역시 그간 비핵화와 관련해 다소 혼선을 빚는 입장 표명을 해왔다. 지난달 한·미·일 외교장관회의 뒤 도출된 공동성명은 "북한 비핵화"를 명시했으나, 한국 외교부는 보도자료에서 "한반도 비핵화"라는 표현을 썼다.
전날 이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일본 총리의 회담 뒤에도 양국 발표에 차이가 있었다. 일본 측은 "다카이치 총리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납치자 문제 해결을 위해 일·한·미 뿐 아니라 일·한 간 면밀한 조율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고 발표했다. 주어가 '양 정상'이 아닌 다카이치 총리였다. 한국 측 발표에는 북한과 관련한 내용이 전혀 없었다.
이왕휘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상회담에서는 민감한 현안보다는 덕담과 미래 비전 등 긍정적 메시지가 중심이 될 것”이라며 “중국이 과거의 갈등은 우회적으로 언급하며 협력 의지를 내비친다면 사드 보복 이후 남아있던 심리적 거리감을 해소하고 한한령 완전 해제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강준영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도 “시 주석이 11년 만에 방한을 결정한 건 국제질서의 변환기에서 한·중 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려는 의도”라며 “한국이 이번 회담에서 집중해 얻을 수 있는 현실적 성과는 공급망 협력 등 경제 교류를 다자주의 질서 속에서 꾸준히 이어가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이 불참한 이번 APEC 정상회의 본행사를 시 주석이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할 무대로 삼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중 정상회담이 열리는 1일에는 정상회의 폐막과 함께 21개 회원이 컨센서스(의견 일치)로 합의한 ‘경주 선언’이 발표될 예정이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30일 경주 국제미디어센터(IMC)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경주 선언' 채택에 "매우 근접했다"며 '자유 무역' 문구 포함 여부에 대해선 "다수 회원들이 막판 협상을 하고 있기 때문에 섣불리 예단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고율 관세와 보호무역 기조를 앞세우자 오히려 중국이 다자주의와 자유무역의 선봉장을 자처하는 가운데 자유무역 문안을 둘러싼 미·중 간 입장 조정이 이뤄지고 있다는 걸 시사하는 대목이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