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朴때와 달리 공동성명 없었다…李대통령·시진핑, 핵잠 논의한 듯 [경주APE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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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열린 이재명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간 정상회담에서는 양국 관계의 갈등 요인으로 급부상한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핵잠) 도입 문제가 논의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북핵 문제에서 ‘한반도 비핵화’라는 표현을 써왔는데, 남한 역시 핵을 보유해선 안 된다는 비확산 측면의 논리로 핵잠 도입에 반대 입장을 밝힌 것으로 읽힌다.

이재명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일 경북 경주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전민규 기자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이날 정상회담 뒤 기자들과 만나 '미국의 핵추진 잠수함 승인 관련한 논의가 있었는지' 묻는 질문에 "다양한 안보 이슈들도 다뤄졌다. 한반도의 평화 문제, 안정 문제, 비핵 문제에 대한 논의도 있었다"고만 답했다. 자세한 언급은 하지 않은 채다.
위 실장은 "이 대통령이 우리 정부의 비핵화 및 평화 실현 구상을 소개하고, 북한과의 대화 재개를 위한 중국의 건설적인 역할을 당부한 데 대해 시 주석도 한반도 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안정을 위한 노력을 지속하겠다고 화답했다"고 소개했다.
이와 관련, 중국이 기존과 마찬가지로 한반도 비핵화 입장을 유지한 것이냐는 질문에 위 실장은 "중국은 오랫동안 '한반도 비핵화'라는 용어를 써왔다. 북한도 비핵화, 남쪽도 핵을 갖지 않는다는 걸 뜻한다"라고 답했다. 시 주석이 한반도 전체에 핵이 있어선 안 된다는 점을 핵잠 문제에서 강조한 것으로 추정되는 대목이다. 현재 남한의 '비핵 상태'를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논리일 수 있다.
실제 지난달 30일 중국 외교부는 한국의 핵잠 도입 추진에 대해 "한·미 양측이 핵 비확산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라"는 공식 입장을 냈다. 당시 시 주석은 이미 한국에 도착해 국빈 일정을 시작한 뒤였는데, 중국이 이런 입장을 낸 건 시 주석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회담 뒤 중국 신화사가 발표한 정상회담 결과 보도문에 따르면 시 주석은 이 대통령에게 "피차 핵심 이익과 중대한 우려를 고려해 우호적인 협상을 통해 갈등과 차이를 적절하게 처리하자"고 말했다. 중국은 대만 문제, 사드 배치 문제 등에서 '핵심 이익'이라는 표현을 쓰곤 했는데, 핵잠 문제까지 포함해 이런 표현을 쓴 것으로 보인다.
시 주석이 11년만의 국빈 방문한 가운데 양해각서(MOU) 외에 별도의 공동성명이나 공동선언 등 문서화한 공동 결과물이 없는 것도 핵잠을 비롯, 다양한 현안에서 이견이 있었기 때문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시 주석은 지난 2014년 국빈방문했을 때는 박근혜 대통령과 회담한 뒤 공동성명을 냈고, 공동기자회견도 했다.

이재명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일 경북 경주 국립경주박물관에서 한·중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전민규 기자
서해 구조물 문제나 한화 오션 제재 등 민감한 이슈도 회담에서 논의됐다. 다만 중국이 한·미 조선 협력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되는 한화오션 제재에 대해서 위 실장은 "미·중 사이의 문제가 풀려가면 그런 분위기 속에 한화오션 자회사 제재 문제 역시 생산적 진전이 있을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달 30일 미·중 정상회담에서 무역 갈등이 완화된 만큼 제재 해제 논의가 진전될 수 있다는 기대감을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이날 회담에선 중국의 '사드 보복' 조치인 한한령(限韓令·한류 제한령)도 테이블에 올랐다. 위 실장은 "서로 문화 교류·협력을 많이 하고 콘텐트에 대해서도 노력하자는 공감대는 있었다"며 "국내법적인 규정도 있고 해서 완벽하게 얘기가 되지는 않았으나, 진전이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실무적인 소통을 통해서 조율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사드 보복의 완전한 제거를 명확히 하지 못한 점 등은 아쉬움으로 지적된다. 대신 다양한 현안이 있음에도 갈등이 부각되지는 않았다.
강준영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이번 한·중 정상회담은 복잡한 현안을 뒤로 미루고 국빈 예우에 맞춰 분위기 관리에 집중한 만큼 실질적 성과보다는 관계 복원과 상호 예우에 초점이 맞춰졌다”고 말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일 오후 경북 경주의 소노캄 호텔에서 열린 한·중 국빈 만찬에서 만찬사를 하고 있다. 전민규 기자
위 실장은 이날 회담 전반에 대해 "이재명 정부의 국익과 실용에 기반한 대중 외교를 통해 한·중 관계를 전면적으로 복원하는 성과가 있었다"고 평가했다. 한·중 양국은 이날 고위급 정례 소통 채널을 강화하기로 하고 경제 협력과 스캠(사기) 범죄 대응 공조 등과 관련한 6건의 MOU를 체결했다. 최근 캄보디아 등에서 한국인을 겨냥한 강력 범죄가 잇따르고 그 배후에 중국 조직이 연루됐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양국이 공조를 강화하기로 한 것이다.
이와 함께 양국은 지난달 만기됐던 통화스와프를 연장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서비스무역 교류·협력 강화 MOU는 한한령 이후 막혀 있던 비관세 장벽 완화를 기대해볼 수 있는 부분”이라며 “원·위안화 통화스와프 연장은 실질적 효과가 크지 않으며, 중국의 위안화 국제화 전략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라고 분석했다.
한편 한·미 간 핵잠 논의와 관련해 위 실장은 "(핵잠)연료(공급)에 대해 승인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위 실장은 “핵잠수함을 건설하려면 미국이 전반적으로 승인해야 한다. 우리가 군사적 목적으로 써야 하기 때문”이라며 “저희가 주로 제기했던 건 연료에 관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이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핵추진 잠수함 건조 필요성을 강조하며 "연료 공급을 허용해달라"고 요청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튿날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은 미국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할 것”이라고 밝혔는데, 현재 한·미 간 핵잠 관련 논의는 잠수함 건조가 아닌 연료 공급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설명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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