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웃다보면 씁쓸…‘검은 웃음’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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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부조리를 풍자한 블랙 코미디 영화가 잇따라 관객을 만나고 있다. 요도호 사건을 다룬 ‘굿뉴스’. [사진 넷플릭스]

넷플릭스 화제작 ‘굿뉴스’, 300만 관객을 향해가는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수가없다’. 두 영화는 완성도와 흥행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은 것 외에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무거운 사회적 이슈를 코믹한 터치로 담아낸 블랙 코미디 장르란 점이다.

지난달 17일 공개한 ‘굿뉴스’는 1970년 일본 적군파 대원들이 국내선 여객기를 납치해 평양으로 가려 했던 요도호 사건을 모티브로 삼았다. 비행기를 김포공항에 착륙시키려는 남한 당국의 위장 작전을 긴박하게 그려내면서, 관료 조직의 허술함과 이념론자들의 위선을 풍자했다. “권위를 비웃는 영화를 만들려” 했던 백성현 감독의 의도가 시청자들에 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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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수가없다’. [사진 CJ ENM]

지난 9월 말 개봉한 ‘어쩔수가없다’는 해고된 중년 남성의 재취업 투쟁을 경쾌한 유머로 풀어내며 씁쓸한 여운을 남겼다. 박 감독이 풍자하려 한 건, “가족을 지키기 위해 벌인 일이 되레 가족을 파괴하고, 애써 인간 경쟁자를 제거했더니 AI(인공지능)에게 밀려나는 아이러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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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지구를 지켜라!’를 리메이크한 ‘부고니아’. [사진 CJ ENM]

5일 개봉하는 할리우드 영화 ‘부고니아’는 한국 SF 블랙 코미디의 대표작 ‘지구를 지켜라!’(2003)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주인공 성별 등 일부 설정이 바뀌었지만 자본과 권력, 환경 문제를 잔혹하게 풍자하는 원작의 핵심은 그대로 살렸다.

사회 모순과 부조리, 인간 본성에 대한 비판을 씁쓸한 웃음과 날카로운 풍자에 담아내는 블랙 코미디 영화가 쏟아지고 있다. 가족 같은 사적 영역에 스며든 인습과 차별 등에 비판의 칼날을 겨누기도 한다.

지난달 29일 개봉한 ‘라리랑’은 미국 LA에 사는 한인 가족의 명절 소동극을 통해 가부장제, 세대 갈등 같은 불편한 진실을 들춘다. 나선희 감독은 “오랜 유학 생활 끝에 한국에서 결혼 생활을 하면서 가부장적 문화로 인한 세대 갈등을 겪었다”며 “모든 가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라는 생각에 영화로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앞서 9월 개봉한 ‘비밀일 수밖에’는 동성 연인과 살고 있는 정하(장영남)의 집에 아들 진우(류경수) 커플과 예비 사돈이 갑자기 들이닥치면서 벌어지는 소동극을 그렸다. 이를 통해 김대환 감독이 보여주려 한 건 “혐오와 불통이 넘쳐나는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다음 달 초 개봉하는 ‘윗집 사람들’은 내밀한 성(性) 담론을 코믹하게 다룬다. 층간소음 문제로 예민해진 아랫집 권태기 부부(김동욱·공효진)가 윗집 부부(하정우·이하늬)를 식사에 초대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주연 겸 연출을 맡은 하정우는 국책 사업을 따내기 위한 골프 접대 소동을 그린 ‘로비’(4월 개봉)에 이어 또 다시 풍자극에 나섰다.

블랙 코미디가 주류 장르로 부상한 데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2019)의 성공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계층 갈등 같은 무거운 이슈도 유머와 페이소스로 버무려내면 얼마든지 흥행에 성공할 수 있다는 전례를 남겼다. 군대 내 부조리에 대한 비판을 웃음으로 승화시킨 ‘신병’ 시리즈 등의 드라마가 인기를 끄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사회적 갈등 요소가 갈수록 복잡하고 다양해지는 것도 블랙 코미디의 자양분이 되고 있다. 휴대전화를 통해 현대인의 이중성, 인간관계의 민낯을 까발린 ‘완벽한 타인’(2018), 온라인 여론 조작을 풍자해 씁쓸한 뒷맛을 남긴 ‘댓글부대’(2024) 등이 좋은 예다. ‘굿뉴스’의 변성현 감독은 “가짜 뉴스가 난무하는 현실에서 무엇이 진실인가 란 얘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불안하고 어수선한 세상이 블랙 코미디 양산의 토양이 되고 있다”면서 “아이러니하고 잔혹한 모순의 사회 현상이 많아지자 이를 풍자하는 콘텐트에 대한 대중의 욕망이 커지는 것”이라고 짚었다. 주인공이 처한 ‘웃픈’(웃기면서도 슬픈) 상황들이 억압된 감정을 해소시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준다는 것이다.

비판 메시지를 웃음과 풍자로 코팅한 블랙 코미디가 직설적인 사회 고발물보다 흥행 면에서 유리하다는 인식도 있다. ‘윗집 사람들’의 배급사인 바이포엠스튜디오의 한상일 이사는 “코미디 영화가 흥행에 실패하지 않는 ‘코믹 불패’ 현상이 이어지고 있는 세태에서, 복잡하고 어두운 현실을 웃음으로 견뎌내려는 대중의 심리 때문에 블랙 코미디 또는 블랙 코미디적 요소를 도입하는 작품들이 계속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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